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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임영석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2.18 16:01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086

달방석



오늘 밤 누가 와서 저 달방석에 앉고 갈까

석 달 열흘 바라봐도 얼굴은 안 보이는데

엉덩이 붙인 자리가 날마다 다 다르다.


사람이야 앉는 습관 거기서 거길 건데

달방석에 앉는 그분, 엉덩이는 참 묘하게

무엇을 그리워함이 달방석에 배어 있다.

 


 

둥근 밤




큰 산도 작은 산도 밤이 되면 더 낮아진다

산 위의 작은 별이 제 몸보다 크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지 벙어리가 되어있다.


작다는 게, 크다는 게, 비교될 일 아니지만

빛나는 빛의 길은 보고 배울 말씀이라

아무도 하늘 한복판 가로막지 않는다.


둥근 밤 나의 꿈도 별빛을 닮는 거다

큰 산이 작은 산이 제 몸을 낮춘 만큼

세상의 가슴앓이에 마침표를 찍어준다.




방귀



물방귀 연꽃이면 풀 방귀 이슬이고

바람 방귀 구름이면 어둠 방귀 별빛인데,

돌 방귀 얼마나 많은 기다림을 풍겼을까.


동네 어귀 석불처럼 꿈쩍 않고 사는 사람

가슴까지 타고 오른 나팔꽃 넝쿨손이

참았던 방귀를 뀌면 눈웃음을 한 번 준다.


두발 달린 짐승에게 정붙인 죄가 뭔지

먹으면 먹는 대로 죄를 묻는 육신의 몸

아무리 감추려 해도 냄새까진 못 감춘다.



청산도




산에서 산을 본다

산 너머 산, 그 너머 산,


산이 산을 업고 업어

청산도가 그려졌다


해지면

업었던 산이

다시 업혀

그려진다.




고독 孤獨



고독의 정점은 늘 밤하늘에 빛난다

똑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그러하듯

마지막 마침표 하나 찍는 일이 더 힘들다


그대와 함께하며 나무처럼 살겠다고

엉덩이 붙인 자리가 바늘처럼 보이는데

맨발로 걷지 않으면 그 아픔을 어찌 알까


너는 가서 별이 되고, 나는 여기 어둠 되니

빽빽한 이 숲길이 얼마나 헐거운지

풀여치 쓰르라미가 떠날 줄을 모른다



말이 바뀌다



푸른 잎 하나 없는 고목의 숨소리를


몇 년 째 듣기 위해 쪼아대는 딱따구리,


침묵과 물음 사이가 공명으로 뒤바뀐다.





꽃집 순례



꽃잎 속 꿀맛 같은 경전이 어디 있나

꽃집을 순례하며 도량을 닦던 벌이

엉덩이 가득히 묻힌 꽃가루가 수상하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살아가는 놈이라면

독을 품은 엉덩이가 성할 일이 없을 거라

눈부처 마음에 담듯 내 의심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별들이 안 오니까

애호박이 안 달려서 한해 농사 망쳤다고

씨받이 벌 구하려고 수소문이 분주하다


꽃집을 순례하며 씨받이를 하던 벌이

피 한 방울 섞지 않고 법문을 퍼트려서

그 법문 듣지 않고는 열매들이 안 열린다.




낙법



막, 모를 낸 논 가운데 날아와 앉는 왜가리,


어디서 배웠는지 내려앉는 낙법에는


물방울 하나 안 튀기고 벼 한 포기 밟지 않는다




낙타는 왜 등이 굽었을까



세상에 등이 굽은 건 다 늙어서 굽었는데

낙타는 자궁 속에서 등이 굽어 태어난다

뜨거운 모래 바람이 휠 수 없는 자세로,


예수나 석가처럼 낙타의 쌍봉에는

감춰도 드러나는 미움의 혹, 사랑의 혹

아무리 힘이 들어도 내려놓질 않는다.


수만 년 달구어진 모래사막 모래알이

세월의 경전처럼 발목을 붙잡아도

낙타의 모세혈관은 멈춰 서지 않는다.


인생이 짧다거나 길다고 느낀다면

그대 몸이 낙타 되어 사막을 걸어보라

네 몸이 얼마나 넓은 사막인지 보일 거다.



둥근 거울



골목길을 둥근 거울

눈알만 툭 튀어나와

골목을 구부리고

하늘을 구부려서

무엇을 하려 하는지

둥글게만 보인다


세상의 사람들이

바라보지 못하는 길

둥글게 끌어안고

살겠다는 저 마음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둥글게 보인다


앞 못 보는 맹인 부부

둥근 거울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지팡이를 더듬을 때

거울도 눈감은 사람

마음 길을 알려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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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1961년 충남 금산 출생

1985년 <현대시조> 봄호로 등단

       『이중 창문을 굳게 닫고』외 다수

        좌도시 동인 계간 <스토리문학>부주간, (주)만도

2011년 제1회 시조세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