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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정애경 시인 시집 엿보기 <오늘을 배웅한다> 등록일 2020.11.07 13:37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85

정애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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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경


부상출생, 부산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2017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2017년 <부산시조>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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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노점상



바람이 날아가다 머무는 과일 좌판

두러두런 모여 앉아 주름진 사과 몇 알

어쩌다 마주친 시선 따라가다 바랜다


다잡아 묶어 봐도 흩날리는 머리카락

잎새 진 여린 가지 치솟는 휑한 허공

세상의 흔들바람도 지쳐가는 저물녘


연서로나 내어주던 하얀 겁질 벗겨가며

시린 얼음 살 속까지 속속들이 들어차는

뼈마디 떨며 앉았다 자작나무 한 그루




진눈깨비




가슴에 쌓기도 전 녹아버린 햐얀 속말 


점점이 빗금 치던 얼굴은 흩날리고


먼 그대 안고 온 바람 맴을 도는 눈의 길




능소화




발그레 하늘대다 때 이른 여름 마중


창 밖 섬돌 툭툭 내린 무심한 꽃의 몸짓


떨어져 다시 피어난 저 부러운 선홍 혈색


몸 던져 구르다가 계단 길에 낭자한 피


수액관 타고 흘러 홍조 띠는 바랜 낯빛


피톨에 뚝뚝 돋는 숨결 펄떡이는 하트 시그널




찔레꽃 오후




눈으로 보지 마라 깨어나는 아우성

귓바퀴 굴린 바람 하옇게 웃는 포말

인연은 흐르는 일이다 어깨 거는 수평선


올레길 해파랑길 둘레길 감싼 기슭

길마다 발길 잡는 희디흰 찔레 향내

스르르 감겨드는 오월 가도 가도 끝없다


파도치듯 푸르른 맘 무작정 따라 간다

수평선 닿아 피고 걸음마다 꽃 피운다

저마다 덩굴진 사연 내려놓는 텅 빈 오후




종이비행기




살짜쿵 바람 타고 날아가는 파란 하늘


구름이 꼬리 잡고 졸졸졸 나도 갈래


울 엄나 나비되셨나, 부신 햇살 한가득




직박구리의 이소離巢




몰강스레 잘라버린 푸른 가지 어지럽다

한 마디 말없이 떠난 앙증맞은 발과 부리

내 맘속 둥지 튼 울음 마음고름 풀리고


앞 창틀 내건 시래기 문득 찾은 새 두 마리

시장기 쪼아 먹고 시원스레 토한 울음

겨우내 먹이바구니 반가움을 채우고


다시 봄 벚꽃 피니 옮겨간 직박구리

만개한 멎나무 둥지 틀고 비빗비빗

굳은살 속에 앉히며 올 건 오고 갈 건 간다




개망초




바람을 따라가다 문득 멈춘 발걸음이


어느 새 무리지어 소박하게 일군 세상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길가 빈터 하얀 꽃말


빼어난 동기 틈새 수줍게 핀 나의 자리


소스라쳐 깨어나는 아린 기억 폭 껴안고


길머리 먼지 둘러쓴 개망초꽃 손 내민다 




겨울, 꽃 피다




한나절 따신 햇살 몸 태우며 가지 사이

단 한 번 기지개에  열꽃 몇 점 덛아났다

겹겹이 짓눌린 갈망 수피 뚫는 발화점


속살을 내지르는 꽃 지고 잎 진 자리

산처럼 솥아지던 시린 바람 발 굴러도

아우성 멈출 수 없는 개나리 긴긴 울음


얼어붙은 산그늘도 몸 낮추는 해질 무렵

묵혔던 함성들은 속에 꾹꾹 닫아걸고

잔 꽃잎 몇 장 날리며 끄덕이는 고갯짓  




문리文理




치자꽃 다 피도록 애끓던 하늘바라기

흠뻑 내린 사흘 비에 늦모내기 어깨바람

그제야 젖은 땅 열고 쑥 자라난 푸른 말


큰비에 떠내려갈까 목말라 시들어갈까

커나가는 말의 줄기 아침저녁 돌아보며

해종일 잡초, 피 뽑기 가까스로 세운 글




갓바위




모여든 온갖 바람 갓바위는 숨 가쁘다

도열한 석등조차 이열종대 수굿한데

떨어져 구르는 낙엽 업고 가는 계단 길


가다가 멈춰 보니 앞일은 안개 가득

한 줄금 빗물조차 촛농으로 흐르는데

백 팔배 갈앉는 골짝 봄 제비는 아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