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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이두의 시인 시집 엿보기 등록일 2020.07.09 12:45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412



이두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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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의
2011년 <시조시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주관 시낭송대회 대상
이영도 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우리시대 현대시조선 <그네 나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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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역학



  어디든 정글의 역학 가면 쓴 채 존재한다

  배아 없는 알 순풍순풍 나온다 큰 벼슬 뽐내며 모이 쫓
는 수탉들 머리 위를 빙빙 돌던 독수리가 순식간에 모두
낚아챘다 해체한 조사팀 제 입맛에 맞게 다시 꾸려 유죄의
배아 유전자를 조작하여 무죄를 낳는 힘 탄탄하다 무정란
떠오르는 수면 위로 거센 물결 출렁인다

  발톱만 사나워진다 껍질도 못 깨면서



겨울나무와 새


눈꽃 환한 나뭇가지에 새들이 날아든다

겨울 잠 깊이 들면 꽃눈 잎눈 못 피울까봐

추워서 웅크리다가 제 꽃 향기 잊을까봐

흔들어서 깨워주고 노래까지 불러준다

얼음꽃 핀 손을 잡고 미끄럽다 일러주고

눈가루 흩날려주며 속지 마라 당부한다

행간에 걸려 있는 불필요한 언어들은

꽃눈 가린 눈꽃처럼 오독이 되기 십상

문장 속 헛말의 발자국 햇살 아래 지운다


거름망


들꽃 차를 우리면서
팽주가 던지는 말

꽃 같은 사람이라도
적당히 뜸을 들여

차근히
걸러봐야지
그 속맛을 알 수 있다


가을 목련


닫아도 열려지는 닳은 귀가 폭염이다
위조된 문서들의 아우성을 뒤로한 채
흐벅진 독선과 오만
민낯이 순결하다고?

미궁 속 사인과 각을 뜨는 날선 바람
슬쩍 빠져나가려는 핑계를 잡아챈다
기우뚱 잃은 중심이
목청 한껏 높인다

비바람 몰아쳐도 몸피 못 떨구던 나무
그 반대편 그늘이 자꾸만 늘어나더니
오수에 흠뻑 젖은 꽃
툭, 진다 시월 한낮


푸른 힘줄


뒷물이 앞 물줄기 등짝을 내리친다
단숨에 뛰어내리는 늡늡한 벼랑 아래
일순간 솟구쳐 오른 저 힘줄이 푸르다

오래도록 참은 날도 저런 몸짓이었을까
내 안의 소용돌이 깊은 소에 가두어도
바다로 내쳐 흐르는 그 길 막진 못하리

견디다 멍든 바위 찬 눈길로 쓰다듬고
정방폭포 실려 오는 무지개를 져 나르면
물기둥 사무친 채로 수백 수천 꽃이 핀다 

 

중문에서
-주상절리


아마도 내 사랑은 신생대 그 어디쯤
섭씨 천도 용암으로 무작정 들끓다가
예까지 흘러들어와 하염없이 서있다

파도에 잠 못 들고 달무리에 몸 적시며
가없는 표정으로 숱한 날 기다린다
낯빛도 바꾸지 않고 날숨을 뱉어낸다

구름아, 걸터앉아 옛말을 들어 주렴
백길 멀리 손 흔들며 천년이 또 가더라도
깊고도 높은 울음을 씻어 건져 올려 주렴


모닥치기


서귀포 올레시장 지존의 맛이라는

떡볶이 접시 속에 식구가 다양하다

김밥에 튀김 만두와 삶은 달걀 어묵까지

고추장 국물에서 알콩달콩 소담하다

감칠맛 돋우도록 얼키설키 어우러져

촛불도 태극기도 없이 알싸하게 먹고 싶다



햇살의 실직


철모르게 피는 꽃을 누가 탓 하랴마는
가을 코스모스가 봄 끝에 웃고 있다
제 할 일 잃어버린 건 햇살만이 아니다

된바람 훑고 간 듯 텅텅 빈 일터에는
동료가 떨구고 간 땀에 절은 수건 몇 장
세상은 너덜겅이다 발길마다 막아서는

봄날엔 함박눈이 겨울날에는 철쭉꽃이
해고된 그 햇살을 어디서 찾을까나
오늘도 젊은 혈기가 저물어 가고 있다


벙어리 풍선


갈비뼈 들어 올려 말에 힘주던 저 사람

겹겹의 꽃무늬 포장 말잔치가 화려했다

팽팽히 차오는 공기, 거기 힘이 있는 듯이

풍선 끝에 매달리면 날 수 있다 믿었던가

팽창의 한계점에서 뻥, 하고 터져버려

찢어진 고무 조각을 입에 문 채 말을 잃은!  


은빛 솜털 꽃


바람이 음계를 밟는 하늘공원 억새꽃밭
저녁노을 유서가 눈가에 붉게 물들어
서둘러 하늘문 향해 나서는 은빛 조각들

철새 떠난 자리에 이마 부딪혀 넘어져도
자꾸만 뒤돌아보던 숨가쁜 생의 계단
해매온 숱한 날들이 허공 속에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