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말
  • 시조나라 작품방
시조감상실
  • 현대시조 감상
  • 고시조 감상
  • 동시조 감상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신춘문예/문학상
  • 신춘문예
  • 중앙시조백일장
제주시조방
  • 시조를 읽는 아침의 창
시조공부방
  • 시조평론
휴게실
  • 공지사항
  • 시조평론
  • 시조평론

신춘문예/문학상

Home > 수상작품실 > 신춘문예/문학상
제목 2005년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등록일 2016.02.09 14:25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408

5[2005년 신춘문예당선작/농민,조선,동아일보-윤여숙님, 서울,국제
--------------------------<차 례>-------------------------------
▶ [부산일보] 문을 열고-이민화
▶ [조선일보] 대설주의보-김영완
▶ [동아일보] 마량리 동백-이석구
▶ [매일신문] 가을, 전갈자리-생일에 / 이경임
▶ [농민신문] 오후 3시-이태순
▶ [전북중앙] 대장간 - 한석산
▶ [국제신문] 겨울 운문사에서 - 박수민
▶ [서울신문] 동백,몸이 열릴 때-장창영
▶ [강원일보] 물안개 자욱한 날-평창강 섶다리/홍준경
▶ 불교신문 / 시조 당선작 없음
------------------------------------------------------------------


[2005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문을 열고 - 이민화


어수선한 사건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골 깊은 등줄기에 멍으로 남은 자국
세월의 회초리 앞에 허물을 벗는 시간

혼돈을 움켜쥐고 방황하는 시대가
늦가을 설거지로 타오르는 불 마당에
두꺼운 가면을 벗어 미련 없이 태운다.

들국의 마른 꽃대가 겨울 앞에 꺾이고
새로 움틀 봄을 위해 눈 덮인 들녘처럼
마지막 가을을 빌어 날려보낸 묵은 일기

새로운 베틀 앞에 정좌하여 눈을 뜨고
절망은 가려내고 희망의 씨실 잡아
용서와 화해의 교차 한 필로 짠 순수 무명


[시조 심사평] 수준작 3편 끝까지 경합

문단으로 가는 꽃길 신춘문예,연말이면 문학 지망생만이 아니라 심사자들도 가슴이 설렌다. 어떤 재사가 머리에 빛나는 어사화를 꽂고 그 자랑스러운 모습을 드러낼까. 응모작의 상당수는 그 역량이 인정될 만큼 전반적으로 수준이 향상되어 있었다. 시조의 앞날을 위하여 경하스러운 현상이다. 종심에 오른 작품은 김경태씨의 '겨울꽃',김종훈씨의 '화첩기행 3',김진수씨의 '하구에서 서성이다',문근식씨의 '채석장',이민화씨의 '문을 열고' 5편이었다. 이들은 한 시절 전 같았으면 다 당선감으로서 손색이 없다 할 만큼의 수준작들이었다. 특히 '하구에서 서성이다''화첩기행 3''문을 열고'의 3편은 그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워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다.

숙의 끝에 '문을 열고'를 당선작으로 낙점했다. 신인작인 만큼 다소의 결함은 접어두고 다음 두 가지가 주목을 끌었다. 먼저 함께 낸 작품들이 대체로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기본적인 역량이 인정된 점이요,다음으로는 고뇌와 방황 등 내적 갈등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긍정으로 이끌어 낸 건전한 시정신이 가상타 한 것이었다. 이제 장거리 경주의 총소리는 울렸다. 이 선수,얼마만큼의 신기록을 낼지 다 함께 지켜 볼 일이다. 시조시인 장순하·최승범


시조 당선소감] 가문 땅 물 찾는 심정 간직 - 이 민 화

해마다 겨울이면 습관처럼 앓았던 아름다운 고질병은,나를 무척이나 단련시킨 후에야 그 문을 열어 주었다. 꿈을 품고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했다. 이 순간,응모작품 중에 '아버지와 낚시'가 문득 떠오른다.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월척을 꿈꾸며,먼 수평선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빛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가끔 손맛을 느끼는 희열에 꿈을 버리지 못했던 아버지처럼,나도 해마다 12월이면 가슴이 두근거림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나는 왜 그토록 신춘문예를 꿈꿔 왔던가? 그것은 남다른 작품을 써 보겠다는 욕심이기 전에,나를 수많은 경쟁자 속에 매몰차게 내놓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가끔 시들어 가는 내 시심을 깨울 수 있었고,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시 세계를 다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이 영광은 결코 내 것이 아니다. 그동안 지도해 주신 박정선 선생님께 먼저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을 돌봐 주신 부모님과 남편께 감사드린다. 아,그리고 사랑하는 두 아들 한얼,한범이에게 손 빠짐이 많았던 엄마의 미안함을 이 영광으로 대신 채워주고 싶다.

