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방석
오늘 밤 누가 와서 저 달방석에 앉고 갈까
석 달 열흘 바라봐도 얼굴은 안 보이는데
엉덩이 붙인 자리가 날마다 다 다르다.
사람이야 앉는 습관 거기서 거길 건데
달방석에 앉는 그분, 엉덩이는 참 묘하게
무엇을 그리워함이 달방석에 배어 있다.
둥근 밤
큰 산도 작은 산도 밤이 되면 더 낮아진다
산 위의 작은 별이 제 몸보다 크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는지 벙어리가 되어있다.
작다는 게, 크다는 게, 비교될 일 아니지만
빛나는 빛의 길은 보고 배울 말씀이라
아무도 하늘 한복판 가로막지 않는다.
둥근 밤 나의 꿈도 별빛을 닮는 거다
큰 산이 작은 산이 제 몸을 낮춘 만큼
세상의 가슴앓이에 마침표를 찍어준다.
방귀
물방귀 연꽃이면 풀 방귀 이슬이고
바람 방귀 구름이면 어둠 방귀 별빛인데,
돌 방귀 얼마나 많은 기다림을 풍겼을까.
동네 어귀 석불처럼 꿈쩍 않고 사는 사람
가슴까지 타고 오른 나팔꽃 넝쿨손이
참았던 방귀를 뀌면 눈웃음을 한 번 준다.
두발 달린 짐승에게 정붙인 죄가 뭔지
먹으면 먹는 대로 죄를 묻는 육신의 몸
아무리 감추려 해도 냄새까진 못 감춘다.
청산도
산에서 산을 본다
산 너머 산, 그 너머 산,
산이 산을 업고 업어
청산도가 그려졌다
해지면
업었던 산이
다시 업혀
그려진다.
고독 孤獨
고독의 정점은 늘 밤하늘에 빛난다
똑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그러하듯
마지막 마침표 하나 찍는 일이 더 힘들다
그대와 함께하며 나무처럼 살겠다고
엉덩이 붙인 자리가 바늘처럼 보이는데
맨발로 걷지 않으면 그 아픔을 어찌 알까
너는 가서 별이 되고, 나는 여기 어둠 되니
빽빽한 이 숲길이 얼마나 헐거운지
풀여치 쓰르라미가 떠날 줄을 모른다
말이 바뀌다
푸른 잎 하나 없는 고목의 숨소리를
몇 년 째 듣기 위해 쪼아대는 딱따구리,
침묵과 물음 사이가 공명으로 뒤바뀐다.
꽃집 순례
꽃잎 속 꿀맛 같은 경전이 어디 있나
꽃집을 순례하며 도량을 닦던 벌이
엉덩이 가득히 묻힌 꽃가루가 수상하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살아가는 놈이라면
독을 품은 엉덩이가 성할 일이 없을 거라
눈부처 마음에 담듯 내 의심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별들이 안 오니까
애호박이 안 달려서 한해 농사 망쳤다고
씨받이 벌 구하려고 수소문이 분주하다
꽃집을 순례하며 씨받이를 하던 벌이
피 한 방울 섞지 않고 법문을 퍼트려서
그 법문 듣지 않고는 열매들이 안 열린다.
낙법
막, 모를 낸 논 가운데 날아와 앉는 왜가리,
어디서 배웠는지 내려앉는 낙법에는
물방울 하나 안 튀기고 벼 한 포기 밟지 않는다
낙타는 왜 등이 굽었을까
세상에 등이 굽은 건 다 늙어서 굽었는데
낙타는 자궁 속에서 등이 굽어 태어난다
뜨거운 모래 바람이 휠 수 없는 자세로,
예수나 석가처럼 낙타의 쌍봉에는
감춰도 드러나는 미움의 혹, 사랑의 혹
아무리 힘이 들어도 내려놓질 않는다.
수만 년 달구어진 모래사막 모래알이
세월의 경전처럼 발목을 붙잡아도
낙타의 모세혈관은 멈춰 서지 않는다.
인생이 짧다거나 길다고 느낀다면
그대 몸이 낙타 되어 사막을 걸어보라
네 몸이 얼마나 넓은 사막인지 보일 거다.
둥근 거울
골목길을 둥근 거울
눈알만 툭 튀어나와
골목을 구부리고
하늘을 구부려서
무엇을 하려 하는지
둥글게만 보인다
세상의 사람들이
바라보지 못하는 길
둥글게 끌어안고
살겠다는 저 마음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둥글게 보인다
앞 못 보는 맹인 부부
둥근 거울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 지
지팡이를 더듬을 때
거울도 눈감은 사람
마음 길을 알려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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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
1961년 충남 금산 출생
1985년 <현대시조> 봄호로 등단
『이중 창문을 굳게 닫고』외 다수
좌도시 동인 계간 <스토리문학>부주간, (주)만도
2011년 제1회 시조세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