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말
  • 시조나라 작품방
시조감상실
  • 현대시조 감상
  • 고시조 감상
  • 동시조 감상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신춘문예/문학상
  • 신춘문예
  • 중앙시조백일장
제주시조방
  • 시조를 읽는 아침의 창
시조공부방
  • 시조평론
휴게실
  • 공지사항
  • 시조평론
  • 시조평론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박성민 시인 시집 엿보기<어쩌자고 그대는 먼 곳에 떠 있는가> 등록일 2021.01.05 12:20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498

박성민.jpg


------------------------------------------------

박성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쌍봉낙타의 꿈』 『숲을 金으로 읽다』가 있다.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오늘의시조시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2020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

드라이플라워


여기서 살아나간 향기는 없었다
말라붙은 웃음만 빛깔로 남은 병실
눈뜬 채 잠이 든 그녀
눈꺼풀 떠는 창문

옆으로 돌아누워 거울을 마주 보면
텅 빈 뼛속에서 한 묶음 새가 운다
허공에 부리를 묻는다
물 한 모금 없는 새장

안개가 무성하던 계절은 멈춰 섰다
한 알의 하루를 삼키는 저물녘엔
온몸이 바스라진다
잇몸으로 뜨는 달


목도장 파는 골목


노인의 손끝에서 이름들이 피어난다
이름 밖 나뭇결이 깎여나는 목도장
움푹 팬 골목길 안도
제 몸 깍고 피어난다

캄캄한 음각 안에 웅크려 있는 고독
나 아닌 것들이 밀칼에 밀려날 때
촘촘한 먼지 속에서
울고 있는 내 이름

노인의 이마에서 전깃줄이 흔들릴고
골목에 훅, 입김 불자 길들도 흩어진다
도장에 인주를 묻혀
묽은 해 찍는 저녁


청사과 깎는 여자


그녀는 칼날로 북극 먼저 도려낸다
지구의 기울기인 23.5도로 사과를 눕혀 
돌리며 깎아나간다
북만구가 하얘진다

푸른 지구 속살에서 흘러나온 과즙 향기
끊길 듯 이어지며 남극까지 깎이는
청사과 엷은 껍질에
매달린 빌딩들

사과를 기울여 한 바퀴 돌릴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에 낮과 밤이 지나가고
사랑의 기울기 끝에
빙하가 다 녹는다 


 촛농


가슴 태운 그리움은
발목부터 굳어진다

허공에는 심지 못한
이번 생(生)의 꽃 한송이

누군가 밝히기 위해
내 몸은 낮아진다


지문


바람은 북동에서 남서로 불어온다
고비사막 모래알이 손가락애 흘러내려
세상을 더듬는 손길, 능선에서 쉬고 있다

바람이 너울너울 밀어내는 모래 물결
태양을 공전하는 지구의 버릇처럼
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당신과 나의 거리

거문고의 현과 현이 가둬둔 속울음
나무의 신음들이 나이테를 만들었다
온종일 통화중인 당신에게 다이얼을 돌린 기억



비대면의 가을


마스크를 다시 써도 차디찬 표정들 

무릎이 튀어나온 바지처럼 헐렁하다

흐리고 한때 소나기 쇠창살이 쏟아진다

네모난 원고지 독방에서 살아간다

하늘을 벗어나는 저녁놀도 자가 격리

밤에는 생각마저도 문을 걸어 감근다




편자 박은 말들은 구유만 핥고 있고
재갈 물린 말들은 허공만 긁는데
날뛰는 말들이 자꾸
달아나려 하고 있다

마구간 도망친 날이 다른 말을 데려와
말과 말 푸득이며 얼굴을 비벼대면
얼룩진 말이 태어나
지평선을 넘어온다


배꼽



새들이 떠난 둥지
새똥만 남아있다

몇 알의 진통제가
새알인 듯 떨어진 곳

세탁기
빨래처럼 엉킨
내 전생의 기억들




'뼈'라고 발음하면
영혼이 새는 소리

내 뼈와 포개지는
당신의 뼈에서는

빈 그릇 긁던 숟가락
그 소리가 들린다 


백 년 동안의 고독


내 영혼의 빈 뜰에
울고 있는 새 한 마리

얼어붙은 날갯죽지
눈 쌓인 나무처럼

오늘은
울음도 잊은
깊은 눈의 새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