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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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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07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16.02.09 20:21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203

2007년 신춘문예 시조당선작/당선소감/심사평/수록합니다]
우리의 정형시인 시조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차 례>==============================

▶ [중앙일보] 사과를 만나다 /박연옥
▶ [동아일보]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 /이민아
▶ [부산일보] 장작불 /민달 
▶ [국제신문] 저울 /이광
▶ [전북중앙] 더덕 /박신양
▶ [조선일보] 젖 물리는 여자 /노영임
▶ [서울신문] 남해기행 /이아영/
▶ [대구매일] 가면놀이 /이민아
▶ [경남신문] 어떤귀가 /김명희
▶ [농민신문] 구석집 /김사계(본명 김동인)
▶ [창조문학신문] 달세 광고지를 붙이며 /민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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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1.jpg

 
[2006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작]
사과를 만나다
박연옥

길어야 일주일쯤 머무는 줄 미리 알아
올핸 꼭 만나리라 서둘러 꽃 피워놓고
받침이 집인 줄 모른 채 사과꽃은 지더니

떠난 자리 들어선 열매 뙤약볕에 담금질하고
비바람에 지는 벗들 가슴으로 배웅하며
모질게 견뎌온 나날 과즙으로 고이더니

끝내 그를 알고 안절부절 못하는 낯빛
그걸 헤아린 듯 크게 한 입 베어 무니
달디단 사과향 속으로 그림자 두엇 잠긴다


[당선소감]

어려서부터 말수가 적던 나는 언제나 혼자였다. 여럿이 어울릴 때마다 언제나 뒷전에서 서성대던 나. 그런 나에게 시는 마음의 언어였고 시조는 언어의 중요한 일부였다.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얼떨결에 월 장원을 하고나서부터 내가 버린 밤은 얼마이며, 맞이해야 했던 바람은 또 얼마였던지. 이제 빈 그릇 하나 조용히 내 앞에 갖다 놓는다. 이 그릇에 내 운명처럼 담아내야 할 3장 6구 푸른 파도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박재삼 선생님의 고향에서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 오늘은 다도해가 보이는 남해 금산, 구부러진 소나무 한 그루 보러가야겠다. 글쓰기를 이해하고 보살펴 준 가족들과 멀고 가까운 여러 이웃께 감사한다.

◆약력
▶1959년 경남 사천 출생
▶2001년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심사평]

신인문학상을 가리는데 올해도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 당선작 '사과를 만나다'는 따뜻한 관찰을 통한 시간의 육화가 일품이다. '받침이 집인 줄 모'르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다시 앉아 '과즙으로' 고이는 과정이 사뭇 그윽하다. 시조 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지더니', '고이더니' 같은 결구도 셋째 수에서 효과적으로 수렴하고 있다.

다른 작품의 고른 수준과 종장 처리 능력이 평가에 한몫했음을 밝힌다. 이번 심사에서 특히 중시한 것은 미학적 완성도다. 참신성을 형식에 잘 앉히지 못할 경우, 이후의 작품이 흔들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끝까지 논했던 김대룡.김주용.연선옥.임채성.정상혁.조은아 제씨는 이와 같은 이유로 순위에서 밀렸다.

이미지와 형식이 겉돌거나(김대룡.김주용.정상혁), 의미의 과잉(임채성) 혹은 공소한 내용(연선옥.조은아) 등이 지적되었음을 덧붙인다.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게 될 것을 믿는다.
<심사위원 : 유재영·이한성·김영재·이정환·이지엽·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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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
이민아

무제치늪* 골짜기에 사나흘 내린 눈을
녹도록 기다리다 삽으로 밀어낸다
사라진 길을 찾으려 한삽 한삽 떠낸 눈

걷다가 밟힌 눈은 얼음이 되고 말아
숨소리 들려올까 생땅까지 찧어본다
삽날은 부싯돌 되어 번쩍이는 불꽃들

성글게 기워낸 길 간신히 닿으려나
내밀한 빙판 걷고 먼 설원 헤쳐가면
삽 끝은 화살 같아져 모서리가 서는데

결빙에 맞서왔던 삽날이 손을 펴고
쩌엉 쩡 회색하늘에 타전하는 모스부호
마침내 도려낸 상처 한땀 한땀 기워낸다

*무제치늪 : 울산 울주군 삼동면 정족산(鼎足山)에 자리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층습원(高層濕原). 6000여 년 전 생성됐으며 지금도 수많은 습지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심사평]
이근배 (시조시인)

땅속 깊이 뿌리박은 나무가 봄을 만나 꽃을 피우듯이 시조는 신춘문예를 만나 새 잎을 틔운다. 시조가 현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난 지 100년을 맞은 지난해에는 모국어의 가락이 크게 소용돌이쳤다. 그런 까닭일까, 응모작들이 예년에 비해 형식과 내용의 각도에서 날을 세우고 있었다.

신춘문예를 의식한 소재와 주제를 다룬 작품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며 앞서 달려오고 있었으나 의욕과 실험정신을 완성도 높게 채우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또한 시조는 시각적 형식미에서 자유시와 식별시켜야 함에도 의도적으로 구와 장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표기법을 쓰는 유형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조가 자유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형식의 파괴가 아니라 내재적 의미의 농축에 힘써야 하고, 글감잡기에서 형상화까지 치밀하게 결구(結構)해야 할 것이다.

당선작 ‘눈은 길의 상처를 안다’(이민아)는 순수한 원형을 지닌 눈이라는 오브제에서 상처를 만들고 그것을 도려내는 메스를 잡는 손이 능숙하다. 계절성을 띤 소재이면서 일상에서 끄집어내기 어려운 시의 줄기를 찾아가는 생각이 살아 있다. 명사 ‘삽’을 거듭 쓰는 것과 새맛내기가 덜한 점이 있으나 발상의 깊이가 있고 감성의 칼끝에 날이 서 있어 시조에 한몫 하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마지막까지 겨룬 작품으로 ‘무용총수렵도를 보며’(방승길), ‘신 공무도하가’(박채성) ‘탁본’(송은율) ‘그 겨울의 갯벌에서’(송유나), ‘숲과 그루터기’(설우근) 등이 숨 가쁘게 시조의 벽을 타고 넘고 있었으나 다음 기회로 넘겨지게 되었음을 밝힌다.