나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지금부터 가문 땅에서 물을 찾는 심정으로 나의 시 세계를 찾아갈 것이다. 끝으로 수고하신 심사위원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약력:1966년 부산 출생. 1997년 '현대시조' 신인상,2001년 부산아동문학 신인상. 현재 부산 남성초등학교 교사.
[♣위로가기]

======================================================================

[2005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대설주의보 - 김영완

1
거친 숨결 허옇게 얼어붙는 역 광장 앞
어디론가 가야 하는 길손들이 서성이고
그 몇은 허방을 딛고 빙판 위로 넘어진다.

제 한 몸 세우기도 버거운 이웃들은
손잡아 일으켜 줄 온기마저 놓아버리고
저마다 제 그림자 옆을 흘깃 흘깃 지나친다.

몇 날 찌푸린 하늘, 끝내 싸락눈 흩날리고
둥지 잃고 날아든 난간 아래 저 굴뚝새들
한두 톨 옹색한 모이, 이 겨울이 너무 시리다.

2
대설주의보 내려진 오후의 늦은 귀가
매운 바람 얼얼하게 외투 깃을 후려치고
움츠린 어깨 너머로 희끗희끗 눈발 설 때

통 속의 군고구마 냄새 웅숭그린 담 모퉁이
추위도 조금씩은 익숙해진 모습들이
장작불 환한 눈빛을 봉지 속에 담아간다.


[심사평]
손에 잡히는 묘사 돋보여

시조의 형식적 장치는 풀어지기 쉬운 현실을 긴장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신춘의 신인을 가리는 작업은 이 긴장을 어느 정도 잘 운용하고 있느냐에 있을 것이다.

3·4조의 기계적 율격은 너무 옥조여 숨이 막히기 마련이고 조금만 느슨해지면 시조 아닌 것이 되기 때문에 완성도에 이르는 것은 시보다 훨씬 어렵다. 이병일씨의 ‘빗방울 화석’은 세밀한 묘사가 돋보였으나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했으며, 임채성씨의 ‘모르핀을 꽂다’는 능숙한 가락의 운용에도 불구하고 여과되지 않는 생경한 표현이 걸렸다.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들 중 김영완씨의 ‘대설주의보’는 단연 돋보였다. 가락을 이끄는 만만찮은 호흡과 사실적 묘사를 바탕으로 한 서사적 얼개가 신뢰를 갖게 하였다. 시조는 형식적 제약으로 인해 관념화되기 쉽고, 그 관념은 손끝의 기교에서 비롯되기에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관념화로 치닫고 있는 시조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킴은 물론, 지치고 힘든 이 시대의 복판을 넘어가는 이웃들에게 “장작불 환한 눈빛”을 전하는 따뜻한 가슴의 시인으로 대성하길 바란다 <이지엽>


[당선소감]
시조 세계 늦게 접한 만큼 쉼 없이 창작의 길 걷겠다

아침저녁으로 지나다니는 길가의 낮은 담장 아래 늦게 돋아난 ‘별꽃아재비’꽃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얼른 눈에 띄지도 않는 눈송이 같은 별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저 꽃들이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이상 기후를 만드는 ‘엘니뇨 현상’ 때문에 따뜻한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인데 저렇게 자꾸만 꽃을 피워서는 어떡하겠다는 것인지….

신춘문예에 응모는 하면서도 설마 당선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당선되었다는 전화에 어쩔 줄 몰라 허둥대다가 오늘은 나도 저 철모르는 별꽃아재비가 되어 작은 별꽃 하나 그려봅니다.

어쩌다가 찾아든 아직은 낯선 이 길, 이제는 뒤돌아 설 수 없는 길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출발한 길이지만 쉬지 않고 가리라 다짐하면서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서투른 글을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뽑아주신 것으로 새기고 그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동안 같이 공부한 직장 문우회 동료들, 가르쳐 주신 선생님과 선생님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시조모임 회원들, 그리고 저를 알고 있는 여러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끝으로 지켜보아 준 아내와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 1953년 해남 출생
․ 1973년 광주 숭실고 졸업
․ 서울지방국세청 근무
․ 민족시사관학교 회원

[♣위로가기]

======================================================================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마량리 동백 - 이석구
             

길이 아닌 곳에서만 가는 길이 보인다고
외발 수레바퀴 끌고 오는 눈발 따라
그림자 뒷걸음치며 마른풀을 밟는다.

