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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김보람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7.11.21 10:5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622

김보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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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경북 김천 출생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201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망작가 선정

21세기 시조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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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아버지의 거짓말

 

 

 

나는 허기져요 겨울의 아버지

 

더 이상 주린 배를 견딜 수가 없어요

 

첫눈이 내리는 순간 사라지는 한 사람

 

 

눈이 내려요 툭툭, 발끝에서 끝나는 눈

 

조용한 사람과 더 조용한 한 사람이

 

바닥에 무릎을 끓은 채 눈 속에 파묻혀요

 

 

깍지 낀 손을 팔아 포옹을 산다면

 

무서워요 다정함이 창백하고 길어서

 

언 것은 녹는 것입니까 창밖을 보세요

 

 

 

트라우마의 진화

 

 

아, 하품이 창틀 위에 쪼그려 앉는다

폭설의 뿌리까지 입을 쩍 벌린다

한낮이

널려있는 방

길어지는 식탁보

 

동그란 입구로 들어간다 떨어진다

구멍 속으로 삐져나오는 소리가 크다

어두운

밤을 썰고서

꼬리를 자른다

 

뼈를 그린다 우적우적 모래 씹는다

벽이 타오른다 살 냄새가 난다

닫힌다

출렁거린다

복면하나 뒤집힌다

 

 

 

수다

 

 

 

입안을 두드리는 느닷없는 폭우

 

격랑을 일으키며 밀려드는 말들

 

입속에 뛰어들어서 우산을 펼친다

 

질척이는 입속은 검은 활자뿐이다

 

물은 불어 오르고 사다리는 자라고

 

홍수가 시작되어도 폭우 멎지 않는다

 

물길 넘쳐나고 속절없이 잠기는데

 

숨길조차 막혀서 목을 길게 빼든다

 

말들이 말 피워 올려 말 열고 말 돋군다

 

 

 

맨홀

 

 

 

미명의 언어들로 꽉 막힌 뚜껑 아래

 

덮어버리지 못하는

밀폐의 시간들이

 

무호흡

공기방울로

뒤섞여

산다

 

 

 

 

감기

 

 

 

중심을 잃은 채 당신에게 그만 졌다

 

지독하게 인색했던 눈빛마저 풀렸다

 

온몸에

열꽃 피운다

 

둥두두둥

이명 운다 

 

 

 

귀의 날

 

 

요란한 표정을 짓자 아이들을 위하여

쟁쟁쟁 귀가 자란다 소리가 큰다

낱낱이 불러줄거다

누구야 사랑해

 

소리 속에 있으니 몸이 악기다

사라지는 것들이니 만질 수 있다 

보세요 깡마른 바람

소리의 깃발을

 

 

 

안단테그라피

 

 

 

자취생의 하루는 몇 그램 향기일까

편지 뜯듯 풋풋하개 바람과 마주하면

은은한 풍금소리가 메밀꽃처럼 피곤했다

 

홀로라는 말 속에는 현재형이 숨어있다

낡은 나무의자에 헐거워진 못들처럼

전설의 가시나무새, 휘파람을 엿듣는다

 

느리게 좀 더 느리게 생각의 깃 세운다

마음껏 헤매고 마음껏 설레고 나면

노을 진 지붕 아래로 또 하루가 놓인다

 

 

 

인간모빌

 

 

 

공중에 매달려 상감하는 저 남자

거친 손길이 길을 통과할 때마다

끊기는 모스부호로

빌딩이 깜빡인다

 

앞으로도 가지만 뒤를 더 좋아한다

앞으로 달리지만 달리면서 흔들린다

허공에 창을 매달고

구름 가득 퍼 올리며

 

끝없이 무너앉는 몸 일으키며 세운다

달로 가는 몽유처럼 두 손 높이 쳐들고

지축을 흔들어대며

엉킨 몸이 되어간다

 

 

 

지금동

 

 

내가 하는 말 나 혼자 듣는다

 

그랬니 그랬구나 닿은 곳 느닷 없다

 

드디어 혼자가 되어 풍경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그래도라고 저녁 해가 저문다

 

되돌아 온 말 익숙하고 낯설다

 

지금의 반대쪽에 서니 금이 가고 깨진다

 

 

 

불 꺼진 모니터

 

 

 

눈덩이처럼 불어난 당신의 이야기

덜컹 문이 열려 나는 두근거린다

풍문의 밤을 따라서 메아리치는 세계

 

다정한 얼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감정의 다발들

커다란 혀를 삼키며 우르르 쏟아진다

 

세차게 바람 불고 하늘은 까맣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중심을 잃는다

뜨거운 포옹 앞에서 팔들도 사라진다

 

거품을 뒤집어 쓴다 내 마음의 바깥

문을 닫아걸면 당신은 쓴다, 지운다

불 꺼진 모니터 속에 돌아눕는 한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