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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김희운 시인 시집 엿보기 <신작로를 배회함> 등록일 2020.11.15 15:11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71

김희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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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운



1961년 서귀포시 대포동 출생,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2020년 6월 제주교육박물관 관장으로 퇴임,

 2004년 <시조시학> 등단,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장,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 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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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부르는 것 같다




아홉 살 낄낄대는

제주 돌담 올레길


수선화가 피어서

소복소복 피어서


눈 내려

더 환한 그곳


반쯤 녹은

그 녀석




누수



터미널 장맛비는 네온불빛 꽂아댄다

오뉴월 거품으로 떠도는 나의 교정

출근길 생활기록부 편도선 뻗쳐있다 


훌쩍 큰 내 키만큼 낮아진 알동산은

밝아오는 해무에도 쉰 목소리 답하고


마흔 살

고인 그리움 언제쯤 누수될까




물찻오름




한라산 교래리

한발 한발 제단 쌓고


새벽녘 정화수로 오름 한 채 빌고 나면

오방색 탐라산수국 방울소리 튕긴다


얼쑤 좋다

얼쑤 좋다

물빛 검은 분화구


풀려나는 심방사설

햇살 아래 잦아들면


지친 몸 재우고 싶다

풀잎하나

스르륵...




밭담




일만 팔천 신들도 못 거스른 바람을

오름 들녘 허수아비 심자가로 받으며

옷자락 석양에 물들어 기어이 펄럭인다


꾸불꾸불 돌고 돌다 허기진 하루는

숭숭 뜷린 가슴에 그리움도 놓아버린

비바람 다 내어준 길 흑룡만리 내 흔적들




신작로를 배회함




방 한구석 애지중지 유품을 헤아리다

우연히 펼쳐 든 어릴 적 생활기록부


어린 날

대처로 이끈 모정

전학 흔적 뚜렷하다


부모 희망 공무원

학생 희망 공무원


그 아래 담임 소견 '신작로를 배회함'


오십 줄

바람 실은 배회는

어디쯤 멈춰 설까




종이 집 한 채




일평생 기다리며

일수 이자 어머니


늘그막에 마련한 집

아들놈 주고나서


마지막 홀로 누운 밤

원도 한도 다 내리셨나


한복을 곱게 입고

여한 없는 그 길에


화장火葬에 좋다고

종이집 한 채 붙잡더니


이마저

호사면 호사라고

흔적없이 사른다




수선화




구멍 숭숭 문풍지에 바람만 드나든다

박음질로 기워내던 시골집 건넛방


새벽녘

재봉틀 소리

일어서는 어머니


지아비 치정에도 간직했던 노란 빛

꽃샘바람 잎샘바람 칼바람 다 넘기고


큰갯물

포구로 오는 봄

향기 아직 남았다




목련




조바심 뜬눈 세워


솟아나던 이파리


맨살에 부빈 사랑


평생을 간직한


뒷마당,


오직 하나는


자식 위한 기도였네




다랑쉬 동굴*




바람 차오른 날

댓잎마저 숨죽인


화산도 가슴팍에

삭아 내린 그 마을


깊숙이

배고픔도 잊은

아으윽

저 신음




* 1992년 11구의 희생자 유골 등 4.3사건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모래시계




섬억새는 뒤집혀도 제자리서 피어난다

노을 비낀 중산간

대숲 그늘에 앉아 

무진장 무너져 내린 그 흔적을 찾는다


톨째로 굳어버린 맨발의 화산섬

무시로 쏟아지는

무자년의 파편들

처갓집 마을 언저리 뻗어가는 뿌리들


컴푸터에 갇혀있는

모래시계 바닥 날쯤

서귀포 지삿개 돌기둥 불러내어

이 가을

표지석 앞에

미친 바람 재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