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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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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3년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등록일 2016.02.05 23:38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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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신문] 번지점프 해송 현애 / 송필국

▶ [경상일보] 천수만 첯둥오리 / 김윤

▶ [국제신문] 목수 요셉의 꿈/ 이양순

▶ [매일신문] 새는 날개가 있다 / 송승원

▶ [조선일보] 극야의 새벽 / 김재길

▶ [동아일보] 꽃씨, 날아가다 / 조은덕

▶ [농민신문] 연어 / 김완수

▶ [경남신문] 백내장/ 김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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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번지점프 해송 현애(懸崖)

송필국

 

 

한 점 깃털이 되어 허공 속을 떠돌다가

치솟은 바위틈에 밀려 든 솔씨 하나

서릿발 등받이 삼아 웅크리고 잠이 든다

산까치 하품소리 따사로운 햇살 들어

밤이슬에 목을 축인 부엽토 후비작대며

아찔한 난간마루에 고개 삐죽 내민다

버거운 짐 걸머메고 넘어지다 일어서고

더러는 무릎 찧어 허옇게 아문 사리

뒤틀려 꼬인 몸뚱이 벼랑 끝에 매달린다

떨어질듯 되감아 오른 힘줄선 저 용틀임

눈 이불 솔잎치마 옹골찬 솔방울이

씨방 속 온기를 품어 천년 세월 버티고 있다

*현애: 벼랑에 붙어 뿌리보다 낮게 기우러져 자라는 나무

[당선소감]

 

해마다 연말이면 열병을 앓곤 했다. 밤을 밝혀 글을 써도 그게 아니요, 다시 개칠을 해봐도 아닌 시조를 쓰느라 그랬고, 그 글 보내놓고 당선 소식을 기다리느라 더욱 그랬다. 그래도 끝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적공을 드린 것이 결국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아 너무 기쁘다.

 

그날도 어느 야외 주차장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꽁꽁 언 하늘에는 듬성듬성 별이 뜨고 있었고 그때 그 별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것이다. 기다리던 사람이 왔고 우린 서로 꼭 껴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냥 글이 좋아 글을 썼다. 시나리오로 시작해서 소설로, 다시 시로, 장르 속을 떠돌며 추천도 받아보고 신인 문학상도 타보곤 했다. 그러다 뒤늦게 빠져든 것이 우리 정형시 시조다. 항상 모자라거나 넘쳐나거나 아니면 꽉 조이거나 헐렁하거나 하던 그 매력에.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좀 써보자고 일찍이 귀농을 했다. 하지만 어디 농촌 생활이 선비 타령이나 하고 유유자적할 여유가 있었던가. 온실작물이 주업이 되어 버린 지금 낮에는 시설 작물과 씨름을 하고, 밤이면 늘 제멋대로인 시조를 죽기 살기로 껴안고 살았다.

 

작은 렌즈를 통해 우주를 다 올려다 볼 수 있는 천체 망원경같이 앞으로 시조 속에 더 넓은 세상을 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늘 시조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운 정 미운 정 들여가며.

 

오늘 이 영광스러운 지면을 열어주신 서울신문사와 당선이라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이근배, 한분순 두 분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고맙다는 말씀 드린다.

 

처음 시조의 길을 열어 주신 윤금초 교수님, 그리고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 주신 주위의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약력

 

1948년 경북 칠곡군 출생 경북대 농생명과 졸업 및 동대학원 수료 1973년 영화잡지 시나리오 공모 2회 추천 2003년 문학세계 시부문 신인상 한국문인협회 칠곡지부장

 

[심사평]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 돋보여

 

오래 담근질해 온 우리의 모국어가 숨겨진 가락을 찾아내 시조의 형식으로 새롭게 태어날 때 그 울림은 크고 받아들이는 느낌은 더욱 깊어진다.

