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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정희경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2.21 13:26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208

===========================차  례==========================

늙은 집/ 봄날 보리밭/ 분꽃 피는 집/ 폐지 내는 날/ 목장갑/ 볼록렌즈/  경매/ 2월, 담쟁이/ 우포늪에서/ 텃밭/ 

==========================================================  

 

늙은 집

 

낙서도 다 지워진 헐거운 담벼락에

온종일 햇살만이 그림자놀이 하다 간다

묵직한 청동사자 손잡이 큰 입만 벌린 채

 

담의 끝은 언제나 닫혀 있고 갇혀 있다

꺼내 볼 목록들은 하루가 또 늙는다

초인종 길게 누르면 화들짝 깨어날 듯

 

달그림자 어룽진 창 오늘도 공복이다

내 키보다 빨리 달린 목련 가지 흰 울음

대문은 늦은 전갈에 답장을 서두른다

 

 

 

봄날 보리밭

 

 

짧은 해를 묻어 둔 땅속이 분주하다

심지에 불 켜는 손 깊이를 저울질해

밝혀서 더 강한 신호

봄날을 당긴다

 

폭설의 무게보다 더디 오는 하루하루

얼레빗에 걸러지는 생채기 둔덕 위를

갈맷빛 서러운 날들

바람이 훑고 갔다

 

말랑한 햇살 펴고 일어나 펄럭여라

쓰러지면서 함께 누워 어깨 맞댄 깃발들

마침내 무릎을 세워

걷는 소리 도 보인다. 

 

 

 

분꽃 피는 집

 

 

한댓잠 자는 이들은 서로를 알고 있다

시간이 짙을 수록 몸 사르는 분꽃 향내

오늘도 잠그지 못한 대문을 흔든다

 

공기에도 끈은 있어 그물 같은 끈이 있어

손끝으로 튕겨도 낙화는 건너오고

저음低音의 목관악기를 관통하는 저 꽃대

 

내 절망이 백 개라면 그 중의 한 개쯤은

달력에 기대어서 낡은 틈 채우다가

못다 쓴 회고록으로 핀다, 서늘한 눈빛으로 

 

 

폐지 내는 날

 

끝끝내 읽지 못한 철 지난 소설책들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빳빳한 광고지들

참았던 깨알 울음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행간을 찾지 한 말들이 길게 누워

묶여진 신문 이 이리저리 떠다니고

흔적도 색깔도 없는 눈물의 무덤이다

 

예리한 촉수가 아직도 번득이는데

이름 석자 적지 못한 구겨 버린 원고지

아파트 폐지내는 날

내 모습도 함꼐 낸다

 

 

 

목장갑

 

 

입김이 빠져 나가 얼룩만 남아 있다

층계층계 빗금 치며 날리던 성긴 눈발

풀어진 무명실 한 올 주름을 파고든다

 

젖어 버린 어둠을 발갛게 덧댄 자국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가로등 깜박이고

체온이 뜸들인 새벽 혓바늘이 풀린다

 

들었다 난 자리 헐거워져 글썽여도

접경을 머뭇대다 일어서는 저 눈(雪)빛

발효된 붉은 힘줄이 소실점을 달린다

 

 

 

볼록렌즈

 

 

미세한 길목까지 초점을 맞춘다

 

자꾸만 흐려지는 시야를 핑계 삼아

 

더러는 타 버리는 일

 

맹점에 닿아도

 

 

갈림길은 정녕 없다 돌아설 순 더욱 없다

 

직선으로 쏟아지는 빛 단 한번의 꺽임으로

 

당신을 읽을 수 있는

 

퇴화하는 맑은 날 

 

 

 

경매

 

 

갈매기가 끌고 온 배, 오색깃발 펄럭인다

숨소리 후끈한 컨베이어 질긴 벨트

파도의 지느러미들 시퍼렇게 쏟는다

 

암호 같은 언어들에 표정잉 지워졌다

종소리 쫓아가는 매의 눈빛, 매의 발톱

질펀한 어시장 바닥 급강하로 날고 있다

 

그물을 끌어올린 손 여기서는 묵언이다

비바람과 싸웠던 지난밤도 잊혔다

만선을 낚아챈 새벽 고등어가 부푼다 

 

 

 

2월, 담쟁이

 

 

고속도로 방음벽에

 

그물이 던져졌다

 

 

 

매연으로 과속으로

 

치달려온 수액의 바다

 

 

 

때 이른

 

이파리 두엇

 

바람을 막고 있다

 

 

 

 

우포늪에서

 

 

햇살이 무게만큼 그늘을 세워 보자

혼자 울던 낙동강 개켜 놓은 흔적들이

물풀들 등에 업고 서서 여백으로 풀릴 때

 

바람 되어 그 속을 흐룰 수만 있다면

멈춰 버린 것들이 언어로 되살아나

고요의 저 가장자리쯤 애기부들 되고프다

 

물 위를 걸어가도 젖지않는 저녁놀

밀물 같은 젹정激情은 아니어도 좋아라

무채색 빛들의 늪에 초록 하나 더한다

 

 

텃밭

 

 

어머니가 보내오신 물 바랜 보따리

녹색 바다 줄지어 봄이 함께 묻어왔다

먼저 간 아버지 그리는 호미질도 얹어서

 

깨소금 한 숟가락 나비 섞어 무치면

까칠한 남편 입안 녹아나는 그리움

청도행 완행열차로 나의 봄은 가고 있다

 

꺾여진 활자들이 그네 타는 한나절

손톱 밑 검은 물은 훈장이라 여기며

내일은 나물 뜯고 싶다, 또 다른 봄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