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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강현덕 시집 <너는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어서> 등록일 2022.06.30 14:03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27


찾는사람이 아니어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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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덕

1994년 《중앙신인문학상》,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한림정 역에서 잠이 들다』 『안개는 그 상점 안에서 흘러나왔다』 『첫눈 가루분 1호』 『먼저라는 말』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작품상〉 등을 수상했으며, 〈역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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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컵의 물


반 컵의 물이 있다
그대가 마시다 둔

조금씩 흔들린다
근심과 기대가

내게도
남아 있는 날들과
지나온 날들이 있다


운문사


흰 구름이 걷힌다

새벽 예불 시간

처져 있는 소나무

그쪽으로 더 처진다

법고가

달처럼 퍼져

산도 벌써 법당에 있다


석림동


할머니 세 분이 거기 앉고 누우셨다
벗어둔 털신마다 햇살이 소복하다
등 뒤엔 볕에 바랜 시화 한 점
'남으로 창을 내겠소'

유리벽 바깥으로 사람들이 나가 서 있다
그늘을 만들까 봐 버스도 비껴 선다
이전한 석림동 노인회관
정남향 버스정류장


달의 뒷면


오른쪽 어깨가 자꾸 기우는 김정기 씨
외발 수레 밀면서 언덕을 오르다가
콩밭 옆 그의 뒷자리에 앉아 잡초 몇을 뽑는다

기울다 그 자리 들면 안 보일 김정기 씨
어제는 콩밭 매다 거기 눕는 걸 보았다

토끼는 달의 뒷면에 우리 아버지도 숨겼다


낙타


그가 사는 곳은 사막 한가운데
횡량한 시간들이 모래로 쌓이는 땅
무심한 바람의 손만 온종일 오가는 땅

그의 반려자는 입이 없는 그림자
마른 몸 서로 비비며 태양을 건너지
침묵은그 고장의 언어
가장 뜨거운 기도문

등짐 같은 수레엔 무거운 어둠만이
오늘도 한 그릇 밥은 거기 실리지 않았네
갈퀴진 등을 파먹고 또 밤을 접어야 하리

갑자기 무릎이 꺾여 모래에 묻히는 날
어쩌면 그날이 오늘일지도 모르겠네
바람은 더 분주해지고
사막은 더 깊어지니


밤에 사는 참외


아직도 트럭에는 반쯤 남은 참외 상자
노란 더미에 둘러싸여 여자는 자고 있다
등 뒤에 노란 가로등 그 위엔 또 노란 달

긴 밤이 될 것 같아 그 앞에 멈춰 서니
한 봉지 오천 원요, 남자가 속삭인다
여자가 잠 속에서 웃는다 참외 단내가 난다

어두운 책상 위에 참외를 켜둬야겠다
가장 밝은 언어들로 온밤 시를 쓰면
여전히 노란 가로등 그 위엔 또 노란 달



사막의 사자*


나는 꿈을 수집하는 사자라고 해둘게

초원을 오래 걸어 당도한 원시의 사막

지금은 만돌린을 타던 집시가 잠들었군

꿈이라면 집시의 것이 가장 순결하지

세상을 떠돌다 만난 날것만 가졌으니

바람이 물 항아리를 엎기 전 재빨리 채취해야지

포효는 내 게 아니니 달은 떨지 말기를

몽환을 담당하는 밤의 정령에 의해

발톱도 거친 이뻘도 진즉에 다 뭉개졌으니


*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에 있는 사자.



독가촌


새 물을 채워둔다
고라니가 핥을 물
돌확을 돌아서는 숨소리도 살핀다
깊은 밤 작은 짐승들 발소리에 안심한다

산 밑에 산다는 건
식구가 많다는 것
콩잎도 고구마순도 반 넘게 내주었다
담장은 고치지 않고 대문은 달지 않았다


꽃지 해변


봄이 살다 간 곳 꽃들도 지고 있다
여기 서성이며 뒷자락을 읽는다
그들의 오래된 관습 그 발상을 결말을

지는 건 지는 게 아냐 익숙한 속삭임
단단한 안의 것 더 깊이 쏘아 올리려
겉몸에 축문을 쓰고 소지(燒紙)로 날리는 게지

저녁이 이리 붉은 건 꽃물 때문이었다
마지막 방울까지 뚝뚝 꽃 지는 해변
오래전 내게서 떠난 한 여자가 여기 있다



이팝나무


아무래도 이 나무는 저 위에서 온 듯해
글라라 자매님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꽃잎이 밥솥 옆으로 밥처럼 내려온다고
하느님의 정원에서 뜸을 들였다가
마음 배도 부르라며 때맞춰 내려온다고

아홉 살 은지도 서 있는 무료급식소 긴 줄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