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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한희정 시조시인 작품방 1 등록일 2017.11.20 20:45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643


한희정 1.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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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제주도 서귀포 출생

2005년 <시조 21> 등단

시조집 <굿모닝 강아지풀> ,<꽃을 줍는 13월>

제주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 제주시조시인협회,

오늘의 시조시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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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합장

 

 

 

암자 오르는 길엔 나뭇잎이 합장한다.

 

산을 향한 기도만큼 연륜도 깊어지신

 

작은 키 곤줄박이도 그길 위를 따르고

 

갓 서른 초행길엔 바짝바짝 입이 타던

 

어머니 이름으로 다시 걷는 이 길 위에

 

어젯밤 가막살 열매가 기도처럼 빨갛다

 

 

순리대로 사는 것이 때로는 힘이 들다

 

한발 딛는 자국마다 단풍 곱게 내리시는

 

저 붉은 가을의 합장 일념으로 타드네.

 

 

 

절밥 한손

 

 

 

행자승 무릎 앞에

절밥철검

내리는 가을

 

마디 짧은 고산식물

삼천배의 기복 끝에

 

방울진 산열매 한 알

손바닥에 받아든다

 

단식이 오랠수록

번뇌 한참

깊다시는

 

큰스림 말씀에도

눈썹 하나 까딱 않던

 

바위도 법의를 두르고

절밥 한 손 받아든다

 

 

 

별도봉 봄까치꽃

 

 

 

낮아서 만만한 자리 다리 오므리고 앉아

겨우내 덮고 자던 담요 그냥 겉친 채

양지녘 봄까치꽃이 까치눈을 비빈다.

 

꽃에다 슬픔을 덮는 그대 눈물은 짜디짜다.

어둠을 가로질러온 익명의 화살을 맞고

바위들 숭숭한 면상이 해조음에 묻히고,

 

별도봉 벼랑에서 자살을 꿈꾸던 꽃들,

초롱초롱 바위틈에서 문득 생각을 바꿨는지

어젯밤 투신한 별들의 푸른 속옷을 말린다.

 

 

 

협죽도

 

 

 

이쯤에서 이별이라니

이즘에서 이별이라니,

 

연일 불볕더위 공항길이 낮술에 타고

 

끝끝내 독설을 참으며

꽃이 떼로

붉어라

 

 

 

가을 운문사

 

 

 

제 속 다 보이고도 부끄러울 것이 없네

만산홍엽 내달리는 가지산 끝자락에

비구니 늙은 웃음 같은 반시감이 달렸네.

 

몇 밤을 아팠을까 까맣게 탄 홍엽이며

바람이 휘젓다 만 산자락 잉걸불이며

단숨에 산을 내려와 내 속 다시 뒤집던,

 

아! 저리 홀가분히 떠나는 자의 모습

선방 앞뜰 은행나무 동안거에 홀로 드는

선승의 독경소리가 처마 끝에 머물러

 

간절했던 자국 따라 돌계단도 다 닳았네

산 오르는 숨소리에 만추낙엽 타는 냄새

사리암 합장한 손이 단풍보다 뜨겁다

 

 

 

도시의 가을 한 잎

 

 

 

물든 담쟁이 손이 보도블록에 떨어져 있네. 줄줄이 납

핀에 눌러 고통의 벽을 넘던 만년의 혈소판 같은 가을 한

잎 떨어져 있네.

 

맞은 평 창틀마다 소국 분盆내 건 걸 보면, 이맘 땐 빌딩

조차 단풍 들고 싶은가 봐 여름 내 무력증 앓던 도시 속의

사람들처럼.

 

뒤돌아 나부끼는 계절 끝 하얀 손들, 작별을 예감하는

단문 형 메시지 따라

난감한 내 심중에도 가을 한 잎 타고 있었네

 

 

 

불탑사 진달래꽃

 

 

 

맨발로 끌려갔을 원나라 아득한 길

 

공녀의 눈물을 닦던 순제順帝의 뜻에 따라

 

기황후 오체투지가 원당봉에 엎디어,

 

나한의 정기조차 붉은 빛으로 흐르는 곳

 

오층석탑 정釘 소리에 구름길도 멈추었을

 

철야로 경내를 밝힌 그 꽃들이 또 피어

 

 

부처님 오신 날에 이승빛이 하도 고와

 

불심처럼 산을 덮은 불탑사 진달래꽃

 

동자승 이마를 씻는 손길들이 바쁘다.

 

 

 

둥지

 

 

 

마무리 귤을 따다 빈 둥지를 보았네

선순위 밀리고 밀린 비상품 감귤만한

휑하니 바람 드는 창, 겨울채비 하다 말고

 

이제야 알았네 잎 뒤로 숨은 뜻을

무허가 미둥기 삶의 하루가 더딘 시간

노랗게 신맛 삼키며 아른 길을 떴구나

 

전셋값 고공행진 텃새마저 터를 잃은,

면장갑 손끝에서 무심히 잘리는 오후

돌아와 둥지를 틀까 지키고 선 저 하늘,

 

 

 

겨울쑥부쟁이

 

 

 

주춤 말을 걸까

그냥 가는 하루가 밉다

 

쪽박 세상인심

울상 한 번 짖지 않는

 

해녀의 막내딸처럼 바다 향해 피었다.

 

손 꽁꽁 시린 별이

바위틈에 내려와

 

파도에 한 겹 두 겹

뭔가 자꾸 감추려는

 

명치 끝 아리게 오는 실루엣의 정체는 뭘까

 

혼자 그린 눈화장을

혼자 보고 지워야 하는

 

 

 

아버지의 그네

 

 

 

사십여 년 펼쳐놓은 아버지 스케치북

뚝뚝 늦동백의 낙화송이도 선명해진

친정집 마당 한구석에 혼자 늙는 그네 있어

 

어린 손녀 말소리 같은 그 마당 참새소리

꽃일까 분신일까 가지가지 기쁨이시던

발그레 봉오리 오면 전화 자주 주시던

 

어젯밤도 저렸을까 심근경색 수술자국

외손자 세 송이가 오늘도 눈에 밟혀

고희의 동백가지에 그넷줄을 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