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그내 나를 꽃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내가 그댈 바람이라
느낄 수 있다면
마음이 소스라치는 길
함께 걷기 때문입니다
대신이라는 말
-암병동에서
한 방울 피도 못 되는 지랄같은 슬픔이
목울대 밀어 올리며 새벽을 찍어 누른다
어둠 속 불 켠 전자시계 초초히 떨며 가고
불면을 이기지 못한 난장판 심연은
삽날에 뒤집히는 두려움 끌어안고
속죄의 제물을 자원한다 대신은 안 될까요
말라버린 눈물과 뭉그러지는 기도만
투두둑 갓금 안에서 때 없이 분질러진다
서른은 너무하잖아요
내 생을 떼 흥정한다
동행 2
낡아감을 느낄 때
낡은 것의 숨결 가깝다
오래되어 편한 것의
애틋함과 측은함
무릎을 기어 나오는 욱신욱신한 틍증도
그래그래 함께 가자
손 내밀어 토닥이면
깊어지는 주름살 펴며
물 차오르는 기억들
오래된
사물 같은 당신도
곁에 있어 참 고마운
그 저녁
저녁의 시린 발이 다가오다 멈춘 사이
그 안을 들여다보는 버룻이 깊어간다
내 생은 어디쯤일까 한 치 앞 모르는 길
심장에 펄떡이는 조급함을 애써 누르면
서천으로 퍼저가는 헐거운 생의 무늬들
여기쯤 멈춰주어야 고통 접을 그런 날
이불 속 저린 발을 시린 발로 덥힌다
눈앞에 사그라지는 연극 같은 무대들
꿋꿋이 버티는 오른쪽
왼손으로 안는다
속이 구쁘다
내가 밥을 뭇나 먹거리 찾던 몽실 할머니
치매 허기로 보이는 건 온통 먹을 것뿐
기저귀
속 뜯어 차려놓고
쌀밥 좀 묵어보소
피붙이 향한 허기 고갈되어 주저앉고
텔레비전 안에선 자글자글 산해진미
춘궁기
배 안에 든 아우성
이적지 못 몰아내고
객석에서
큰 눈 온 이른 아침 쓰레받기로 눈 치우다
눈 속에 납작 눌린 주검을 뜨고 말았다
짓밟혀 마지막을 맞은 참새는 뜬 눈이다
입찬말에 끌려가도 온몸 내던지며
치욕의 날 길바닥에 편 위안부 할머니
그날을 사죄해 달라 울부짓고 통곡한다
얼마나 귀 기울였나 애면글면 그 절규
무참히 밟아놓고 함구하는 사람 속의 나
짓밟힌 참새 앞에 서서 은 결든 날 톺아본다
예순
허기가 떠난 자리
슬픔도 허물어지고
마음이 짓물러
생각도 무뎌졌다
그릴 것
지울 것 없는
민무늬만 모호하다
덤덤 무덤덤
어깨가 기울었네요
생각도 살도 버렸네요
작은 상자 안으로
마디 풀고 들어가네요
화부는 덤덤 무덤덤
당신 담아내세요
입술을 떠난 말들은
어디서 잡아 오나요
눈 안에 담았던
얼룩은 어디서 빼나요?
쟁쟁쟁 들을 구멍을
잃은 귀도 떠났네요
살풍경
희끄무레한
전봇대 밑
수군수군 쏠리는 소리
검은 봉지 흰 봉지들 서로 등 맞대고 있다
눌리고
터진 배 안고
줄줄
진물 흘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