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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백순금 시인 시집 엿보기 <입 안에 꽃을 심다> 등록일 2020.10.17 14:13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65



백순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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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금

경남 고성 출생.
1999년 《자유문학》 등단.
2016년 경남문학 올해의 우수작품상, 2018년 제35회 성파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세상의 모든 것은 배꼽이 있다』 , 『입 안에 꽃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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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안에 꽃을 심다




어물쩍 방치하여 저당 잡힌 입 속을

곡괭이로 파헤치고 망치질 서슴없다

"오늘은 뿌리 박습니다"

꽃 세 송이 심는다


헐거운 땅 골라서 탱탱하게 조인 나사

실한 뿌리 자라도록 간격을 배치하며

시든 꽃 뿌리를 뽑고

야무진 치아 심었다


어렵사리 산을 넘어 돌아 온 비탈길에

쇳소리 가득 담은 비대칭 실루엣

정방향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기운다




나팔꽃 무대




간밤에 또 한 뼘 배밀이를 했구나

소박하게 그리던 푸른 꿈 손에 쥐고

가붓이 한발 앞당겨 겹눈으로 뜨는 아침


햇살 붉은 한나절 나붓하게 꼬고 앉아

익숙한 발소리에 터진 귀를 열어두면

몇 음절 소프라노로 청빈한 무대 꾸민다


종소리로 씻어낸 맑은 소리 퍼 담아

바람의 등줄기를 둥글게 말아 쥐고

제 속살 가볍게 태워 살포시 막 내린다




국수 삶는 날




국수를 삶아놓고 양파를 다듬다가


막막했던 지난날이

움찔움찔 튀어나와


맵고도 알싸했던 둔덕

수중기로 날린다


마음이 칙칙하고 무거울 땐 양파를 깐다


한 겹 두 겹 벗기면서

눈물 콧물 쏙 빼는 거


시간의 물레방아 돌리면

불어터진 면발이 있다


칼칼한 시집살이 둥벙 하나 파는 건


나를 깊이 가뒀다가

몽땅 삭혀 꺼내는 일


퍼 올린 두레박 너머

단내 물씬 배어난다




창포꽃 지다




오달진 매무새로 집안일을 다잡아


오뉴월 땡볕에도 손끝 야문 어머니는


새까만 쪽머리 얹어 여념 없는 다듬이질


방망이질 내려질 때 내 설움도 후려친다


새파란 날을 세워 홀림체로 잦아드는


무수한 강을 건너서 깊어지는 설움들


몸을 푼 산달에는 미역국이 징하던


달빛조차 푸석하게 가울어간 쪽방에서


목 놓아 울지도 못한 청자빛 통곡 한마당




몸을 허물다




몸집 큰 사랑채를 수술대에 눕혔습니다

황토벽 어룽진 낙서 핏기 없는 주춧돌

살강 위 앉았던 먼지

파랑을 일으킵니다


서까래 잘래내고 환부까지 도려내어

기억의 길이보다 긴 울음 삼켜가며

육 남매 묻었던 기억

허물을 벗습니다


가슴을 서슴없이 내어주신 유산은

튼 살갗 지워가며 쇠골을 드러낸 채

단숨에 곤두박질쳐

육중한 몸 갑춥니다 


바스러진 몸통을 저분저분 뿌리며

소박한 꿈도 접고 저문 생을 지웁니다

오십 년 묵은 태엽이

멈추는 순간입니다




굿바이 내 사랑




이다지 오래도록 함께할 줄 몰랐

눈비 내려도 신발 되어 전천후로 달렸고

뒷목이 뻐근할 때면 부항도 마다 않던 


방지턱 넘어설 때 허리 휘는 통증도

가래 끓는 쉰 목소리 긴급 처방 달래가며

오르막 그렁거리면 밑불 되어 당겼지


빼곡히 적힌 이력서 열여섯 해 훈장 들고

덤으로 얹어주는 마지막 드라이브

땅거미 깔린 도로를 절룩이며 달린다




스마트 폰, 너




너를 사귀고는 모든 걸 까먹었다

안과에 예약해 둔 날짜도 잊어먹고

머릿속 달달 외우던

전화번호도 까맣다


급하게 외출하며 네가 손에 없을 때

줄줄이 부재중 전화 단톡에 문자까지


너에게 모두 맡겨둔

내 하루가 불안하다


차곡차곡 저장해 둔 여백의 비밀까지

통로를 열어가며 손에 꼭 쥐는 연습

내일은 일찍 깨워줘

편안한 잠 청한다




안구건조증

 -미용일기 6




초점이 흐릿한 눈 진료 마친 의사가


직업을 버리라고

오랏줄 던지시네


아 잠시 휘청거린다

우지끈 무너진다


점선들은 메꾸어온 순간들이 먹먹하다


나이테 선명하게

반복되는 굴레지만


삼십년 익어가는데

가붓이 넘길 일인가




유턴은 없다




전방을 주시하며 직진으로 달려간다


거친 삶의 보폭만큼 가속 페달 밝아가며


캄캄한 터널을 지나

휘어진 길 덜컹인다


끼어드는 자동차에 소스라치듯 놀라다가


두렵고 지칠 적엔 좌회전 돌렸지만


굽은 길

아무리 달려도

유턴 신호는 없었다 




맨발 걷기




맨발로 걷는 것은 지친 하루 걷어내기


겹쳐진 마음 열고 속살까지 가 닿기


온전히 숨결 모아서


참진 나를 키우는 것



무거운 몸을 털어 움켜쥔 맘 내려놓기


자분자분 걸어서 홀가분히 날 때까지


순리로 나를 채찍하고


차근차근 다듬는 것



비움에서 시작하여 포근히 젖기까지


구겨진 언어를 다려  반듯하게 펴질 때


비워낸 나를 읽으며


다독다독 채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