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첫눈 가루분 1호, 앉아 있다, 오월이 튀자 하네, 주문진, 신사동 낮 열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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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가루분 1호
이 산만 감아 돌면 그녀가 보일 텐데
첫눈이 내려온다 펄럭, 펄럭인다
한밤을 달려보아도 닿아지지 않는 길
그녀는 이제 그 손 놓으려 한다는데
오래된 그 동굴을 허물려 한다는데
그러나 남은 숨들은 아끼고 있다는데
어린 날 내 소풍 때 따라온 하얀 얼굴
첫눈 같은 가루분 1호 햇살에 날리던 향기
마지막 숨 참는 동안 그날처럼 날린다
앉아 있다
이철수 판화 속에
아내가 앉아 있다
오래 앓고 일어난
뒷모습 다 그런데도
오늘 또 눈부시다고
그는 거기 적는다
여자가 아니고
아내라 그런가 보다
열린 창 너머에는
그녀가 만든 꽃밭
길고 긴 결혼 속에서
앉아 있는 여자여
오월이 튀자 하네
연두가 튀고 있네 싱싱한 멸치 떼 같네
가지에 달라붙은 하늘이 파닥이네
하늘은 연둣빛 남해
싱싱한 청춘이네
기우뚱 내 어깨가 오래 신은 구두 같아
슬며시 어깨를 벗고 연두에 담궈 보네
오월이 나를 껴안네
같이 한 번 튀자 하네
주문진
바람이 미는 파도 파도가 미는 파도
밀리고 밀리다가
밟혀서 죽는 파도
곡쟁이 흰 물새들
상주보다 서럽다
패각 닫힌 조개
일찌감치 닫힌 세상
그 문에 들지 못하고
서성이던 사람들
먼 데서 밀리고 밀려 여기까지 온 사람들
신사동 낮 열두 시
훤칠한 건물들이 쏟아낸 낮 열두 시
푸를 지경 흰 셔츠 빛나는 사원증등
갑자기 부산스러워진 신사동 가로수길
오늘은 어디 갈까?
거기는 먹을 만해?
당당한 위장들의 한 옥타브 올린 말들
삽시간 둥둥 떠오르는 신사동 낮 열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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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덕 시인
1994년 중앙일보 지상시조 백일장 연말장원,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작품상 수상, 2011년 서울문화재단 작가지원금 받음. 시집<한림정역에서 잠이 들다><안개는 그 상점에서 흘러나왔다>등, 역류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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