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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정용국 시인 시집 엿보기<동두천 아카펠라> 등록일 2021.02.06 11:11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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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국

 
1958년 경기도 양주군 덕정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고향인 동두천 솔안골에서 살고 있다. 국립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대 문창과와 경기대 국문학과에서 수학했다. 철도청과 법률회사에서 20여 년 근무한 후 직장을 그만두고 2001년 계간 『시조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이호우시조문학상과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는 아르코문학상을 받았다. 시집 『내 마음속 게릴라』 『명왕성은 있다』를 동방기획에서, 『난 네가 참 좋다』를 실천문학에서 출간하였다. 평양기행문 『평양에서 길을 찾다』를 화남출판에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 콘텐츠 제작사업 선정 평론집 『시조의 아킬레스건과 맞서다』를 지우북스에서 출간하였다. 한국시조시인협회와 오늘의시조시인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한국작가회의 시조분과 위원장과 현대사설시조포럼의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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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모루 들깨꽃

-동두천




큰이모 사시던 남산모루 옛 집터엔

루시킴 몸내 같은 들깨 꽃 한창이다

문간방 세 들어 살던 스물세살 아가씨 


장 구경 나가자며 내 손을 꼭 붙잡고

팥죽을 사주면서 환하게도 웃던 얼굴

고향에 돈을 부치곤 돌아서서 울었지


콜로라도 비행기는 무사히 탄 것일까

들깨 꽃 향기에는 소문도 멍울지네

초콜릿 쥐어 주던 그 손 아직도 촉촉한데




요양원 접시꽃

-동두천




가지마다 서러운 엄마의 원을 품고

높게도 자랐구나 붉은 꽃을 달고서

요양원 접시꽃 마음 한여름이 바쁘다


활짝 핀 꽃송이는 짭조름한 엄마 미소

인중이 참 길었던 그 얼굴은 아득하고

한겨울 뱃전에서 헤어진 칠십 년도 저무네


짚풀 같은 육신에도 마천령摩天嶺은 손짓하고

창밖에 휘청대며 붉게 타는 꽃술에는

구십 넷 단천 端川댁 꿈이 까무룩 졸고 있다




겨울, 자재암自在庵

-동두천




해탈문 풍경 끝에 매달아 둔 눈물 한 점

사나흘 날 찾아와 들창문을 흔들었다

다 말라 살피도 흐린 그 알량한 기억들


바람에 멍이 들고 속정에 부대끼며

포도시 감추어 둔 내 좁은 바자울에

소요산 消遙山 붉은 단풍만 나뒹굴고 있구나


드러난 상처에다 소금을 뿌려 놓고

쌩하게 돌아섰던 깜깜절벽 그 시름을

이제사 여기 놓는다 우리들의 보풀들




꿍꿍이속

-동두천




산막 옆 개복숭아 연분홍 한창이다


앞서 간 작은 누이 젖가슴 속살처럼


돌아서 옷깃을 여미네 그렁그렁 눈망울


붉은 겹겹 꽃잎 속에 향기를 숨겨 두고


넌 꽃만 이브구나 시금 털털 떫은 맛


귓가에 쟁쟁히 들리네 호랭이 엄마 말씀




겨울, 산막

- 동두천




찻길이 끊겨 버린 한겨울 산막에는

포실한 난롯가에 상처들이 모여 산다

복더위 고단한 기억을 눈밭에 잠재우고


찻물이 오글대는 토방은 착한 씨방

허기와 칼바람도 의젓하게 버텨 주고

언 산이 부르는 노래 찻잔에 우려 주네


은사시 두 그루가 번을 서는 시린 밤엔

배고픈 고라니가 아궁이에 몸을 녹이고

긴 겨울 헤쳐가야 할 목숨들이 기대 산다




앵두가 익을 무렵

- 동두천




(1)


산 두릅 연두빛에 햇볕이 스며들어


알싸한 봄 냄새를 남기고 떠나듯이


이별의 아픈 향기는 두고 가도 좋겠네





 (2)


고양이 선하품이 연못에 스며들어


올챙이긴 꼬리를 조금씩 잘라 먹듯


지는 봄 어질머리도 열매 속에 품겠네





(3)


눅눅한 갈피마다 바람결로 스며들어


혼곤히 세 이레 쯤 알뜰히 보듬으면


먼 그대 쓰린 기억도 새빨갛게 익겠네





거푸집 인세





한마음 약국에서 받아 온 약봉지엔

노 의사 불호령이 한가득 따라왔다

수치에; 들락거리는 고혈압의 줄넘기


흔들린 발자국엔 흙탕물 투성이다

굽은 길 젖은 길도 골라 서지 못한 채

육십 년 내팽개쳐 두고 인세만 우려먹은


들피진 쇄골 아래 개울물도 말라버려

멀쩡한 마음 밭엔 우울이 진을 치고

원본은 먼지투성이 재판은 당치 않다네





새벽, 지하철



푸석한 작업복에 모자를 눌러 쓴 채

허물 같은 가방을 힘겹게 둘러메고

희뿌연 새벽을 연다 또 하루를 으깬다


날카롭고 재빠른 낯 설은 언어들이

다급한 억양으로 고단하게 부딪힐 때

다소곳 안내방송도 얼떨결에 비껴가네


노동의 허기만큼 무거운 눈꺼풀이

달콤한 토막잠과 만나는 한구석에

까무룩 코리안 드림 등허리가 외롭다





라면





손대면 바스러지는 저놈의 성깔에다

올올이 몸을 말고 곁마저 까칠하기는

앵돌아 등돌려버린 저 봉지 속 능구렁이


헛헛한 순간마다 마른 몸을 살라내면

은근히 여며주는 엄마의 괴춤처럼

뉘라도 외롭지 않다 살갑고 푸근하다


시름 타래 풀어내고 간을 맞춘 멀굴에는

알싸한 밤도 오고 쌉사름한 시름도 모여

백동전 몇 앞에서 두 무릎을 꿇는다





도선사 아침 공양




애틋한 시앗 하나 또 다시 받은 아침

무겁고 섬뜩해도 내치지 못 하겠네

기꺼운 목숨의 무게 지켜주실 한 그릇


나물이면 그냥 나물 간장도 그냥 간장

양념의 사치쯤은 애초에 접어 두고

날된장 쿰쿰한 맛에 조바심을 여미지만


웃자란 식욕대로 한 숫깔 더 담으면

혀끝에 눌어붙은 소태 같은 뉘우침이

잽싸게 딴지를 걸며 종지 위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