여기 아무도 모른 낯선 세상에 내가 있듯
악보에는 없는 음표 호흡을 조절하며
얼음장 빗금 친 파도 겨울 바다를 건넌다.

앞선 사람 대신 좁혀오는 바람처럼
지상의 문을 여는 미지의 열쇠구멍 속에
발자국 찍힌 눈꽃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심사평]
동백을 현대적 이미지로 빚어

시조를 쓰는 것은 시의 정수를 찾는 일이다. 시 속의 시를 찾는 일이다. 시조부문 응모 작품에는 대학생부터 80대 할아버지까지 그 열기가 뜨거웠다. 세 차례의 심사를 거치며 다섯 작품이 최종심에 남았다.

‘안단티노 알레그로토로’(정행년)와 ‘소록도 해돋이’(이태호)는 소재와 주제의 신선함이 뛰어났으나 명품을 만든다는 정성이 다소 부족했다. 시조시를 빚는 자신감과 운율을 휘어잡는 힘을 가지길 부탁한다.

‘이중섭 미술관’(김희천)은 보기 드문 건강한 작품이었다. 제주의 바다 내음과 화가 이중섭의 세계가 건강하게 표현되어 좋은 점수를 얻었으나 운율이 불안했다. 징검다리가 놓인 강을 편안하게 건너는 것이 시조의 운율이라면 자연스러운 보폭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징검다리에 대해 좀더 고민하길 바란다.

‘나비경첩’(이윤호)과 ‘마량리 동백’(이석구)은 어떤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를 오래 고민하게 했다. ‘나비경첩’은 어머니가 남긴 제기함 나비경첩을 통해 아름다운 사모곡을 빚었고 ‘마량리 동백’은 동백을 현대적인 이미지로 빚어냈다.

‘나비경첩’은 너무나 익숙한 작품이었다. 그 익숙함이 신인을 뽑는 자리에서는 작은 흠이 되고 말았다. ‘마량리 동백’도 첫째, 둘째 수의 자연스러운 호흡법과는 달리 셋째 수에서 호흡이 흔들렸다.

신춘문예는 완성된 작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인을 찾는 일이기에 ‘마량리 동백’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함께 투고한 작품에서 보여준 다양한 실험정신이 당선의 영광을 받는 데 가산점이 되었음을 밝힌다. 시의 정수를 뽑아 시조시를 빚는 명품 명장으로 남길 바란다. <이근배, 정일근>


[당선소감]

원고를 보내고 며칠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보내다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다. 망치로 뒤통수 한 대 얻어맞고 명치끝에 무엇인가 울컥 얹힌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 두 딸이 생각났다. 항상 죄송하고 고마운 어머니, 감사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불평과 불만을 내색하지 않고 맨 먼저 원고를 읽고 평해 준 아내가 고맙다. 두 딸들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길을 걸어왔다. 늘 길 위에서 나는 곧은길로만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돌아보면 그 길은 직선이 아니었다. 그러나 햇빛은 굴곡에 상관없이 모든 길 위에 고루고루 빛을 내려주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서 앞으로도 길을 걸어가야 한다.

내 타고난 성격 탓이 크지만, 시조는 항상 흥에 취해 혼자 쓰고 며칠 뒤에 원고를 들여다보고 지우고 버리는 작업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시구를 얻더라도 제한된 글자에 운율을 맞추고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단어 하나에 의미를 찾다가 단 한 줄뿐인 글을 쓰는 더딘 걸음을 하는 발자국이 될지라도 그 길을 직선으로 여기며 앞만 보고 걷겠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동아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쓰겠습니다.

․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 성균관대 한문학과와 교육대학원 졸업
․ 2004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부문 당선
․ 현재 안양 백영고 교사
[♣위로가기]

======================================================================

[2005년 매일신문 시조당선작] 가을, 전갈자리-생일에 / 이경임


하필이면 눈 시린 가을날의 점지였나
어머니 자궁 속을 가랑잎처럼 비우고
깊은 물 맨발로 걸어 배냇짓도 겨운 날.

한 그릇 정화수에 먼 하늘빛 담아 놓고
오래 전 눈 여겨 둔 살뜰한 전갈자리
광년을 가로질러 온 서릿길이 보인다.

이제야 알 것 같네, 어머니 시린 무릎
때로 종종걸음치며 그 별자리 쓰다듬어
환한 빛 사위지 않게 외오 섰던 속내를.