 

[심사평]

 

온전한 우리의 시인 시조가 형식이라는 굴레를 쓰고서도 어쩌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하는 물음 앞에는 오히려 더 거세고 모질게 파고드는 이 땅의 시재’(詩才)들이 있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당선권에 올라오는 작품들이 늘어가고 있는 만큼 올해도 열기는 높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시적 오브제를 역사성이 담긴 사람이나 고적, 유물에서 찾는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중량감을 더하는 것은 좋으나 신춘문예의 한 패턴으로 인식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당선작 번지점프-해송현애’(송필국)는 바닷가 절벽에 붙어 사는 키가 자라지 못한 늙은 소나무에 기대어 세상의 바람과 서리에 맞서는 인간의 생명력을 그려내고 있다. “버거운 짐 걸머메고 넘어지다 일어서고” “떨어질듯 되감아 오른 힘줄선 저 용틀임에서 짙은 삶의 진액이 흘러나온다. “솔씨하나에서 천년의 세월 버티고까지 4수의 구성과 의미의 배열이 잘 짜여지고 낱말 고르기와 꾸밈도 날이 서 있고 맵차다. 앞으로 시조의 나아갈 바에 큰 보탬이 되리라 믿는다. 끝까지 겨룬 작품으로 알츠하이머’(박복영), ‘경을치다’(김성배), ‘막사발 또는 행성’(송정훈), ‘겨울 소리를 보다’(김희동) 등이 각기 다른 감성과 개성적인 수사로 놓치기 아까웠음을 밝혀 둔다. 정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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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천수만 청둥오리

김윤

 

지축을 뒤흔드는 수만 개 북 두드린다

오색 깃발 나부끼는 천수만 대형 스크린

지고 온 바이칼호의 눈발 털어놓는 오리 떼

 

아무르강 창공 넘어 돌아온 지친 목청

오랜 허기 채워 줄 볍씨 한 톨 아쉬운데

해 짧아 어두운 지구 먼 별빛만 성글어

 

민들레 솜털 가슴 그래도 활짝 열고

야윈 목 길게 뽑아 힘겹게 활개 치며

살얼음 찰랑 가르고 화살처럼 날아든다

 

[당선소감]

? 당선 통보를 접하는 순간 온 몸에 힘이 빠져 한 동안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아끼는 친구들, 스승님, 가족, 문우들의 얼굴이 다가오고 등단의 몫을 할 좋은 시조를 잘 쓸 수 있을 까 하는 두려움에.운동장 한 복판에서 손 난로 하나 품고 사는 듯한 몸과 맘, 그 떨쳐 버리지 못한 허허로움에한 편의 시조를 쓰느라 분리 수거함에 버려지는 수 많은 폐지속 의 나. 종가의 종부로서 시하층층 신경 쓸 곳도 많고 문학에 대한 선망 또한 작파 할 수 없는응집된 정형시에 매료되어 접신했던 죄(?)가 해를 거듭 할 수록 지칠 줄이야! 대학 때 희곡전공을 택하고 살 내렸던 그 때보다 어렵고 힘든 것이 시조수업이 아닌가? “그러게 편히 사시지, 왜 시조는 쓰시느라동정 어린 핀잔을 주던 가족, 그러면서도 옥편을 찾아주는 고마움. 체감온도가 영하 10, 뒷 베란다 세탁기가 얼어 녹일 더운 물을 챙길때면 겨울은 깊어가고 감기몸살로 언 길을 건너 병원을 찾곤 하는데 올해도 신열 속에서 응모작품을 다듬었다.

 

시조의 길에 들어서 헤맬 때 무언의 등불을 달아 주신 스승, 열린시조학회 윤금초 교수님, 선후배 문우들에게 감사 드리며 설익은 과실을 따 열매로 올려 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립니다.

 

김윤 약력

- 1958년 서울출생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민족시 열린시조학회 회원

- 서울시 주관 여성백일장 산문부 장원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31, 118편이었다. 이 가운데 최종심에 오른 작품으로는 <눈뜨는 청동기와> <벌초> <동박새의 아침> <달이는 봄> <선지국을 먹다가> <아라크네의 달력> <천수만 청둥오리>등 이였다.

 

예년 같으면 거론된 일곱 편 모두 당선작으로 뽑아도 될 만큼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현대시조로서의 탄탄한 구성과 미학적 성취가 돋보이는 해였다. 앞의 세 작품이 제외되고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선지국을 먹다가> <아라크네의 달력> <천수만 청둥오리>였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탄력있는 언어 구사와 균형있는 감성 전개로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현상을 보는 것 같아 반가웠다.

 

그러나 아쉽게도 <선지국을 먹다가>의 경우 사레들린 형광등이 초승달로 기울 때<아라크네의 달력>날개를 퇴화시킨 건 한 줌의 모이였으리와 같은 무리한 표현이 작품의 전체 분위기에 결정적인 흠이 되었다. 모든 시는 투명한 비유와 심도 있는 상징 그리고 정확한 언어 선택에서 완성도가 결정된다.

