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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운
1961년 서귀포시 대포동 출생,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2020년 6월 제주교육박물관 관장으로 퇴임,
2004년 <시조시학> 등단,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 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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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부르는 것 같다
아홉 살 낄낄대는
제주 돌담 올레길
수선화가 피어서
소복소복 피어서
눈 내려
더 환한 그곳
반쯤 녹은
그 녀석
누수
터미널 장맛비는 네온불빛 꽂아댄다
오뉴월 거품으로 떠도는 나의 교정
출근길 생활기록부 편도선 뻗쳐있다
훌쩍 큰 내 키만큼 낮아진 알동산은
밝아오는 해무에도 쉰 목소리 답하고
마흔 살
고인 그리움 언제쯤 누수될까
물찻오름
한라산 교래리
한발 한발 제단 쌓고
새벽녘 정화수로 오름 한 채 빌고 나면
오방색 탐라산수국 방울소리 튕긴다
얼쑤 좋다
물빛 검은 분화구
풀려나는 심방사설
햇살 아래 잦아들면
지친 몸 재우고 싶다
풀잎하나
스르륵...
밭담
일만 팔천 신들도 못 거스른 바람을
오름 들녘 허수아비 심자가로 받으며
옷자락 석양에 물들어 기어이 펄럭인다
꾸불꾸불 돌고 돌다 허기진 하루는
숭숭 뜷린 가슴에 그리움도 놓아버린
비바람 다 내어준 길 흑룡만리 내 흔적들
신작로를 배회함
방 한구석 애지중지 유품을 헤아리다
우연히 펼쳐 든 어릴 적 생활기록부
어린 날
대처로 이끈 모정
전학 흔적 뚜렷하다
부모 희망 공무원
학생 희망 공무원
그 아래 담임 소견 '신작로를 배회함'
오십 줄
바람 실은 배회는
어디쯤 멈춰 설까
종이 집 한 채
일평생 기다리며
일수 이자 어머니
늘그막에 마련한 집
아들놈 주고나서
마지막 홀로 누운 밤
원도 한도 다 내리셨나
한복을 곱게 입고
여한 없는 그 길에
화장火葬에 좋다고
종이집 한 채 붙잡더니
이마저
호사면 호사라고
흔적없이 사른다
수선화
구멍 숭숭 문풍지에 바람만 드나든다
박음질로 기워내던 시골집 건넛방
새벽녘
재봉틀 소리
일어서는 어머니
지아비 치정에도 간직했던 노란 빛
꽃샘바람 잎샘바람 칼바람 다 넘기고
큰갯물
포구로 오는 봄
향기 아직 남았다
목련
조바심 뜬눈 세워
솟아나던 이파리
맨살에 부빈 사랑
평생을 간직한
뒷마당,
오직 하나는
자식 위한 기도였네
다랑쉬 동굴*
바람 차오른 날
댓잎마저 숨죽인
화산도 가슴팍에
삭아 내린 그 마을
깊숙이
배고픔도 잊은
아으윽
저 신음
* 1992년 11구의 희생자 유골 등 4.3사건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모래시계
섬억새는 뒤집혀도 제자리서 피어난다
노을 비낀 중산간
대숲 그늘에 앉아
무진장 무너져 내린 그 흔적을 찾는다
톨째로 굳어버린 맨발의 화산섬
무시로 쏟아지는
무자년의 파편들
처갓집 마을 언저리 뻗어가는 뿌리들
컴푸터에 갇혀있는
모래시계 바닥 날쯤
서귀포 지삿개 돌기둥 불러내어
이 가을
표지석 앞에
미친 바람 재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