[당선소감]
이민아

▶1979년 서울 출생
▶2002년 부경대 국문과 졸업
▶2004년 해양수산공모전 창작부문 해양수산부장관상 수상
▶2007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현재 울산 보라컨트리클럽 근무

이태 전 고속도로 교통사고 이후 시 습작은 한 손에도 꼽지 못할 만큼 빈약했다. 열정에 대한 자기검열과도 같았던 이번 투고는 시마(詩魔)에 들린 듯 밤을 새며 쓴 연애편지였던 셈이다.

심사위원 선생님과 동아일보사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7년 간 거듭된 낙선의 시간이 시어의 살결을 단단하게 하기 위한 염장(鹽藏)의 숙성기와 닿아 있음을 깨닫는다. 객토를 하듯 스스로 경계하며 시조의 부단한 걸음을 한 발씩 딛고 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당선 통보를 받고 일터인 골프장으로 나가 솥발산 무제치늪 너머를 오래 바라보았다. 은현리에 계신 정일근 선생님의 응원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부경대 국문과 은사님, 국제 가족들과 박정애 선생님께 감사의 눈물로 연하장을 적는다. 학창시절 문학을 꿈꾸게 해 준 대산문화재단과 절정문학회에도 안부를 전한다.

지금처럼, 눈 덮인 길을 함께 헤쳐 갈 어머니와 가족. 더불어 내 생의 모든 필연과 4월 이후 잠시 찾아온 회복과도 같은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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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장작불
민달            

1.
궁핍한 땅 말뚝 박아
지열(地熱)에 앓고 나니

계절을 뒤로하는
소소리 바람 산득하고

시나위
질펀한 곡조로
밑불을 토해 낸다

2.
회붉은 목질부(木質部)
너울진 꿈이 있어

겯고 트는 젖줄 위로
끔틀대는 봄배냇짓

한밤내
섣부른 불길
북천(北天)을 찾아 간다

3.
줄지은 산맥들
부푼 구름 보듬고

동강난 불기둥
아직은 뭉근해도

옹골질
맥박 이으며 우 적 우 적 타구나


[심사평] 묘사보다 더한 것
임종찬 /시조시인

초심을 통과한 작품은 16편이었다. 다시 재심 끝에 '섬'(이광수),'차를 마시며'(박문숙),'홍옥'(한마루),'장작불'(민달),'담쟁이'(윤평수),'어떤 동행'(조춘희),'인생'(이상윤),'사북역에서'(정영화),'달팽이'(문경희),'해일'(배은상),이렇게 10편으로 줄어들었다. 줄인 근거는 인생의 골똘한 의미를 담았느냐 아니면 사물의 묘사에 그쳤느냐,였다. 삼심은 무척 힘들었다.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종심에 잡힌 작품은 4편이었다.

'달팽이'는 살아 있는 언어가 마음에 들었으나 시조로서의 단련된 언어라는 점에서는 모자랐고,'장작불'은 민족의 아픔과 열망을 장작불을 통해 바라본 시점이 훌륭했으나 상징이 추상화된 흠이 있었다. '담쟁이'는 시심을 길게 이어가는 수법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반대로 압축미가 모자랐다. '섬'은 딱히 흠을 잡기 어려웠으나 신인다운 티가 좀 모자랐다.

끝까지 선자를 괴롭힌 작품은 '장작불'과 '섬'이었다. 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묘사보다는 시상(詩想),시상 그 너머 역사성에 가점을 주다 보니 '장작불'을 당선작으로 밀 수밖에 없었다. /임종찬 시조시인


[당선소감]
민달
"겨레시 생명줄 잇기 온 힘"

◇1967년 경남 산청 출생.
▶부산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2년 '전망'시 부문 등단.
▶2004년 3인 시집 '낙하산을 펴다' 출간. 현 금성고등학교 교사.

늘 세상의 변혁을 꿈꾸어 왔다. 세상은 꿈쩍도 않고 내겐 절망이라는 흉터가 생겼다. 나는 결국 해체시의 인질이 되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해체시의 끝을 향해 추락하던 몸뚱어리가,더 이상 해체할 수 없는 시조로 귀착했으니.

나를 키운 8할인 은사님들이 먼저 떠오른다. 해운대중학교 때 최낙복 선생님,금성고등학교 때 故 정관영 선생님,부산대학교의 이영일 선생님. 세 분의 격려 말씀 덕분으로 이제껏 포기 않고 문학에 영혼을 저당 잡힌 셈이다. 모교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학과 은사님들의 가르침에도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예순이 넘도록 일기를 쓰고 계시는 아버지,가족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시는 어머니,핏줄 당기는 글친구 종석,해환,형오,효제,얼굴 모르는 펜벗이었던 혜수 형,한 번씩 먼지를 털며 꺼내보는 삼중당문고 시집들,성지순례하듯 찾아갔던 술집들,옥죄는 현실 앞에 비상구로 다가선 추상(追想)명사 선(?). 모두가 내 시의 탯줄이다.

하나님은 분명코 살아 계신다. 내게 과분한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기적같은-당선소감을 쓰면서도 내가 나비인지 인간인지 믿기지가 않는-일이 일어났고,난해하고 술빛 가득한 자유시보다는 반듯하고 솔향 나는 정형시 같은 남편이길 바랐던 아내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어린 예슬이와 예리도 기도했으리.

아직은 갈 길이 멀고 부끄러운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우리 겨레시의 생명줄 잇기에 온 힘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을 드린다. 그리고 시조라는 아뜩한 고지로 오르는 초입을 마련해 주신 부산일보사에도 고마움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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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저울
이광

달아보면 느껴지는 저마다 지닌 무게
눈금 하나 사이에서 추를 살짝 멈추고
평형을 이루어내던 대저울이 생각난다

한 걸음 물러서면 한 쪽으로 쏠리고
괜한 욕심 앞세우다 흔들리어 떠는 몸짓
눈앞에 그려보고도 어긋나는 평형의 길

하루 가면 하루치 빚을 지고 돌아와
그 무게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생의 저울
언제쯤 수평에 서서 저 해넘이 바라보랴


[심사평]
진솔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사유 돋보여

좋은 시조는 어떤 모습일까? 심사를 할 때마다 새삼스럽게 이 질문을 먼저 떠 올린다. 정형시인 시조는 물론 그 형식을 잘 소화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공정 자체가 언어를 시적으로 극화시키는 적절한 압축과 긴장의 아름다움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대를 투시하는 예리한 시인의 눈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신춘문예의 경우 하나 더 욕심을 낸다면 참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수백 편의 응모작을 조심 조심 정독해 갔다.