 

<천수만 청둥오리>의 첫째 수와 셋째 수에서의 밀도 있는 표현과 뛰어난 언어감각은 <천수만 청둥오리>떼가 눈앞에서 한 폭의 진경산수처럼 펼쳐졌다. 새로운 언어에 대한 인식과 자기 나름의 시적 개성에 충실 한다면 앞으로 우리시의 영역확대에 당선자의 역할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심사위원 유재영 약력

- 시조시인

- 동학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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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목수 요셉의 꿈

이양순

 

 

자욱한 시름으로 촛불을 켜는 저녁

결 따라 매긴 먹줄 말씀으로 되살아나

한 꺼풀 옹이 박힌 업죄를 벗겨가는 목수여

 

길은 어디 있는가 죄 없는 이 바라보며

성전(聖殿)의 둥근 기둥을 내리치는 손바닥엔

먼 훗날 가슴을 적실 뜨거운 피가 흐른다

 

톱밥 대팻밥에 묻어 있는 생명의 빛

고결한 숨소리가 당신 곁에 머물러

종소리 가득한 사랑이 온 누리에 퍼지고

 

품삯이야 김이 나는 식탁이면 넉넉하고

기도소리 새는 창가 성가처럼 별이 내려

거룩한 날이 열고 저무는 환한 집을 짓는다

 

[당선소감]

내 목소리로 현실과 대화하는 창작 노력

 

말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도 수상 연락을 알려주신 반가운 전화에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말문이 막혀왔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늦은 나이에 시조창작을 시작해 얻는 신춘의 영광이 너무 크고 벅차, 그저 받을 수밖에 없는 감사한 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직 생활 20년이 지나면서 특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이켜 가장 재미있었던 학교 일은 문예 지도라 생각하던 차에 부산시조시인협회 주관 교사시조창작직무연수라는 공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연수를 받고 운명처럼 시조창작에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름 숲 한 장 풀이파리 같이 흔하고 작은 시심에 가치를 담아 주시고,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다정하게 흔들리는 붓끝을 꼭 잡아 방향을 잡아 주신 선생님께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함께 공부한 수정시조 동인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문예창작 활동에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한 제가 재직하고 있는 가야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이하 동료와 학생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이성(理性)이 아닌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귀하게 아껴준 남편과 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전하고 싶은 나의 이야기가 비록 외롭고 긴 시간이 걸릴지라도 내가 선택한 가장 정제된 문학 형식, 우리 민족의 노래인'시조(時調)'에 가슴 온도를 높여 주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말을 부려 마음의 영역을 넓혀가겠습니다. 그래서 내 목소리로, 내 이야기로 현실과 대화할 수 있는 오늘의 문학작품 창작을 위해 노력하는 시인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약력 1963년 부산 출생. 지난해 5월 제27회 전국시조백일장 장원(부산시조문학회 주관). 수정시조 동인. 현재 가야고 국어교사.

 

[심사평] 이미지 속 메시지 강렬하게 전달

 

금년도 응모 작품들은 양적으로 많이 증가했고, 질적인 면에서도 높은 수준들을 지니고 있었다. 시조의 정형미학을 잘 체득하여 시적 성취를 이룬 작품들이 많아 현대시조의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현대시조의 두 가지 난제가 있다면 첫째는 시조의 형식을 고수하다가 시조 속의 시를 놓치는 경우이고, 둘째는 시성을 추구하다가 형식을 깨뜨리는 우를 범하는 경우다. 바람직한 현대시조는 형식과 시성을 함께 아울러 성공한 새로운 작품을 말한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이동명의 '겨울 을숙도(乙淑島)', 권예하의 '점촌장날', 유외순의 '', 이양순의 '목수 요셉의 꿈' 등이었다.

 

