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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류미야 시인 시집 엿보기 / 아름다운 것들은 왜 늦게도착하는지 등록일 2021.04.28 09:2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71

류미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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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야

2015년 『유심』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시집 『눈먼 말의 해변』이 있다.
2018년 공간시낭독회문학상, 2019년 올해의시조집상, 2020년 중앙시조신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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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미장센



얌전 후 에필로그는

대개 일인칭시점


아무도 울지 않은

아첨은 진부해서



꽃 한번 피고 질 동안

잊지 않고

저녁이 온다



붉은 피에타



사랑하는 모든 것은 서쪽으로  떠났다

쓸리는 상처에 온통 마음이 기울듯

하루가 멍드는 자리

눈시울이 붉다


왼편 심장 가까이 사연을 문지르고픈

누군가의 사모思慕로 생의 저녁은 온다

서녘에 사무치는 건

어린 양이 되는 일


상처를 빨아주던 네 살 적 어머니가

따뜻한 붉은 혀로 시간을 핥으신다

무릎을 내어주시는 나의 서쪽

어머니



장마



찬 새벽 가슴에 장대비 꽂습니다


바늘귀를 꿰려다 기억에 찔립니다


무언가


더 기워보는데


손등에 와 젖는 비



시소



앞뒤 없는 저울이 되어보는 일입니다

환호 끝 여지없이 추락을 맛볼지라도

한순간 머뭇댐 없이 바닥쳐보는 일입니다


또는 두려움 없는 배가 되는 일입니다

들숨 날숨 차오르는 생의 바다 복판에서

내 안의 밑바닥부터 평형을 잡는 일입니다


그 마음 중심에는 저울 추 드리워도

제 심연을 비추는 거울로 밝혀든다면

먹먹한 밤바다에는 별도 띄울 것입니다



맹목


세상 가장 앞뒤 없이 아름다운 말 있다면

눈앞 캄캄해지는 바로 이 말 아닐까

해와 달 눈부심 앞에 그만 눈이 멀듯이


큰 기쁨 깊은 사랑 크나큰 마음으로

아무것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눈멀어, 아주 한마디로 끝내주는 이 말



파월, 소낙비



푸른 숲 들이키면


늦여름의 아가미가


시간의 여울목에서


파다닥!


진저리 치다


불현듯, 벼락같은 그리움에


눈물 왈칵 쏟는 밤



목련나무 그늘에 서면



꽃 지면 안 보이는 칠월의 목련나무


보든 말든 푸르고 번듯하고 분주하다


땅속의 발가락까지 꼼지락대고 있을 한낮.



냉정과 열정사이



평화를 걱정한다고 평화가 오진 않지

손에서 다만 총을 버리는 일이 필요할 뿐

여린 꽃 꺾는 손길을 붙드는 일 필요할 뿐


저울을 생각한다고 공평해지진 않지

아니, 그보다는 공정이 필요할 거야

웃자란 것들에게도 더러 사연은 있을 테니


온 힘으로 무너지는 꽃들을 한번 보아

그 어느 잎 하나 슬픔을 생각하겠니

그래서 꽃 피는 거야

다음 봄이 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