대체로 시조 형식을 모르는 응모자는 없었다. 수준도 예년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시상이나 어법이 지나치게 평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관심을 끈 것은 '숭어 뜀을 담아오다', '프리즈 프레임', '판자촌 봄비', '저울' 등이었다.

'숭어뜀을 담아오다'의 경우 리듬이 살아 있고 이미지가 참신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울림이 없다는 점이 적지 않은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프리즈 프레임'의 경우 시상이 자유롭고 기법 또한 참신했다.

그러나 전통시조 작법에서 바라보면 지나치게 이탈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낳게 했다. 언어의 밀도, 시상의 구체성 면에서도 아쉬움이 있었다. '판자촌의 봄비'의 경우 시조를 잘 알고 습작한 경험이 오랜 시인의 작품으로 읽혔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소박한 시상과 긴장감 부족이 흠이었다. 결국 올해의 영광은 '저울'의 작가 이광 시인에게 돌아갔다. 이 시인의 장점은 시상의 진솔성과 결코 가볍지 않은 시적 사유의 깊이에 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은 한결같이 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빚어낸 만만치 않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부분 부분 지나치게 비시적이거나 다른 시인의 그림자 같은 것이 있고 회고조의 정서도 노출된다. 그런 면에서 비교적 완성도가 높은 '저울'을 내세우기로 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재지만 쉽게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저울'이다.

앞서 거론한 바와 같이 오랜 시적 수련과 사유의 깊이가 인생론적 의미를 띤 울림 있는 작품으로 빚어놓았다. 참신하지 않다는 흠이 있지만 신뢰가 가는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성을 빈다. 이근배 이우걸 (시조시인)


[당선소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작품 쓰고파"

당선 소식을 접하고 흥분이 가라앉을 때쯤 어머니의 산소가 눈앞에 그려졌다. 하늘 어딘가에서 흐뭇해하실 어머니를 떠올리며 지난했던 지난 날들을 잠시 되돌아 보았다.

사십대 중반에 들어 시조 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살아가는 일이 자꾸 시들시들해져 내적 변화를 모색하던 차에 만나게 된 시조였다. 자유시와는 다른 단아한 품격과 3장 6구의 짜임 속에 흐르는 운율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시조를 공부하며 한 수 한 수 습작을 늘리는 동안 찢어진 삶의 옷가지들도 한땀 한땀 기워져가던 그 위안의 밤들을 잊을 수 없다. 한 줄의 시구를 가다듬느라 생각이 길어지다 보면 어느 사이 결 고운 우리 말이 제 자리를 알고 소곳이 앉아줄 때 그 줄거움 또한 일품이었다.

이제 내 나이 쉰, 해가 바뀌면 쉰 하나다. 늦은 출발이라 창문 너머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도 귀기울이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겠다.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옛 시조가 아직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은이의 사상이나 의지가 종장에서 빛을 발하듯 표출되는 옛 시조의 멋을 현대시조에서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기보다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작품을 쓰고자 다짐해 본다. 그리하여 우리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의 대중화에 미력하나마 정성을 다하리라고 욕심도 가져본다.

오랜 친구 양수, 상호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 추운 겨울 밤늦도록 고생하는 아내의 두 손을 꼭 쥐어주고 싶다. 여전히 가정의 중심에 계신 아버지 그리고 사랑스런 아들과 딸의 축하에 가슴으로 따뜻함이 벅차오른다.

〈약력〉
▲ 1956년 부산 출생
▲동아대 농대 원예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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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더덕
박신양


노도처럼 밀려가는 지하철 환승 통로
아련한 선율로 코 끝 간질이는 천연향
오석에 물이 스미듯 촉촉하게 젖어든다

깊게 옹이진 가슴 실뿌리 촘촘히 뻗어
손 발 다 닳도록 안으로 쟁여온 세월
주름살 월계관인가 설움인양 둘려 있다

맨손으로 일궈 온 아버님의 칠십 생애
뭉툭한 손 마디 마디 가난 마저 물러서던
때늦은 저녁 밥상에 더덕향이 넘쳐 난다


[심사평]

전북지역에서 오직 하나 신춘문예 시조장르를 유지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대시조의 태두이신 가람 이병기 선생님의 전통적인 시조의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제재를 찾아내어 시어를 아껴 함축과 정제가 잘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았다.

124편의 응모작품을 일독하면서 9명을 선별하고, 이들의 작품을 정독하면서 13편을 뽑은 후 최종적으로 3편의 작품을 견주어보며 고심하다가 박선양님의 ‘더덕’을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참신함이 돋보이는 실험적 작품이 없어 아쉬웠으나 응모작품의 수준은 희망적이었다.

박신산님의 ‘지리산 벽소령’은 6.25동란을 겪으면서 이념 때문에 동포끼리 총을 겨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곳으로 “죽어서 북으로 간 바람 버섯구름 피우지 마라”며 오늘의 남과 북 얘기를 담고 있다.

김형태님의 ‘담쟁이덩굴의 사랑’은 장애인 부부가 서로 돕고 사는 애틋한 사랑을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로 상징화하여 꾸밈없는 시어로 쓴 순애보로서 감동을 준다.

박신양님의 ‘더덕’은 가시적인 평범한 이미지 속에 힘겹게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아련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 “손발 다 닳도록 안으로 쟁여온 세월/ 주름살 월계관인가 설움인양 둘려있다”. 말도 안 되는 조어로 글자 맞춘 게 아니라 일상 언어에 남다른 상상력과 직관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었고, 내재된 리듬과 율격이 자연스러웠다.

끝으로 고등학생 신분으로 응모한 서상희양은 시조라는 그릇에 아름답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조리사로서의 재능이 엿보였다. 좀 더 수련하여 이름을 떨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순량 시조시인·우석대 명예교수>

[당선소감]

백의환향(白衣還鄕). 때늦은 나이에 초라한 작품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감회와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문학에의 꿈을 품은 지 50년. 그러나 생활이 문학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아 방황하던 세월을 보내고 늦게나마 시조에 매달릴 수 있었던 지난 6년의 세월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우선 부족한 작품을 영광의 자리에 올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전북의 시조문학을 이끌고 갈 젊은 세대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 같아 한편으로는 무척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조에 더욱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더욱 압축된 삶으로 하루를 열흘, 일 년으로 알고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우리 민족시인 시조, 특히 전라시조의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 드립니다.