'겨울 을숙도'는 시의 형상화 과정이 범수가 아니었으나 시인이 많이 취급한 제재이므로 신선감이 부족했고, 마지막 수의 종장 처리에서는 시조율격에 대한 컨트롤이 조금 미진했다. '점촌장날'은 대형마트에 밀려나는 영세 상인들의 현실적 삶을 잘 반영했으면서도 "곡간 땀 풀어놓고 푸른 바다 퍼덕이고"와 같은 이미지의 병치가 미숙한 게 흠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인 '''목수 요셉의 꿈'이 경합하면서 심사위원들은 토의를 거듭했다. ''은 시의 소재로서 새롭지는 못하지만, 시적 감성이 신선하고 외로움과 그리움의 정서를 섬세한 이미지로 조형한 기법이 수승했다. 이에 비해 '목수 요셉의 꿈'은 섬보다 시어 선택이 투박하지만, 이미지 속에 내재한 시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되는 강점을 지닌다. 이 두 작품을 놓고 긴 논의 끝에 '목수 요셉의 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미래지향적인 건강한 시의 문맥 속에 노정된 밝음의 세계에 대한 믿음과 인류 구원문제에 사유의 광맥이 닿아 있어 이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양순이 응모한 나머지 네 편도 당선권에 드는 신뢰가 가는 작품들이었다.

 

심사위원 정해송 전일희(이상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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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새는 날개가 있다

송승원

 

당찬 야성 내려놓고 발에 익은 길을 따라

 

날갯짓 접어둔 채 뒤뚱거린 몸짓으로

 

달뜨는 도시의 하루 쪼고 있는 도도새*

 

날아 오른 시간들을 깃털 속 묻어 두고

 

쿵쿵 뛰는 심장소리 뉘도 몰래 사그라진

 

그만큼 섬이 된 무게, 어깨를 짓누른다

 

화석에 든 아이콘이 무젖어 말을 건다

 

푸드덕 홰를 치는 한 마리 새 나는 행간

 

앙가슴 풀어헤친 채 물음표를 집어 든다

 

 

도도새 :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 서식했던 새. 천적이 없어 날개가 퇴화돼 날지 못하다가 1505년 포르투갈인들이 포유류와 함께 이 섬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멸종됐다. 현실에 안주해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도도새의 법칙으로 비유해 일컫기도 한

 

[당선소감]

부단한 담금질새는 날개가 있다

 

우리는 때로 새였던 시간을 잊어버린 채 힘껏 날 수 있었던 잠재력을 망각하며 지내는지도 모릅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은 어디에 두고 세상이 어려울 때 쉽게 모든 것을 포기하는 현실을 만나곤 합니다. 그러다 도도새처럼 도태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새는 날개가 있다를 주제로 시상을 이끌어 내려 부단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형시인 시조로 많은 사유와 사고를 담고 녹여낸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웃음을 잃어버린 채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면서 번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가슴에 쌓여있는 울컥거린 그 무엇을, 36구라는 시조의 장르에 풀어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적 이미지와 형상화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많은 날을 고민하다 하는 수 없이 응모를 했습니다. 이런 저의 설익은 글을 이렇게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관형사를 덧입혀 되돌려 주신 매일신문 관계자와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나태하지 말고 더욱더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부끄럽지 않게 선배님들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아울러 늘 독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교수님과 문우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또한 시조를 쓰도록 시간을 할애해 준 아내와 묵묵히 아빠를 응원해 준 우리 두 아들에게도 이 기회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약력

 

1956년 출생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졸업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사

 

[심사평]멸종한 새 통해 활달한 상상력·역동적 이미지로 삶 성찰

시조는 정형시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형식을 지키는 것이다. 시조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형식이 정제된 것은 우리 정서를 나타내는 데 적합한 형식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형식이 전통을 가진 것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것만을 담는 형식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시조는 시절가조'(時節歌調)를 줄인 말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 뜻이 오늘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 명칭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도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당선작을 뽑는 범박한 기준으로 삼았다.

 

일차로 7명의 28편을 뽑았다. 그중에서 한 사람의 작품은 당선 경험이 있는 작품이었고, 또 한 사람은 근년의 신춘문예에서 최종심까지 오른 작품이었다. 그러나 최종심에서 심사자가 작품에 대해 미흡한 점을 지적했지만 그것이 수용되지 않고 제목을 바꾸어 응모된 작품이라 제외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머지 세 분, 한경정의 '겨울 과원을 지나다'2, 장윤정의 '0시의 녹턴'3, 김경순의 '가을 쉼표'3편은 모두 깔끔한 작품들이었다. 시조에 대한 열정이 묻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감성에 기대었고, 비교적 관념 노출이 빈번한 점이 아쉬웠다.

