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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자
2002년 제주작가 등단
대구시조시인협회 전국시조공모 장원
시집 <송악산 염소 똥>, <밀리언달러>,<하늘도 모슬포에선 한눈을 팔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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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달 2
세상 속으로 구멍 반쯤 뜷고
별빛달빛 드리워
떡밥 같은 눈발 흩뿌리는 하늘이
덥석 문
날 놓아줄때까지
잔챙인 줄
몰랐네
거미
생의 마지막에 가셔야 덫에서 풀린
팔월, 아침햇살 소리없는 난사에
집요히 살 뿐인 우산
허공에다
펴 놓은 채
아들 셋 딸 다섯은 고혈압 수치셨다
산입에 풀칠 바빠 바늘 끝 세우시던
아버지 빛나는 투망
죽어 저렇게
깁고 있다
오래된 계단
고화질 햇살 앞에 명암이 엇갈린다
결결이 만능공구 손때 묻은 난간에는
아버지 수액이 흐르던 푸른 날도 있었을
저 하나 바라보는 식솔들의 눈빛에
몸으로 버틴 생애가 예각으로 기울고
답 없는 가을 그 길로 폐색 짙어 가더란
뒤늦은 시간에 와 붉은 주단을 펴는 낙엽
독주에 목마르던 하늬바람 뒤꿈치로
식물성 신음소리가 삐걱삐걱 밟히더라는
시월
핑 도네
오만설움
가을 끝을 저길 줄...
순순히 등을 내민 풀꽃들을 밟고 와
밤이면
가슴 후비는
내 창가에
바람
소리
억새꽃 봄
가랑가랑 가랑이 사이
찔끔찔끔 내리는 비
누적강수 1밀리에도
봄날은 축축하네
자꾸만 요실금 같은
가랑비에 손사래 치네
손난로
어머니 겨드랑이에서
꺼내주던 따뜻한 손
핫팩 포장지 풀며
옛 추억도 풀자 "맞다 맞다"
남편의
노란 눈빛이
보온으로
작동된다
분꽃
누가 저 풋내기의
입술을 훔쳤을까
9월이 다가도록
분첩 닫지 못하는
자줏빛 첫사랑 앞에
립스틱이
슬픈
너
개미
깨끗이 시 한편을 먹어치운 커서
모니터에도 약육강식의 법칙은 있다
단단히 허리를 조이는 6포인트 병정들
모슬포 길
이승에 다 내어준 무덤들의 빈 젓을 보네
잔술 한 잔에 만사오케이 돌챙이 고모부님도
죽어서 더 평등해진 공동묘지 가는 길
송악산 염소 똥
송악산 가시바람엔
한약냄새가 난다
산은 염소 똥을 먹고
염소는 산을 먹는다
굴러도 티 하나 안 붙을
저 성깔로 생겨서
쇠똥구리 집채만 한
고집으로 살아 온
험한 길 마다않고
절벽 타던 목바름이
바다 빛 결백함으로
송악산에 뿌린 풀씨
한나절 무용담으로
끝이 없을 늙은 염소
이 빠진 저 외뿔로
터전 닦던 내력들이
송악산 벼랑 끝에다
말뚝 박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