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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박희정 시인 시집 엿보기 <하얀 두절> 등록일 2020.10.10 08:1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90


박희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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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정


1963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오늘의시조 시인상(2010), 중앙시조대상 신인상(2011), 청마문학상 신인상(2012),
고대문우상(2013) 등을 수상했다.
시조집으로 『길은 다시 반전이다』, 『들꽃 사전』, 현대시조시인선 『마냥 붉다』,

시 에세이 『우리시대 시인을 찾아서』등이 있다.
《시조미학》편집장, 《정형시학》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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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당신과 또 다른 당신을 꽁꽁 기워가는


세상의 허튼소리 감칠질로 꿰매가는


첫 단추 여며줄 실오리, 팽팽한 긴장감 같은




금일봉




정해놓은 건수 앞에 최대한 예의를 갖춘

환한 웃음 너머 흐린 단서 될 수 있는

고삐를 슬쩍 건네며

서로를 엮기도 하는


함부로 뜯지 말 것, 액수도 묻지 말 것

받은 만큼 받는 부담, 준만큼 안도의 힘

탁자에 올려진 저것!

알파와 오메가다




벚꽃천사




유효기간, 사용기간 까마득히 지워졌던


무덤까지 못 가져가는 날벼락의 비밀들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행간이 뒤범벅이다


외면과 무관심 속에 끈벌레처럼 나타나는


삐걱대던 철제빔도, 출렁대던 사다리도


와르르 무너지고야 손 놓았다, 아뿔싸 저런,


언제부터 속마음 그리 꽁꽁 싸맸니?


이제라도 응어리를 너풀너풀 풀었니?


미투요, 시민청마다 할짝 웃는 벚꽃잔치




하얀 두절




한강이 얼었다, 그 위로 눈이 내렸다


며칠 째 오도가도 못 하는 아득한 두절 위로


저마다 화석이 된다, 근황을 알 수 없다


물길을 놓쳐버린, 무수한 은유들이


가양대교 아래에 고드름처럼 메달려


번외의 특보를 쓴다, 처절한 비보 같다




주말부부



이따금씩 들썽대던 그리움이 엷어졌다


습관처럼 주고받는 휴대폰 안부 속엔


할 말은 단문이 되고 수시거도 사라졌다


가족을 품에 안고 혈연으로 살아가는


쉰 지난 부부 뒤로 짧아지는 저 그림자


켜켜이 살아온 날들, 맞은바라기 기억 같은,




소낙비



너를 향한 절규였어

수직으로 쏟아지는


가슴 속 묻어둔 말

일순, 내지르고 싶던


한여름 폭염과 폭우 사이

거침없는 얼정 같은, 




기차, 기울기




마음의 기울기는 수평이 되지 못한다


차창으로 쏠리다가 통로 쪽 기웃대다


눈감고 가늠하는 거리, 아직 어둠 속이다


간이역, 그 어디 쯤에 두고 온 사랑 같은


생쪽매듭 추억과 무지개빛 서설瑞雪 같은  


덜커덩 네게로 닿는 오랜 속도여, 무게여




나사못




나사 빠진 세상 흔적, 도처에 가득하다

어디든 튀어나가려고

누구든 쥐어 박으려고

대가리, 용을 쓸수록 본질과 이별이다


몸체 휘어진다, 허투로 나대지 마라

벽과 벽 사이, 문과 문 사이

외람히 솟은 생각들 촘촘히 감아 줄 것


늑골과 여줄가리는 애초부터 부정합이었나

소통의 틈을 찾아 혈혈단신 박는 일

나사못 언저리마다 언약의 말, 홀친다




신호등




너를 기다리는 동안 신호는 또 바뀌었다


30초 간격으로 깜빡이다 이내 바뀌는


건너편 낯선 사람 속에 내 그리움 찾듯


한 때의 붉은 신호등이 푸른 신호등 되기까지


마네킹처럼 오도카니 서서 신화를 꿈꾼 날들


가을볕 꼬부라진 오후, 너는 오지 않았다




가을 인연




   부드러운 표정과 소소한 언어가 마주한 순간, 시는 즐겁

고 삶은 낙낙했다  


  나무와 바람 앞에 울고 웃으며 어딘가로 쏠리고 싶은

지천명 언저리


  툭, 하고 가을 부스러기가 너를 끌고 내게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