2006년 ‘창작수필’ 여름호에 수필 ‘더덕’이 당선되고 같은 제목의 시조 작품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저로서는 특별한 기쁨과 감회에 젖습니다. 작고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쓴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글이기 때문입니다.

평생 동안 문학이라는 열망 때문에 공간적으로는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마음은 천마 하늘을 날듯 어느 때 이룬다는 보장도 없는 문학에의 꿈을 좇아 들뜬 삶을 살아온 생활 무능력자인 나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며, 버팀목이 되어준 내 인생의 반려자인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아들들 내외들과 가족 친지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오늘이 있기까지 내 문학에의 길을 열어주고 함께 동반자가 되어 걸어온 ‘시로 여는 e좋은 세상’ 부설 문예창작대학 문우들과 권갑하 시인님께 깊은 감사와 함께 당선의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박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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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젖 물리는 여자
노영임


뜨건 국밥 후후 불며 젖 물리고 앉은 여자
어린 건 한껏 배불러 빨다가 조몰락대다
꽉 쥐고 해살거리며 또글또글 웃는다

한길에는 늦게 깨어난 게으른 햇살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사뿐사뿐 걸어가는
살짝 휜 S라인 여자들 발꿈치를 좇고 있다.

공갈빵처럼 부푼 가슴 아슬아슬한 실루엣
필라멘트 깜빡깜빡 전류를 방출하는
뾰족한 고욤 두 개가 손끝만 대도 터질듯

휘청, 가는 허리 애기집 하나 못 얹어도
둥지 속 알 넘보듯 집요한 사내들의 눈 왜일까,
늪에 빠지듯 지독한 허기 몰린다

순환소수처럼 잇고 이어 사람에 사람을 낳은
빌렌도르프 비너스 따뜻한 양수의 기억
넉넉히 젖 물려주는 그런 여자가 그립다.

[심사평]
현대의 잘못된 여성상3 묘사 빼어나
이지엽시인

응모된 작품을 정독하면서 금년 들어 새롭게 일어난 변화가 주목되었다. 새로운 시어를 찾아 쓰려는 노력, 시조의 장 구분 등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 적지 않은 사설시조 작품들이 창작되고 있다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작품들은 ‘둥지 잃은 새’ ‘자전거의 독백’ ‘냉이꽃’ ‘밤낚시’ ‘이상한 나무’ ‘빛깔’ 등이었다. 이 작품들은 모두가 상당한 수련을 거친 솜씨여서 옥석을 가린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작품들은 관념이 잘 육화(肉化)되지 못하거나, 종장에서 시적 긴장감을 풀어버리거나, 작품이 갖는 의미가 미약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선작으로 택한 노영임의 ‘젖 물리는 여자’는 외모 중시의 덫에 치여 점점 나약해져가고 있는 현대의 잘못된 여성상에 일침을 가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동시에 시상을 잡아나가는 구성과 묘사가 빼어나다. 같이 응모한 작품들도 모두 정제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신뢰를 얹을 만하였다. 특히 전통을 재해석한 ‘쌍화점’과 생태 사설시조라 할 만한 ‘북새통 났네’는 소재의 다양한 운용과 단단한 기량을 짐작케 한다. 늘 문제의식을 가지고 정진해 좋은 시인이 되길 바란다.

[당선소감]
꿈 영그는 고향집 같은 시 쓰고파

노영임 두둥실 꿈이 영그는 집 한 채 짓고 싶었다. 뚝딱뚝딱 속살 다듬어 덩그런 대들보 올리고 지붕엔 용마루 얹어 해와 달도 띄워놓고 자르르 쏟아진 빛살 찰랑찰랑 조리질 하는, 꼭 이만한 품으로 드리워진 처마 밑에 후, 후 바람결에 홀씨까지 다 불러들여 넉넉히 깃들 수 있는 그런 집이면 어떨까, 그런 시를 쓰는 것이 꿈이었다.

갈무리해둔 씨오쟁이까지도 죄다 풀어주신 나순옥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큰 절 올린다. 내가 다 자라도록 젖 물려준 내 고향 진천 땅, 비싼 일수(日收) 찍듯이 하루 벌어 하루 에우듯 키워 오신 내 어머니 임정숙님께, 긴 시간 함께 손잡고 걸어와 준 남편과 가족 그리고 이웃들, 이젠 애엄마가 되었을 테고 군인아저씨가 된 제자 녀석들과 마냥 신나하는 학교 아이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약력>
▲1963년 충북 진천 출생
▲충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현재 서경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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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남해기행
이아영

손에 묻은 모래알을 훌훌 털어내고 싶어
바다에 나와서면 먼 기억들이 달려오고
가슴은 빈 바람 소리로
동굴 하나 만든다.
지나온 발자국들 돌아보면 또 묻히고
갈매기 흰 울음이 저녁놀에 잠겨들면
달 하나 키우고 싶은
섬이 하나 솟는다.
물때에 부대끼는 서러운 몸짓으로
꿈을 잠재우는 파도와 마주서다 보면
일몰은 또 하나의 탄생
산이 나를 맞는다.


[당선 소감]
뼈처럼 단단하고 튼튼한 작품을 빚고싶어

무디고 더딘 내 감성의 더듬이를 세워 나는 시조라는 벽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 민족시인 시조를 쓴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말이다. 학창시절 백일장에서 입상하게 되면서부터 내 삶은 시의 더듬이를 곧추세우고 현장에 있었다.

이 시대의 이야기들을 시조에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글을 읽고 생각을 다듬어야겠다고 조바심을 내면서도 나는 늘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 안절부절했다. 몇 해 동안의 신춘문예 낙방 소식은 내게 익숙한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이 어둡고 긴 터널을 뒤로하고 뜻밖의 당선 소식이 찬란한 햇발처럼 먼데서 밀려온 것이다.

이 무거운 짐을 어떻게 지고 나아가야 할까?

나는 지금 촉수를 가다듬고 시조가 걸어온 먼 길을 되짚어 걸어가 본다. 뼈처럼 단단하고 근력 튼튼한 작품을 빚고 싶다. 부족한 작품에 불을 밝혀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서울신문사에 앞으로 창작의 불을 영원히 피워갈 것을 약속드린다.

내게 시를 지도해 주신 최문자 교수님과 시조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손잡아 주신 권갑하 선생님께 감사를 올린다.

