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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
1950년 제주도 서부 한림에서 태어났다.
제주일고와 제주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74년부터 제주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거쳐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2013년 은퇴하였다.
1987년 우리 전통시 시조로 문단에 나와 시집 <섬을 떠나야 섬이 보입니다>,
<가슴에 닿으면 현악기로 떠는 바다>, <시인의 얼굴 산문집 내 마음의 연못>을 출간했으며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0년 동백예술문화상 2011년 제주특별자치도 예술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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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보름달 환한 얼굴
보려는 사람에게 뜨듯
다알리아 화사함도
보고 싶은 사람에게만 핀다
간절한
사람에게만
몰래 와 피는 꽃
사랑
아가가
왜 일어설 때마다
'아가가' 하는 걸까
어머님 4주일 기일
영정 앞에 재배하고
저절로
터져 나온 소리
아가가!
이거였구나
아련하다
남자는 나이만큼 지갑이 두둑해야지
머리맡에 숨겨놓았던
오만 원 쥐어주시던
온종일
비만 내린다
흠뻑 젖은
어머님 기일
덜렁 카드 한 장 얇아진 지갑 속에
선 보리밥 같은 마음
대신 넣고 다닌다
씹어야
단물 가득 고이는
그 말 한 마디
'아련하다'
수월봉
여보게
70 넘으면
수월봉에 오르게나
지는 것도
저리 고운 걸
왜 잊고 살았는지
다 삼켜
어두워진 바다
그 침묵의 깊이까지
섬에 있어도 섬이 보입니다
섬에 있어도
눈 감으면
이리 환히 보이는 걸
내 젊은 날 왜 그렇게
떠나야만 보였을까
이맘쯤
사려니 숲엔
복수초 노랗겠다
눈 밝혀 보려하니
섬은 떠나야 보이는가
푸른 파도 앞에서도
이게 섬인 걸 몰랐었다
한림 앞 바다
자리 팔짝 뛰겠구나
숨 쉬는 돌
신엄바다 외딴 길가
가슴 뻥뻥 뚫린 채로
길가에 버려진 돌
생김새가 마음 아파
아내와
낑낑대면서
겨울 들고 옮겨왔지
이리 돌려도 볼품없고
저리 앉혀도 벙어리인 걸
맷돌 위
돌려 세우니
숨 쉬는 침팬지였다
웃는다
손도 흔든다
이젠 제법 반가운 벗
막걸리 한잔
막걸리 한 잔에도 세상이 녹아있다
보성시장 국밥집
사발 가득 따르며
꼭, 두 손
받들어 마시게 하는
K형의
인생 한 수
감나무 숲
감나무 백여 그루
꿈도 곁에 심었더니
20년 훌쩍 지나
작은 숲이 열렸구나
내 친구
시림(柿林)이라고
아호 지어 보내왔다
오늘도 두어 줄 시(詩)
돌밭을 갈고 갈아
싹이 솟고 뿌리 내려라
꾸역꾸역 심는다
먼 훗날
시(詩)로 숲이면
바꿔야지 시림(柿林)이라고
이렇게 살고 싶다
짠물 먹고 살아도
싱거운
황돔처럼
진흙 속에 발 뻗어도
빠알간
연꽃처럼
간절함
두 손을 모아
고개 숙인
비구니처럼
동그라미 앞에서
월명암 범종소리
원을 그리고 있다
꽃이
지고
다시 피는
윤회를 낳고 있다
모란은
말없이 져도
새봄이면 다시 핀다
살아서 지은 죄 많아
뉘우쳐 합장하면
목소리 고와 종일 우는
꾀꼬리로 다시 살까
직선은
갈 줄만 아나
곡선은 돌아올 줄 안다
인동초
내 아내 같은 인동초
화려하지 않습니다
마를수록
짙어져
오롯이 깊습니다
은은함
떨어져도 짙어
혼자 몰래 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