 

나머지 이한의 '산수화에 대한 소견' 4편과 송승원의 '새는 날개가 있다' 3편을 두고 거듭 읽었다. 이한의 작품은 소재가 그림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고, 나름대로 개성적이었다. 그러나 송승원의 작품이 가진 소재의 다양성과 깊이를 따라잡지 못했다. 따라서 송승원의 '새는 날개가 있다'를 당선작으로 올린다. 날개가 퇴화되어 날 수 없었고 결국 멸종해 버린 도도새를 통하여 활달한 상상력과 역동적인 이미지로 우리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한 점을 높이 샀다. 우리는 늘 의문부호를 찍으며 산다. 그 의문부호 하나 선명하게 찍은 작품이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아깝게 선에 들지 못한 응모자들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문무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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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극야의 새벽

김재길

 

 

얼붙은 칠흑 새벽 빗발 선 별자리들

 

붉은 피 묻어나는 눈보라에 몸을 묻고

 

연착된 열차 기다리며 지평선에 잠든다.

 

황도(黃道)의 뼈를 따라 하늘길이 결빙된다

 

오로라 황록 꽃은 어디쯤에 피는 걸까

 

사람도 그 시간 속엔 낡아빠진 문명일 뿐.

 

난산하는 포유류들 사납게 울부짖고

 

새들의 언 날개가 분분히 부서진다

 

빙하가 두꺼워지다 찬 생살이 터질 때.

 

제 눈알 갉아먹으며 벌레가 눈을 뜬다

 

우주의 모서리를 바퀴로 굴리면서

 

한 줌의 빛을 들고서 연금술사가 찾아온다.

 

황천의 검은 장막 활짝 걷고 문 열어라

 

무저갱 깊은 바닥 쿵쿵쿵 쿵 울리면서

 

안맹이 번쩍 눈 뜨듯 부활하라 새벽이여.

 

 

극야: 밤만 계속되는 시간을 말함. ‘백야의 반대 현

 

[당선소감]

시조를 향한 도전최전방으로 날아온 당선의 기쁨"

 

극야의 새벽 같은 시간에 따뜻한 여명의 빛 한줄기가 강원도 최전방의 초병에게로 날아왔습니다. 20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 시작해본 것은 경남대학교 청년작가아카데미에서 시조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무언가에 도전하려 하는 청춘의 자그마한 불꽃이었습니다. 모두가 저에게 랭보를 꿈꾸어야 할 청춘의 시간에 시가 아닌 시조를 쓴다고 의아해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늘 제 마음을 사로잡은 시조는 율()로서 완성된다고 굳게 믿고 제 발자국을 정법으로 삼아 또박또박 헤아리며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지독한 필사의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묘사와 은유의 공간에서 늘 회초리로 저를 때리며 살아왔습니다. 여름과 겨울마다 하동 평사리에서 가진 지옥훈련 같았던 창작교실이 지금의 저를 키웠습니다. 지금껏 시인들의 하늘을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가깝게만 느껴졌던 그 하늘이 이렇게 멀 줄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바야흐로 운명의 폭발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이제 스스로 운문의 하늘을 밝히는 초신성이 되었습니다. 청년작가아카데미 교수님들을 처음 뵈었을 때 저는 빛을 머금은 원석이라고 저를 소개했습니다. 이제 그 꿈만 같던 빛을 손아귀에 쥐었습니다.

 

이제 스스로를 더욱 세공하여 늘 정상에서 환하게 빛나는 보석이 되겠습니다. 따뜻한 바다 통영에 계신 사랑하는 부모님 그리고 존경하는 김정대, 정일근 교수님과 청년작가아카데미에 이 영광을 모두 돌리겠습니다. 이름표를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조선일보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1991년 경남 통영 출생

경남대 국문과 3년 휴학. 경남대 청년작가아카데미 1기 수료

현재 육군 7사단 일병으로 현역 복무 중

 

[심사평]거침없는 상상력과 활달한 호흡으로 시적 지평 넓혀

 

약관은 한때 신춘문예의 단골 수식어였다. 그 약관의 관을 얹어 한 시인을 내보낸다. 그의 이름은 김재길, 보무도 당당한 대한민국의 육군 일병이다. 스물을 갓 넘긴 청년의 야심 찬 걸음이 쿵쿵쿵 쿵지축을 울리는 듯하다.

 

응모작에는 충혈의 눈빛이 비치는 게 많았다. 끝까지 들었다 놓았다 한 것은 이윤훈·이병철·장윤정·하양수·송인영씨였다. 정형시로서의 미학적 완성도나 호흡의 안정감, 현실적 맥락을 잃지 않는 감각과 발상, 형식에 함몰되지 않는 신선한 긴장감 등에서 남다른 공력의 시간이 보였다.