그리고 나를 격려해 주신 ‘시로 여는 이 좋은 세상의 문예대학’ 문우님들과 늘 믿음으로 지켜봐주신 부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언니에게 이 기쁨을 바치고 싶다.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너무 많다.

언제나처럼 인생의 모티프를 주시는 사부님과 나의 벗 효진, 현진에게도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약력
1985년 서울 출생
2000년 전국 만해백일장 시, 시조부문 장원
협성대 문예창작과 3학년

[심사평]
세밀한 관찰로 이미지 표출

시조는 우리말이 갖고 있는 가락을 가장 잘 살려낼 수 있는 장르이다.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들은 신인다운 패기와 참신성을 보여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예년에 비해 편수도 늘었고 응모작 수준도 높았다.

그러나 어떤 아류에 휩쓸린 경향에 만연되어 있거나 이름을 가리고 보면 똑같은 톤과 연결하는 법이 동일한 경우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음은 문제로 지적되었다.

당선작 이아영의 ‘남해기행’은 삶의 현실에서 내다보는 희망과 자연과의 호흡, 숨결이 피부에 와 닿는 작품이다.

기행이라고 해서 표면에 나타난 사물 그대로만을 묘사하지 않고 세밀한 관찰을 통해 내면의 이미지로 표출해낸 감성적인 작법이 뛰어났다.

최종심에 오른 이태호의 ‘지리산에 들다’는 작품을 다루는 솜씨가 만만치 않았음에도 표현 형식에서 시조의 형식미를 살려주었으면 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의도적으로 3장6구 형식을 분할하더라도 시각적으로 시조의 특징을 살렸더라면 당선권에 들었을 것이다.

김종학의 ‘물밀어오는 뜨락’은 작품을 갈고 닦은 노련함이 엿보이나 진실성과 메시지 전달이 부각되었으면 하는 점, 말의 치장이 필요 이상 과한 점이 아쉬웠다.

연선옥의 ‘그 숲에 들면’은 시적 대상에서 바깥 세계와의 폭넓은 시야나 통로를 마련했더라면 한결 우수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숲 안에서만 안주한 점이 당선권에서 멀어지게 했다. 이근배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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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매일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가면놀이
이민아

1
이삿짐 꾸리다가 담지 못한 소품 하나
각시탈 연지곤지 낯붉히던 어린 시절은
내 생애 최초의 극장 눈물어린 퍼소나다.
2
미간도 맞지 않은 가면 뒤에서 숨을 쉬면
얼굴과 얼굴 사이 맺히는 눈물방울들,
웃자란 새 각시 되어 붉은 입술 부딪히던

두 눈도 입도 코도 내 것이 아닌 듯 해
마당에 널브러지고 허방도 짚었던가
손쉬운 방백조차도 난청 속에 헤아렸었다.

3
걸립에 열뜬 이마 푸르게 서는 핏발
혼미한 정신의 틈 한바탕 뒤흔들며
바람의 유장한 지문 가만 엿듣고 있다.

[심사평]
신인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에 참신성과 패기를 들 수 있다. 삶의 의미를 확장·심화시키는 당찬 시선과 기량을 보이지 않는다면 눈길을 끌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3장 6구 12음보의 시조는 정형의 율격에 시상을 잘 녹여 담아야 하는 겹의 창작 과정을 거쳐야 하며, 형식에 충실하되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활달한 언어 운용의 묘미를 체득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조 속에 자연스러움이라는 요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공정과 천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선작인 이민아의 '가면놀이'는 가면놀이라는 비근한 소재를 원용하여 실감실정을 살려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어떤 측면에서 볼 때는 보이지 않는 탈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람살이다. 자아의 진면목을 깊숙이 숨기고, 또 다른 나를 전면에 내세워 세상과 부딪칠 때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 시는 시종 잔잔한 어조로 그런 이면의 세계를 육화하여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이채롭다. 다소 난해한 마무리 부분도 깊은 울림과 시적 묘미를 내장하고 있어 그 의미를 여러 번 곱씹어 되뇌게 한다.
최종심에서 김종학, 이효정, 장중식, 김지송 등의 작품이 눈에 띄었으나, 몇 가지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여 당선권에서 밀려났다.

즉 편편이 완성도를 보인 반면에 소재가 회고적인 자연 경물 묘사에 머물거나, 신인으로서 패기와 기량의 부족하거나, 형상능력은 엿보이나 지나친 실험성과 파격으로 신뢰가 가지 않는 점 등이었다. 새 물꼬를 트는 각고의 노력이 가일층 뒤따라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인의 등장을 축하하며, 오늘의 영광에 값하는 꾸준한 정진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정환(시조시인)

[당선소감]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 보내주셔서 저희도 감사합니다.”
문화부장님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실려 전해져 온 당선 소식은 대구 매일신문에서 받은 올해 성탄 선물이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고, 그 순간 격정적으로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1년 반 동안, 고속도로 추돌 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몹시 앓았다. 한동안 책을 읽지도, 시를 쓰지도 못하고 물 위에 뜬 수련처럼 스스로 내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이명과 흉통을 안고 지내온 날들, 가슴으로 털어 넣던 알약들. 무시로 찾아와 말을 걸던 통증은 몸이 감추고 있던 말들을 하나씩 길어 올리게 했다.

뭔가 달라져야 했다. 나를 추스르고 더 나아진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 때, 오랫동안 습작을 하던 시조를 떠올렸다. 여고시절 시조백일장에 마실갔던 인연으로 시조를 쓰기 시작했던 내 습작기의 처음,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시조를 오늘에 다시 살려 쓰는 시조시인의 얼굴을 직접 보며 시조의 맥박을 느꼈다.

대학시절 고전시가 강의를 들으며 몸이 걸어가는 호흡으로 한 글자씩 시조를 새기던 가인(歌人)들의 정신을 탐하리라 다짐했다.
시조와의 언약을 이어갈 수 있도록 베풀어주신 매일신문사와 심사위원님의 호명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정제된 말의 우주와 같은 시조의 마당에서 한 판 다채로운 탈놀음을 벌여 볼 것을 감히 약속드린다.

찬연한 슬픔을 머금은 각시탈의 미소를 선물해주셨던 어머니와, 사랑하는 가족들. 고난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인연의 깊은 눈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먼 하늘나라에서 가슴으로 기뻐하고 있을 오랜 벗 현희에게 새해 첫날 신문을 선물하러 감포바다로 가야겠다.

