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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제주도 서귀포 출생
2005년 <시조 21> 등단
시조집 <굿모닝 강아지풀> ,<꽃을 줍는 13월>
제주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제주시조시인협회,
오늘의 시조시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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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매미
가로등 만개한 밤을 하얗게 새고 있다
팔뚝 옹이마다 아프게 껍질을 깨고
어둠 속 삶의 흔적을 땅 위에다 펼치며
연륜이 짧은 만큼 목소리만 커졌구나
낮 동안 못 다 이룬, 그래 사랑은 지금이야
마지막 밤의 창가에 뒤척이는 여름밤
귀농일지
-귤을 따며
속 좁아 터질 듯이 잔소리 깨알같고
변할 것 같지 않던 생고집 초록의 말
그 마음
이리 큰 줄은
나 이제야 알았네
하루가 지날수록 서툰 손짓 익숙해져
마이다스 손이라며 환히 웃는 초보농부
새콤한
그 시간 넘어
깊은 정도 들겠네
오일장 벚나무
겨울 넘긴 가지들이
봄 마중 끝냈나 봐
눈 질끈 감고 섰던 가지 끝에 실눈 뜰 즈음
올일장
뻥튀기가게
얼굴들이 붉었네
성급한 계절 앞엔
꽃들도 설레나 봐
좀처럼 열지 않던 할머니 푼돈 몇 장에
좌판 위
미리 온봄이
강냉이 한 줌 더 얹네
한울타리 꽃
높이 오를 수록 돌아갈 길은 멀어
과수원 귤나무에 누가 먼저 주인인지
은근히
시치미 떼며
넝쿨손을 뻗었다
여린 척 악착 같던 옥자네 새엄마 같은,
지금도 저 꽃처럼 숱이 적어 투정일까
불현듯
얌체 같았던
올림머리 그 여인
그해 여름 넘고서야 무성했던 임소문
한사코 매달리는 제 분신 남겨 놓고
해얗게
눈물 다 털고
생을 끌고 떠났다
섬 산수국
어젯밤 사락사락 예까지 내린 별이
접이우산 펴기도 전에 소낙비를 맞았네
나무꾼 그 눈빛 같은 푸른 옷이 젖었네
사람찾기 사이트도 나무꾼 행적 몰라
올레꾼 눈맞춤에 행여 따라 나설까만
소금끼 눈물 꼭 찍는 저기, 저 꽃 흔들려
술패랭이꽃
갯내음 올레길에 배시시 웃는 저 여인
술렁술렁 왔다가는 물이랑을 타이르며
핑크톤 파마머리도
끝이 살짝
풀렸네
잠시 떠나 살았어도 피할 수 없는 태생인지
남루한 세상살이도 몸은 늘 가벼웠네
망사리 꿈을 건지던
해녀의 딸
예 있네
넝쿨손
빈 집터 하늘 닿을 듯
휘휘
오르는
저거
이가 없어 먹지 못해 손녀딸 쥐어 주덙,
할머니 마지막 길에
놓고 떠난
꽈
배
기
능소화
이를 어째, 밤을 넘다
치맛자락이 걸렸구나
이마에 주홍글씨
아프도록 새겨놓고
날 봐라,
능청스럽게
얼굴 들고 서 있네
시장골목 담쟁이
속 비운 내장 같은
보성시장 골목 들면
숭숭한 담벼락에
성수 갚은 물보라
한바탕 훑고 간 자리 앞치마를 펼치지
손 관절 뒤틀려도
아우성은 푸르러라.
시간의 증발만큼
비린내 배었어도
성당 밖, 반쯤 엎드린 지폐 몇 장 있었지
겨울 멀구슬
이쯤이면 '웃뜨르'도 일곱 물 바다 같다
만조의 시간 지나 다 드러난 잔가지에
당고모 쌓인 세월이 알알이 절고 있다
육십 년 사설만큼 사탕 가득 인정 걸고
알 듯 말 듯 저 혼잣말 목젖까지 차올라도
물러진 멍울만큼이나 난바다 뭇별로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