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의 단시조집 『유목의 식사』는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균질성과 가독성 그리고 빼어난 언어적 의장이 한 편 한 편의 단수들을 지극하게 감싸 안고 있다. 시인은 이번 단시조집에서 구체적 감관感官과 객관적 세계를 매개하는 따뜻한 언어를 통해 가혹한 시간의 흐름에 놓인 삶과 사물의 운명을 노래해 간다. 그래서 그의 단시조는 그 어떤 예술보다도 시간과 친연성을 가지며 언어를 통한 시간 경험을 우리에 게 한껏 선사해 준다. 자신이 써가는 시조야말로 시간을 가장 커다란 방법적 기제로 삼는 문학 양식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시간의 흐름을 따라 새로운 서정적 온기가 따듯하게 밀려들고 있다 할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일러 ‘그리움의 여백’과 ‘역동의 고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쏜살
오늘도 하루를
자벌레로 살았다
한 달은 가을볕 아래
허리 펴면 또 한 달
농담이
진담인 나이
내 삶은 쏜살이었다
자락길
안산 자락길 걷는
할머니 숨 가쁘다
자식 낳고 키워서
결혼시켜 보냈는데
자식의
자식 키우는 일
자락길보다 가파르다
유목의 식사
어설프게 말을 몰아 돌아온 몽골의 밤
유목의 낯선 식사는 야생 염소 통구이
육질은 버리고 질겼다
나의 삶도 그러했다
초원에서 열흘
한 열흘
몽골 초원
게르에서 기다렸어요
밤이면 별을 세고
낮에는 말을 먹여
해 저문 지평선 너머 당신 함께 가려고요
죽마고우길
대나무 말을 타고
달리던 그 고샅을
객지에서 고향 잊고
아등바등 살다가
죽녹원
대숲 사잇길
꿈처럼 달려본다
전화 한 통
나 알겠니 한마디
잊지 않았겠지?!
왜 그 말이 짠할까
왜 그 말이 서러울까
오래전
떠나온 고향
문득 받은 친구 전화
물을 쓸다
소나기 지나간 뒤
빗자루를 들었다
물은 본디 안에서
밖으로 흐르거늘
마당이 안으로 기울어
고인 물을 쓸었다
껍질 벗는 매미에게
젖은 날개 마르면
바람처럼 살 수 있어
너에게는 소중한
날개의 시간들
매미야
날개를 펼쳐
날아봐, 어서 울어
마을 어귀
가을 저녁 찬 바람에
힘없이 잎은 지고
지상의 어둠 속을
떠도는 노숙자들
먼 데서
개 짖는 소리
사람이 사나 보다
목련 이별
활짝 핀 목련 송이
봄밤에 건들댄다
더 필 것 없다고
그만 가야겠다고
취한 듯
흔들리며 한 잔
잘 놀다 이별이라고
봄날은 간다
봄이
살짝 더운 날
연붕홍 싸리꽃
부스럭대던 풀숲에서
장끼 한 마리 나온다
그 뒤에
수줍은 까투리
봄날은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