약력
△1979년 서울 출생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졸
△200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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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어떤 귀가
김명희

캄캄한 어둠이 오글거리는 골목길
야트막한 대문 새로 삐져나온 엷은 불빛
아이들 수군거리는 창밑마다 찾아든 별

깎아지른 언덕길을 막 올라선 발걸음이
거친 숨 몰아쉬고 담벼락에 기대서면
찬바람 쏘아붙이듯 귓불 치고 달아난다

움츠린 어깨위에 지난날 꿈 아른거리고
젊은 시절 당당했던 목소린 작아졌다
기대설 누군가 있다면 짊어진 짐 놓고 싶다

돌아갈 집이 있어 기다려줄 아이 있어
오늘도 기름 떼 낀 목수건 걸고 대문 연다
거머쥔 붕어빵 봉투 인생 줄에 매달렸다

[심사평]
허점없는 언어 밀도 돋보여

우리는 모국어의 새로운 발성법을 지닌 시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 발성법이란 소재의 확장. 깊이있는 사유의 천착. 참신한 언어감각에 의해 드러나는 치열하고 당돌한 개성을 말함은 물론이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선자들을 고심케 한 작품은 ‘봄비’. ‘레이스를 짜는 여자’. ‘어떤 귀가’였다. ‘봄비’는 아름다운 서정시일 뿐 아니라 시조의 율감을 적절히 살릴 줄 아는 시인의 작품으로 무리없이 읽혔다. 그러나 도발적인 혹은 치열한 작가정신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지나치게 무난하다는 것은 결국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것이고 이 점이 신인의 자격으로는 적지않은 결함이라 생각했다.

‘레이스를 짜는 여자’의 경우는 우선 참신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제목이 그랬고 베르메르의 그림을 소재로 원용한 것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정형시에서 특별한 이유없는 동어반복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였다.

그러한 약점은 상의 불분명함과 함께 습작기간의 부족으로 다가왔다. 강파른 현실의 단면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싶은 작자의 의도에 비해 그 구성이 지나치게 서투르다는 것이 선자의 공통된 견해였다. 이런 결함을 극복한다면 좋은 시인이 될 것으로 보였다.

올 해의 행운은 결국 ‘어떤 귀가’에 닿았다. ‘어떤 귀가’는 적지않은 미덕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이 시인의 응모작 모두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특히 비교적 호흡이 긴 연시조들도 쉽게 허점을 드러내지 않는 언어 밀도를 보였다. 아울러 어떤 제재를 가지고도 시조를 빚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저력을 감지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의 작품을 선택할 때까지 우리를 괴롭혔던 것은 새롭지 않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신년 초에 독자에게 찾아갈 신춘문예 작품이라면 신선함이 중요한 미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준에서 본다면 분명 빗나간 낙점이다.

그러나 시조를 빚기 위해 쌓아온 내공이 역력히 드러나는 믿음직한 작자를 천거한다는 것 또한 작은 기쁨이 아니다. 하루의 영광 뒤에 쉽게 사라지는 많은 당선자들을 생각할 때 더욱 그러하다는 확신으로 이 시인을 민다. 이제 더 새로운 작품으로 선자의 우려를 불식시켜 대성하길 당부하며 축하를 보낸다.
(심사위원: 이우걸, 장성진)

[당선소감]
추억의 열병을 앓고

어둠이 소 울음처럼 머리를 묻는 들녘. 기다림에 괜스레 설레는 마음들이 마중 오면 별 무리 꼬리를 물고 등 뒤로 다가선다. 한번쯤 텅 빈 세상 서성이는 하늘가. 살아가는 흔적 찾아 지난날을 되뇌면 생명력 흠뻑 날리는 대문 밖 길 배인 인연마다 설레발을 든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옛 추억을 곱씹으며 열병을 앓는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후회로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어리석음으로 지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머물러 서글픈 인연들로 남아 툭툭 떨어지는 잎 새 위에 시린 마음을 들키곤 했다. 달려온 길 위에 인연들을 누이고 질겅질겅 지난날을 새긴다. 차 한 잔의 향기에 호흡을 멈추어 기대어 있으면 나는 어느새 내 유년의 길에 서 있다.

나의 유년에서 아버지의 귀가는 늘 허기져 있었다. 배움이 짧아 견뎌야했던 설움은 길고 깊었다. 홀로 우뚝 서 당당하게 세월을 헤쳐 나갔던 젊은 날의 패기는 비탈길을 내려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구슬픈 노랫가락을 타고 어릴 적 내 마음을 더욱 춥고 배고프게 했다.

오늘날 이 땅위에 사는 가난한 아버지의 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칼날처럼 매서운 바람을 어깨에 달고 어둠속을 걸어오시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는 지금도 가슴팍을 파고들어 하나의 문처럼 내 감성을 열고 닫는다. 흐드러지게 봄을 수놓았던 개나리꽃 더미에서 웃음을 나누었던. 첫눈 내리던 새벽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던 어린 시절과 함께.

지금 내게 다가온 이 가슴 벅찬 마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다. 또한 내 삶의 거름이 되어 지치고 힘들 때마다 든든한 마음 줄이 되리라. 달려온 길을 되돌아볼 줄 아는 나무처럼 제살을 뚫고 나온 헛된 욕심을 깎아 아픔을 기쁨으로 끌어안고 내일의 삶을 계획해야겠다.

겸허한 자세로 시조의 율과 격을 내 안에 심으며 나를 보듬고 다듬어 보리라. 그리고 자신을 절제할 줄 알고 정갈한 맛을 느끼며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시조의 길을 열어주시고 쓸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신 분께. 부족한 작품에 불 밝혀 주신 심사위원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마음 한 조각 따스함으로 채워주셨던 유숙경 선생님. 자신을 헌신하며 며느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시부모님. 자식들을 위해 새벽기도로 하루를 여는 친정어머니가 옆에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통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충렬초등학교 선생님들과 지금은 사진 속에 남아 겨울밤처럼 긴긴 편지되어 다가오는 하늘나라 아버지께 무엇보다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

<약력>
△1964년 부산 출생
△진주교대 졸업
△2004 교사예능경진대회 시조부문 1등급
△2006년 제17회 경남시조백일장 장원
△통영 충렬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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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구석집
김사계(본명 김동인)

