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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심
제주 영락리 출생
2004년 <시조시학> 등단
시조집 <다시뜨는 수평선>
제주시조시인협회,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열린시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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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신호등
하루해도 모자라 허둥대던 내 몸에
쉼표하나 찍듯이 들어온 빨간불
정지선 멈춘 발걸음잠시 툭 놓아본다
내 안에 짐이 많아 어깨가 시려오고
어디로 향할지 불빛 속에 서성일 때
봄비치 신호로 다가와 나를 끌어당긴다
느린 우체통
소녀의 유품처럼 남겨진 편지 한 통
효도를 못해서 더 애틋한 사연을 담은
영종도 을왕리에 있는 달팽이 우체통
우주선 띄운다고 들썩이는 이 시대에
일 년을 고이접어 피어나는 사연들
한 십년 가슴에 품고
간절하면 이뤄질까
할머니 그 온기도 이승처럼 기다리며
고용직 땀내에도 절실한 꿈을 꾸는
인천에 푹 삭은 우체통
바람의 행간 품고 산다
자전거, 아버지
자주 가던 길 따라
아들의 자전거를 탄다
흙먼지 툴툴거린 아버지 뒤에는
허리를 꽉 움켜잡은 어린 내가 앉았다
보리밭 길 따라 가면
코끝에 와 닿던 그 냄새
가슴에 콕 박히듯 흔적만 남기고
내게로 페달 밟고 오시네
열두살 나를 태워 오시네
애기뿔 쇠똥구리
숙제를 다 못하고 졸고 있는 아이처럼
쇠똥 밑 파다보면 눈 못 뜬 쇠똥구리
저들도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은 종자일까
가파른 능선에다 한 살림 차려놓고
가시꽃 하얀 등불 분화구를 밝히며
지구를 굴리며 간다
뿔 하나로 버팅긴다
순천만 갈대숲
갈대를 품고 있는
구멍 숭숭난 갯벌에서
홀로된 아머니
시린 설움 묻어 있다
한겨울 골다공증에도 둥지 품은 갈대숲
멀구슬나무1
어느 새가 물고 왔나, 묵주알 만한 씨앗 하나
집 떠난 내 대신 친정집에 눌러 산다
아버지 수술한 등에 철심처럼 박혀 산다
종갓집 오대 내력 유서처럼 다시 본다
서울에서, 서귀포에서 모여든 이 기일에
숟가락 그 빈자리를 채우는 생을 본다
뿌리도 시린 잠에 파르르 떨고 나면
전화 벨소리로 전율하듯 봄이 또 온다
내 뻗은 그 긴 가지에 악수 한 번 하고 싶다
아버지의 귤나무
새순이 돋는 날은 탁주생각 나신 걸까
삼천 펑 섭섭한 터에 귤꽃 저리 환한 날
바람에 비틀 걸음이 지는 해를 지고 간다
일본에서 건너 온 지 삼십년 된 귤나무
할머니 숨비소리 그대로 묻어 있기에
전정도 망설여지나 대책 없는 저 도장지
한번쯤 불심검문 걸려들고 싶은 이
사월의 곁가지도 댕강댕강 잘려갔다
다시 또 밀항을 꿈꾸나 땅위로 솟은 뿌리
집게1
어떤 바다 어떤 인연인지 저 사수포구는
비행기 뜨고 지고, 집 한 채 꿈 뜨고 지고
활주로 이탈한 파도 집어등을 켜든다
포구 돌틈 사이 내 손에 쥐어진 인연
꼼지락 꼼지락대는 집게발 게들레기
밤사이 잠 못 든 아이 발가락 꼼지락대듯
아들이 돌려보낸 집게를 반겨 맞아
선천성 심장병으로 출렁이던 저 바다도
이윽고 빚을 갚은 듯 다시 뜨는 수평선
집게10
그 많던 십자가는 어디로 밀려났나
봉천동 내가 살던 옛 건물 흔적 없고
재개발 농성 하던 자리 고층 건물 들어서따
하늘에 걸린 십자가
어느 골목 또 찾았는지
취한 도시 차 밑에
귀가 못한 가장의
한 켤레 지친 구두가
제집인양 가지런하다
영락리 방사탑
손 같은 밥주걱을 탑 밑에 묻어 놓고
한층 더 바다 가까이 보초 세운 까마귀
영락리 저 방사탑은 나를 지켜 키웠다
바닷길 거센 폭풍 그마저 잠재우고
간절한 내 소원도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아들의 허한 심장에 사랑 하나 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