 

반가운 것은 공소한 관념이나 낡은 서정이 아닌 오늘 이곳의 살아 있는 삶을 정형(定型) 안에 다듬어 앉히면서 자신의 목소리도 펼쳐낸다는 점이다. 시조에 대한 편견을 날려줄 작품이 늘고 있어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당선자는 그중에도 가장 헌걸찬 형상력과 보폭을 보여준다. ‘오로라’, ‘우주의 모서리’, ‘무저갱까지 거침없이 오르내리는 상상력과 활달한 호흡으로 새벽의 시적 지평을 한층 넓히는 것이다. 낯설고 분방한 그래서 더 역동적인 비유와 이미지들은 정형의 율격을 시원하게 타 넘으며 보기 드문 대륙적 약동을 뿜는다. 이 모두 당선작을 기꺼이 들어 올리게 한 패기와 가능성이다. 하지만 다른 작품에서 비치는 기술의 과잉 같은 느낌은 주의를 요한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 크고 새로운 세계를 번쩍열기 바란다. 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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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꽃씨, 날아가다  

조은덕

 

 

바람이 날라다 준 햇살 한 줌 끌어안고

손가락 굵기만큼 동글 납작 눕히는 무

어머니, 물기 밴 시간 꼬들꼬들 말라 간다

 

짓무를라, 떼어 내고 뒤집어서 옮겨 놓는

뒤틀린 세월들을 하나 둘씩 펼쳐본다

여름이 남기고 간 속살 광주리에 가득하다

 

맵고 짠 눈물 섞어 켜켜이 눌러 담은

어둠 속에 숨 고르는 울혈의 무말랭이

주름진 생을 삭힌다, 아린 손끝 붉어온다

 

돌아가는 모퉁이길 얼비치는 맑은 아침

마른 뼈 꽉 움켜 쥔 말간 핏줄 여울목에

어머니 가벼워진 몸, 꽃씨 되어 날아간다

 

[당선소감]

 

기다림이 있으므로 시간은 더디게 갔고, 더딘 만큼 견뎌야 할 생의 길이는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생의 길이만큼 또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에 매달려 날마다 초조한 것보다 희망도 소원도 없는 게 훨씬 더 편할 거 같아요."라는 김수현 선생님의 '사랑과 야망'에서 '미자'의 대사를 내 것처럼 중얼거리고 다녔으나 늘 바라는 것들은 더욱 커지고, 시간은 주체할 수 없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어젯밤 꿈에 스마트폰으로 합격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꿈처럼 2013년 신춘문예 수상소감을 씁니다. 고맙습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 때때로 무너질 때 힘을 북돋아 주신 김봉집 선배님, 그리고 이 길을 가는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수 없이 목 젖혀 바라보았던 하늘을 우러릅니다. 기쁨도 감당하기 힘들면 울음이 되는가봅니다. 세상 600개의 언어로도 통역되지 않는 눈물의 빛깔은 투명합니다. 그 투명함 속에 내 어머니가 있고, 평소 '조시인'이라고 불러 주시던 먼 유년의 아버지가 계시고, 가까이 있어서 소홀했던 내 가족이 있고, 너무 가까우므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기도 했을 이웃이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하므로 용서받고 용서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풋것들' 가운데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큰 절을 올립니다. 우리의 숨결, 우리의 정신이 녹아 있는 현대시조의 마당에 한 계절 밝히는 꽃을 피우겠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언어로 이 땅의 위로가 되겠습니다.

 

[심사평]

 

근년 들어 신춘문예에 응모된 작품의 대체적인 경향은 표현주의적 색채로 쏠린다는 점일 것이다. 표현이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니 아직 원숙미가 부족한 신인들이라면 의당 여기에 치중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 그쳐야 한다. 양념이나 조미료에 의존하는 한 재료 고유의 맛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으로 민승희의 황소, 유외순의 인각사에서, 조은덕의 꽃씨, 날아가다등 세 편이 남았다. 이 작품들은 각각의 장점들을 지니고 있었지만 인각사에서는 역사적 소재가 지닌 창의성의 한계로 인해 순위에서 밀려나고 황소꽃씨, 날아가다를 두고는 장고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적 대상에 대한 관찰력과 사유, 감각적인 시어 선택, 상상력의 깊이 등 두 사람 모두 오랜 시력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소는 선짓국을 뜨면서 황소의 존재를 떠올리고 흡사하게 살다간 아버지의 삶을 읽어내는 상상력의 깊이가 돋보였으나 시선이 과거의 반추에 멈춰버린 아쉬움이 남았다. 그에 비해 꽃씨, 날아가다는 무말랭이를 만드는 체험과정에서 발견해 가는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시조 특유의 양식적 긴장미와 맞물려 공감의 진폭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의 높은 완성도 또한 신뢰를 견인하였음을 밝혀두며 개성미가 넘치는 작품으로 시조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켜 주길 기대한다. / 한분순, 민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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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연어