또 다녀갔나 보다 구석집 아들 내외
눈 어두신 할머니 삼십촉 등 켜시면
그 소식 궁금한 마을 길어지는 시골밤

남은 건 두 마지기 비탈진 감자밭뿐
말없는 노안 속에 좁아지신 마음이
남의 말 일축하시듯 어두운 등 끄신다

새벽잠 대신하여 켜 놓은 텔레비전
자고 나면 평당 가격 수백씩 오른다는
도회지 삶터 값들을 며칠째 쏟아 낸다


[심사평]
빼어난 종장 처리, 현실감 생생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아홉사람의 48편이었다. 단수로만 응모한 사람도 있었고 연시조, 혼합연형시조 등 시조의 다양한 형식을 활용한 작품들이었다. 응모자들이 시조를 다루는 솜씨들이 여간 아니었다. 따라서 시조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져도 좋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 작품들을 두고 심사위원들은 시조 창작에서는 시조의 형식을 다루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 점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작품의 완성도에 주목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두 개의 달력〉 〈구석집〉 〈그 겨울, 갯벌〉 〈울 할매 젖〉 등의 작품을 두고 논의를 거듭했다.

그 결과 작품 〈구석집〉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구석집〉은 농촌 현실과 홀로 사는 노인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으며, 특히 시조의 형식 활용에서 종장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잘 살려낸 것은 압권이었다. 그리고 압축과 생략으로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말을 줄이는 능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품 외에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당선작에서 보인 미덕을 살리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개인적 서정에 머물지 않고 시야가 넓은 점, 회고조에 기대지 않고 현장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 등을 높이 샀다.

본심에 오른 다른 응모자의 작품들도 시조의 형식을 잘 이해하고 형식미를 살려내고 있었으나 조금씩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이었다. 다음 기회를 기대하면서 창작의 열정을 불태우길 바란다. / 심사위원=한분순, 문무학


[당선소감]
시조 더 사랑할 길 열어줘 감사

먼저 시조를 더욱 사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농민신문사와 미흡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큰절 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눈이 내렸던 길이 녹았다 다시 얼어붙는 시간쯤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몸도 얼고 있었습니다.

당선소감을 적어 보내라시는 전화에 의심의 귀가 자꾸 대답하는 목소리를 작게 만들었습니다. 땅거미가 오는 시간. 의심을 푼 마음이 이젠 걱정을 앞세워 자신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먼 길이 보입니다. 첫걸음을 놓는 발끝이 무척 무겁게 느껴집니다.

지나간 이른 봄에 산을 다녀오면서 엉겅퀴 새싹을 보고 느낌을 쓰다가 우연히 시조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린 새싹에도 자기 모습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주었던 엉겅퀴의 가시. 아무렇게 돋아난 게 아니라 규칙적인 그리고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그 거리에서 엉겅퀴가 엉겅퀴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음수를 놓고 음보를 재고하던 일이 결국 시조를 가까이 사랑하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당선이라는 말을 가끔 접하긴 하지만 이처럼 부끄럽게 만들 줄 몰랐습니다. 가야 할 길이라면 소신껏 가야 할 것 같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길을 가리라 다짐합니다.

습작 때마다 제일 먼저 읽고 그 느낌과 호흡을 말해주던 독자1호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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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달세 광고지를 붙이며
민병관

민락동(民樂洞)
백산(白山) 어귀
파란 대문을 찾으셔요

네모진 홑이불 줄기차게 걷어차도 따습게 맨살 부빌 햇누런 구들방과 하늘채 가차운 다락방(多樂房)이 있어요 천장에 붙여놓은 몽금포 모래알이 코 앞에서 보풀보풀 솜털되어 쌓여가죠 솥단지만 안쳐도 넘쳐나는 부엌과 무릎 내음 너풀대는 뒷간이 가붓대죠 함박웃음 머금은 구름장도 보이고 집 떠나 온 씨톨까지 채마밭이 싹 틔우죠 이제는 훌쩍 커버렸을 경은, 영광, 다연 … * 풋풋한 아이들 손 맞잡고 오셔요 푸드득, 첫 눈 맞으며 어서어서 오셔요

화들짝 찾아주셔요
두근새근
기다릴게요

* : 몇 해 전 실종되어 지금도 찾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름.

[심사평]
어울림의 파격을 통한 시조의 중흥을 꿈꾸는 율격의 자유

이렇게 많은 시조들을 응모해올 것을 예상치 못했다. 그 중에서 당선작을 고르기란 매우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마치 시조의 갑작스런 부활을 보는 것 같아 기뻤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5편이었다. 5편 모두 고르게 시조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4편 모두 시조의 초·중·종장의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았다. 어떤 작품은 종장이 중장에 비해 너무 가볍고 어떤 작품은 초장의 식상한 표현이 시조의 질감을 훼손하고 있었다. 그리고 문법적 오류도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에 두 작품이 수작으로 남게 되었는데 그 중의 민 병관의 시조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이유는 겨레말의 유용한 사용과 보급에 그 근거를 두었다. 전실아, 김용매, 이기연, 박태수 씨 등은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할 기술과 기질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민 병관은 사각의 자유를 꿈꾼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처럼 “네모진 홑이불 줄기차게” 걷어차며 네모진 원고지 칸에서 자유하고 싶다. 조그만 달세 방이라도 좋다. 이 고통의 네모난 감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운명의 삼각형 두 개가 겹쳐진 네모난 고통에서 자유할 수 있다면.

민병관의 <창조문학신문 2007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달세 광고지를 붙이며」는 고풍스런 시조의 흐름을 씻어내고 겨레말의 적절한 사용을 통한 시조의 중흥을 꿈꾸며 새로운 창작법을 도출해 내고자 하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중장에서는 시조 율격의 자유를 위한 풍성한 전개로서의 다양한 확산을 보이는 반면 종장에서는 시조의 정형을 유지하며 수렴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중장에서의 그의 시조의 얼개를 뒤집어 펴는 행위의 목적은 자유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다양하고 질 높은 자유의 수렴을 위한 진정한 시조적 자유를 그려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현대적 감각의 시조 창출을 통한 어울림의 파격의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 병관의 시조가 초장에서 정형을 유지하는가 싶다가 중장에서 보따리를 잔뜩 풀어놓고 종장에서 다시 정형의 율격으로 계산되어 응집되고 있는 것은 그가 안정된 시조의 참신한 부활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시조가 초장에서 머리 끈을 풀었다면 초장부터 맥이 빠져 산발한 두통을 가져다주었을 것이고, 종장에서 바지를 내렸다면 막판에 화장실에 갔다 와야 될 형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신춘문예에서 떨어져 술 퍼담고 뒤가 마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절히 중장에서 허리 끈을 풀고 채워두는 것은 나중에 다시 되새김질하기에 알맞도록 구성하기 위한 그의 시문학적 영적 템포에 의한 철저한 계산에 의해서인 것을 선자는 감지하였다.

