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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새-변시지 그림, 압록강 단교(斷橋), 석파시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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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새
-변시지 그림
두 눈 뜬 아내 몰래 농협 빚 살짝 얻어
섬 하나 늙은이 하나
그 외로움 사들였네
말처럼 들레는 바다
그 바다를 사들였네
범섬과 이마를 맞댄
조가비 목로주점
이승에서 딱 한 번 그와 마주 앉았었네
등 뒤에 갈옷빛 바다
걸쳐 입고 있었네
방어떼도 하늬바람도
돌아오는 서귀포 가을
먹빛으로 흘려버린
내 인연의 노을새
이 세상, 저 세상 사이 그 그리움 사들였네
압록강 단교(斷橋)
자 받게, 이 사람아, 아니면 따르던가
내가 니 보러왔지
누굴 보러 왔겠나
아, 얼른 이 잔 안 받어 팔 떨어지겠어
단둥과 신의주 사이 뚝 끊긴 철교처럼
삐걱이는 이 환상통아
팔 떨어지겠어
압록은 어디로 뜨고 가을만 흐르는 강
안고 파라,
아직은 내가 이승의 노래일 때
돌아서면 남보다 더 낯선 내 사람아
아, 얼른 이 잔 안 받어
팔 떨어지겠어, 썅
석파시선암
서중천이 놓쳤을까
가시천이 놓쳤을까
물 따라 길을 따라 내려오던 골짝 하나
선연한 발자국이네 발자국도 물발자국
우리가 걸어온 길도 발자국이 아니랴
장끼의 긴 목청도 그 목청을 듣는 귀도
봄 한 철 이승에서의 떠도는 발길 아니랴
내 이름, 내 이름이 부끄럽고 부끄런 날은
탱자나무 밑동에 감귤 순 접붙이듯
돌밭에 반생을 붙인
그 사내를 찾아간다
*석파-강문신 시인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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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시집에 <터무니 있다> 등 세 권이 있고, 중앙시조대상 등을 받았다.
[출처 시조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