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말
  • 시조나라 작품방
시조감상실
  • 현대시조 감상
  • 고시조 감상
  • 동시조 감상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신춘문예/문학상
  • 신춘문예
  • 중앙시조백일장
제주시조방
  • 시조를 읽는 아침의 창
시조공부방
  • 시조평론
휴게실
  • 공지사항
  • 시조평론
  • 시조평론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손영희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5.25 09:2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038

================================ 차  례 ======================== 

탐라산수국 / 오래된 정원 / 해피엔드 / 개들의 시간 / 어시장 백서/

==============================================================

 

 

탐라산수국

 

손영희

  

 

네 거처를 찾아가는 나는 파랑 나비

 

무심을 되새김하는 소잔등에 얹힌 나비

 

안개는 분화구에서 전설처럼 피어오르고

 

네 들숨 내 날숨으로 하늘 그물 엮어서

 

목동아, 우리 지극한 사랑이 될 양이면

 

저기 저 쏟아 놓은 별 지금 막 승천 중이니

    


 

 

오래된 정원

 

 

아궁이 불쏘시개 지천으로 널려있다

 

구름이 새를 좇는 장복산 편백나무 숲

 

아침녘 수제비 떠 넣는 무쇠솥이 끓고 있다

 

어머니 몸 그 몇 배 높이 쌓은 성채 하나

 

살신殺身을 꿈꾸는 조붓한 저 등허리

 

산 하나 통째로 이고와 햇살로 부려놓는다

 

잘 썩은 고요와 잘 마른 그늘이

 

오늘도 까시래기 내 배냇잠 부풀린다

 

큰 손이 떠먹여주는 밥맛이 뭉클하다



 

해피엔드


퇴근길 나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간다


어둠이 무릎을 덮는 H열 1번 자리


마음이 골목 같아서 외등 하나 켜고 싶은 날


가보지 않은 생은 언제나 해피엔드


폭풍 같은 어제와 실뱀 같은 내일이여


누선에 고이는 물기


흔들리는 엔딩 씬

    


 

개들의 시간

 

나를 깨우는 건 늙고 목쉰 회화나무

 

머리 푼 잡귀들이 목줄을 잡아당긴다

 

악몽에 시달리면서 목청을 소진하면서

 

그렇게 지켜냈다고 다시 살아났다고

 

맹목의 순정을 위해 꼬리 저리 흔드는

 

꿈에서 나를 깨우는 건 내가 먹어버린 나

 

<시조매거 2015. 상반기호>

    

 

어시장 백서

 

가랑이 벌리고 앉아 비늘을 깎고 있는

 

어시장 바람 난전 고무바지 저 여자

 

먹다 만 점심 쟁반이 타인처럼 놓여 있다

 

주름진 목덜미와 이마가 반짝이고

 

무표정한 사타구니에 소금꽃이 피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저 비늘들이 밥이다

 

몇 마리 더 깎아야 날개를 달게 될까

 

학자금 밀린 방세 궤짝마다 쌓여 있어

 

비릿한 어깨통증을 일수 찍듯 다독인다

 

<유심 2015. 5월호>


 

손영희 시인

200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 『불룩한 의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