중간에서 허리끈을 풀고 시조의 영양분을 호흡할 때도 잘 살펴보면 민족적 정형의 리듬을 잘 구사하고 있다. 특히 중장의 종장이라 할 수 있는 “푸드득, 첫 눈 맞으며 어서어서 오셔요”는 3/5/4/3의 시조의 튼튼한 종장의 현(絃)을 건너고 있다. 그의 이러한 작법은 시조의 맛과 멋과 질감과 리듬감을 잘 알고 충분한 훈련을 거쳐왔기 때문인 것으로 확신된다.

시조의 시조어(필자는 시어에 대해 시조에서는 ‘시조어’라 명명함)들의 잎사귀들 몇 몇을 뜯어보면 ‘民樂洞’, ‘白山’,‘파란 대문’, ‘多樂房’, ---- ‘채마밭’, ‘풋풋한 아이들’, ‘푸드득’, ‘화들짝’, ‘두근새근’, ‘몇 해 전 실종되어 지금도 찾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름’ 등이다.

이 ‘시조어’들에서 유추해 보면 평온한 마을의 격렬한 이별의 아픔의 서정을 눈물빛 언어로 빚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시조가 특별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민락동은 ‘民樂洞’이다.

그 동네는 부산 남구에 속해 있는 갯마을이다. 민 병관이 살고 있는 부산 수영구의 옆 동네이다. 그러면서 ‘民樂洞’은 우리 민족의 민족성, 즉 白山처럼 깨끗하고 여유로운 ‘樂’의 ‘함박웃음’ 머금은 백성이 사는 나라의 부드럽고 온화하고 평화로운 정체성을 대변한다.

그런데 그 민족에겐 한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 시조에서 ‘몇 해 전 실종되어 지금도 찾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름’을 언급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실종된 ‘어린이’의 ‘시조어’는 문자적 의미로 실제적인 ‘어린이’들을 의미하면서 그 심층 깊이에 실종된 아니면 퇴색된 한민족의 사랑과 혼, 그리고 영원성과 민족성, 또한 진취적인 기상과 평화의 꿈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民樂洞’, ‘白山’, ‘파란 대문’, ‘多樂房’과 ‘실종된 아이들’이란 ‘시조어’들로 이 시조의 주제를 직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희망한다. 그 ‘풋풋한 아이들’이 돌아올 것을, 첫 눈 내리는 한겨울이 돌아와도 한반도의 잠 못드는 들녘에서 ‘푸드득’ 하고 ‘파란 대문’에 희망의 날개 하나 돋아 올라야 할 것을 간절히 희구하고 있다.

‘맨살 부빌 햇누런 구들방’과 ‘채마밭’을 준비하고 있으니 ‘화들짝’ 우리의 그리움 열어젖히고 와 달라는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두근새근’ 기다린다는 것이다.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시조의 리듬을 중장에서도 ‘보풀보풀’, ‘너풀대는’, ‘가붓대죠’의 시조어가 활기를 주기 시작하고 ‘푸드득’의 시조어가 시조의 맛을 살려내기 시작한다.

연이어서 종장에 이르러 ‘화들짝’이라는 시조어로 이 시조에 폭포수와 같은 격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면서 그 격동하는 리듬감을 다시 ‘두근새근’이라는 시조어로 서서히 잠재우며 차분히 다스려 가기 시작한다.

이러한 민 병관의 시조 창작법은 시조의 음악성을 정형의 리듬에서만이 아니라 감각적인 시조어의 사용으로 정형의 폭력적인 형상화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화들짝’이란 시조어는 이 시조의 매우 중요한 혈자리에 얹혀져 박힌 것으로서 그 ‘화들짝’이란 시조어는 무겁게 침체되어 있는 우리 민족성의 혈에 시침하며 생명화의 과정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네모진 홑이불’이 싫어서, 초장과 종장이라는 시조의 피륙을 만들어 그 사이의 중장에 ‘보풀보풀’거리는 ‘솜털’들을 가득 채워 넣고 누비는 이불처럼 형상화되는 특수한 창법으로 시조의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한 그의 솜씨는 누가 뭐래도 2007년 신춘문예의 일품이다.

이제 시작이라는 각오로 시조어의 조탁의 과정을 꾸준히 연습해 더욱 많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풍성한 기쁨을 주길 소망한다. 그렇게 될 때 시조새의 부활을 우리는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람찬 시조새의 부활을 완성해 주길 빈다.

*누비다 : 피륙을 두 겹으로 포개어 안팎을 만들고, 그 사이에 솜을 두어 죽죽 줄이 지게 박다. ¶ 누빈 바지. 누빈 이불(야후 인터넷 사전 참조).<문학평론가 박인과>

[당선소감]
겨레시가 세계적인 위상을 획득할 수 있는 날을 위해

먼저, 졸시의 가능성을 보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세상에 내 놓기 부끄러운 작품이지만 더 정진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여 담금질을 계속 하고자 한다.

인문학의 위기와 문학의 죽음을 얘기하는 21세기에, 그것도 서구적 자유시의 주도로 우리 시조가 주변부로 밀려나는 이 시대에 나는 왜 시조를 부여잡고 있는가.

우리 겨레의 정서와 우리의 생래적인 감각을 가장 적확히 표현할 수 있는 문학 형태가 시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의 소네트나 일본의 하이쿠 못지않게 우리 겨레시인 시조가 세계적인 위상을 획득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서가며 문학문화의 선구역을 맡고 있는 ‘창조문학신문’의 제1회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은 더없는 영광이다. 창조문학신문의 도전 정신과 문학에 대한 가열찬 애정에 걸맞는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꿈꾸면서 우리 민족시 시조의 영속성을 위해 매진할 것을 약속드린다.

오늘까지 기다리던 비가 어제부터 오고 있었다.

[약력]
-경남 산청産
-부산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망』 시부문 등단
-3인시집 『낙하산을 펴다』 출간
-그리고 시, 雨酒會 동인,
-현 금성고등학교 교사
-부산시 수영구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