김완수

 

오년 전에 허물 벗듯 훌쩍 떠난 금실네가

가을날 지느러미 찢긴 채로 귀농했다.

세 식구 돌아온 길에 자갈들이 빽빽하다.

 

땅과 마주하는 법은 손에서 놓은 지 오래

도회의 수년 배긴 굳은살이 아른거려

금실이 아버지 눈은 흙마저도 시리다.

 

지게질도 해 보고 바닥에도 서 봤다.

시골이나 도시나 아찔하긴 매한가지

온 식구 해묵은 삶은 아가미도 헐었다.

 

댐처럼 가슴이 막혀 오는 두렁의 기억

금실네는 잃어 버린 편린들을 찾기 위해

혼탁한 모랫바닥을 퍼덕거려 가야 한다.

 

[당선소감] “시조의 길을 힘차면서도 겸허히 걸을 것

 

날이 잠시 풀리는가 싶더니 하늘이 찬바람을 몰며 다시 샘을 부리던 오후, 벅찬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들뜬 가슴을 진정시키고 지나온 발길을 가만히 돌이켜 보니 끊임없이 문학을 향해 구애를 펼쳐 온 시간의 편린들이 가지런하진 않더라도 지워지지 않는 화석처럼 온전하고 뚜렷하게 박제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냥 차갑게 정지해 있을 것만 같던 그 편린들은 어느새 볼그레한 생기를 머금고서 저를 향해 웃고 있었습니다.

 

 구애에 대한 당장의 응답이 있건 없건 짊어지고 가야 할 숙명처럼 제법 의젓하게 창작이란 외로운 길을 걸어온 데 대한 묵직한 응답이었나 봅니다. 어느 누구는 눈 뜨면 변화하는 이 시대에 그 길이 고루하고 무모한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보장이 없고, 가도 가도 끝이 뵈지 않는 여정이었어도 그 길은 듬성듬성하나마 희망을 풍화되지 않는 푯돌로 놓아 주었기에 멈춰 서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거나 시대의 조류에 역주행하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갖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시조의 길을 힘차면서도 겸허하게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시조의 진득하고 웅숭깊은 맘씨를 닮아 좀처럼 봄다운 봄이 찾아들지 않는 농민과 농촌의 현실에 따스한 시선으로 더 바짝 다가가고 싶습니다. 시조의 길은 농민, 농촌의 단직한 길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당선의 기쁨을 항상 곁에서 누구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성원해 주신 어머님과 먼저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 믿음에 숨결 같은 온기를 불어넣어 주신 농민신문사와 심사위원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김완수 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전북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졸업 2008년 계간지 시에신인상 수필 부문 당선 2009년 제1강원문학신인상 수필 부문 당선 2012년 제15회 재생백일장 일반부 산문(소설) 부문 장원 수상 2012년 제2회 장생포 고래 창작 동화 공모전 우수상 수상 ()학원장

 

[심사평] 흙으로 돌아가고픈 인간 본연의 숨결 잘 배어나

 

금년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농촌을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그동안 여러 번 작품 대상이 되었던 역사적 사물, 인물 중심에서 벗어나 농촌적·전원적 정서가 묻어나는 소재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감동을 주며 눈길을 끌었다.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 올라온 12편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은 장시간 논의를 거듭했다. 그 끝에 <아버지의 고랭지> <봄비, 맨발로 오네> <연어> 등으로 압축해서 다시 읽었다. 이들 작품은 어느 것을 선정하든 당선권에 들 수 있는 우수작들이었다.

 

 그럼에도 응모작 하나만이 당선의 영예를 차지할 수 있어 계속 반복해 정성 들여 검토한 끝에 <연어>를 당선작으로 확정 지었다. 작품 <연어>는 네수로 된 작품으로 연어가 먼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모천(母川)으로 돌아오듯,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갔던 금실네가 고향에 돌아와 새 삶을 개척하며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내용을 다룬 작품으로, 흙으로 돌아가고픈 인간 본연의 숨결이 잘 배어난 작품이다.

 

 <아버지의 고랭지>는 대화체와 사투리를 섞어 생동감 있는 신선감은 주고 있으나 다소 거친 표현과 무게감에서 망설여졌으며, <봄비, 맨발로 오네>는 동시적인 분위기가 너무 짙어 당선권에서 멀어졌다.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좋은 성과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이근배<시조시인>, 한분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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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백내장

김주경

 

 

커튼이 내려오며 연극은 끝났다

불쑥 이별을 통보받은 그날처럼

관객도 주인공도 이젠,

내 몫이 아니란다

 

함부로 탕진해 버린 시간의 얼룩들로

너무 일찍 마감 된 인생의 에필로그

어둠에 갇힌 오늘이여

기다린다,

커튼 콜

 

[당선소감] 시조에 대한 짝사랑 끝내며

 

아주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습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과 동경이 마음 한편에 옹이처럼 박혀 있었나 봅니다. 조금씩 움을 틔우는 시조에 대한 갈망을 마냥 묻어둘 수는 없었습니다.

 

2012년은 제겐 또 한 번의 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습니다. 너무 일찍 찾아온 백내장으로 잠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더 밝은 세상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행운 또한 가져다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격한 율격 속에서 감각적인 언어로 감동을 이끌어 내는 시조의 긴장된 호흡에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자유시에서 정형시로 옮겨가는 발걸음이 무척 조심스럽고 많이 망설여지기도 하였지만, 틈틈이 혼자서 습작을 해 온 시간들도 내겐 소중하기에 감히 용기를 내어 보았습니다. 미로 같아 보였던 36구에 눈을 맞추고 한 음보 한 음보 조심스레 발걸음을 맞춰 봅니다.

 

이제 시조에 대한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고 커밍아웃하는 마음으로 사랑 고백을 합니다. 부디 시조가 나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기를, 나의 사랑만큼 나를 열렬히 사랑해 주기를.

 

부족한 작품을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시조의 품격에 걸맞은 보다 깊이 있는 작품으로 보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다는, 최고의 독자이신 어머니께 오래오래 일급독자로 계셔주기를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전합니다. 내 시의 원천인 가족과 긴 시간 문학의 버팀목이 되어 주신 선생님, 동인들 사랑합니다. 모두 함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1958년 밀양 출생 밀양여고 졸업 2004시선시 신인상

 

[심사평] 불필요한 말 걷어내 시조다웠다

 

올해 시조 부문 응모작들은 팍팍한 현대인의 일상을 노래한 것이 많았다. 그만큼 요즘 삶이 간단치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복잡하고 빠른 시대일수록 절제와 명징함을 생명으로 하는 시조가 경쟁력을 갖는다. 또한 세계화 시대, 민족의 정체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에 한국문학의 정수인 시조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심사에 임하면서 시조 본질에 최우선한 작품을 뽑기로 했다. 우선 정형의 양식을 충실히 지키되 현대인의 의식에 와 닿는 신선함과 36구의 보법을 안정되게 구사하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4인의 작품은 나름 치열한 습작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송영일 씨의 문자로 그린 모놀로그는 제목부터가 눈길을 끌었다. 군데군데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손을 들어주지 못했다.

 

김갑주 씨의 흔적신화부동산역시 좋은 작품이었다. ‘흔적은 텃밭을 가꾸다가 발견한 백자조각을 통해 조선여인과 비면에 새긴 명문을 만나기도 하는 등 활달한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신화부동산은 부동산 이 씨 할아버지의 눈을 통해 주택난과 인생부도를 겪는 우리 이웃의 간단치 않은 삶을 잘 반영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이미지를 드러내기보다 서술에 그치는 단점을 극복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당선작으로 밀지 못했다.

 

이에 비해 김주경 씨의 백내장2수의 짧은 시조 속에 문득 마주친 중년의 절망을 잘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말을 걷어내고 명징한 이미지로 승부한 것이 시조답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둘째 수 종장, 호흡을 스타카토로 끊으면서 리듬감을 살린 것도 오늘의 당선에 한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신춘문예 당선은 시작이지 완성이 아니다. 쉼 없는 노력으로 시조문학을 더욱 풍성히 하고,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길 수 있는 문인으로 성장하기를 빈다.

 

<심사위원 이우걸·이달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