[심사평]
신산과 질곡의 시대일수록 정서의 힘에 기대는 인간의 욕망은 팽창하는가. 응모자들의 분포가 거의 전국에 걸쳐 있는데다, 질적 수준 또한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 현상이 뚜렷하다. 이 점은 최근 들어 한층 두터워진 시조의 지층을 실감하는 하나의 증좌로 볼 수도 있다.
느낌이 닿는 대로 뭉뚱그려 읽으면서 작품성을 가늠하고, 사고의 깊이를 따져 다시 몇 사람으로 압축하기까지는 적잖은 숙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배제된 이태호, 백윤석, 한석산, 조은세, 송순만, 김병환, 배인숙 제씨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지의 선명도와 표현의 적확성, 시상의 압축과 작위성의 탈피 등을 앞으로의 과제로 제시한다.
여느해처럼 당선권에 들 만한 작품들을 두고 마지막 한 편을 가리는 일은 말 그대로 고통과 희열의 교차였다. 박진아씨의 '흔들리는 골목', 임채성씨의 '금호강의 하루', 이지윤씨의 '바다' 등은 하나같이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품격과 가락이라는 시조 본연의 미학을 강조할 때 더러는 표현의 변화에서, 또 더러는 자연스러운 가락의 운용에서 제가끔의 흠결이 드러났다.
'임진강, 가을'과 '오후 3시'를 쓴 이태순씨는 다양한 주제를 무리없이 소화하는 역량이나 심상을 밀도있게 녹여내는 감각이 탁월하다. 하지만 간혹 평이한 진술로 떨어지는 부분을 다잡지 못한 점과, 일부 종장에서 드러나는 음보 문제가 가시처럼 마음에 걸린다.
이경임씨의 '가을, 전갈자리'를 뽑아놓고 거듭 읽어 본다. 생명과 존재의 영원성을 좇는 이 작품은 무엇보다 시류를 의식하지 않는 신선한 발상이 좋다. 사유의 폐활량이 넉넉한 동시에, 미세한 감각으로 이미지의 변용을 꾀하는 능력 또한 놀랍다. 시조단에 또 한 사람의 이미지스트가 출현할 것인가. 그가 끌고 온 전갈자리의 먼 별빛이 척박한 서정의 허상을 뚫 고 날아가는 화살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기섭(시조시인)


[당선소감] - 이경임

철이 들 무렵부터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칼날 같은 겨울아침이 좋았습니다. 겨울 아침의 명징한 추위나 속눈썹에 내려와 앉는 햇살이 사무치도록 새롭고 또 새로웠던 날들이 분명 제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물의 선명도는 혼탁한 늪 속의 그것들처럼 흐려진 채로 제 삶 속으로 건너오곤 했습니다. 그 속에 오래 웅크려 있으면서 빛살 무더기 속에서 맛보던 감성의 번뜩임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몽매한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그 뒤 어딘가는 틀림없이 예전의 겨울 아침처럼 눈부시고 있었을 텐데요.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감추고 땅만 내려다보며 걷던 오랜 세월을 가로질러 다시 제게 날아든 빛 한줄기 잘 보듬어 감감한 세상에 펼쳐놓고 싶습니다.
무뎌지지 않고 결코 느슨해지지도 않는 겨울 아침의 쨍쨍한 서슬 닮은 빛들을. 끊임없는 격려와 관심으로 이끌어주신 선생님과 시조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신 배흘림시조동인회 회원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위로가기]

=====================================================================

[2005년 농민신문 시조 당선작] 오후 3시 - 이태순


벌개미취 흐드러진 간이역쯤 와 있다
흠집 나고 닳아진 나무의자 앞에서
내 모습 참 많이 닮아 편안함이 배어든다

흙 묻은 발을 털며 앉아볼까 생각하다
방금 보낸 이별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쓸쓸히 머금고 있는 물기를 닦아 준다

내겐 아직 식지 않은, 오후 3시가 기다리고
떫은 물 삭힌 홍시 발갛게 익을 때까지
밝혀 둘 가슴 한켠으로 남몰래 비워둔다


*심사평-박시교, 유재영

응모된 작품 모두 고른 수준이었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56편. 그 가운데 〈가을 미시령〉〈오후 3시〉〈자옥산의 봄〉〈금동반가사유상〉이 최종심에 올랐다.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가을 미시령〉〈금동반가사유상〉, 시의 깊이나 미학적 관점에서는 〈자옥산의 봄〉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가을 미시령〉은 잘 짜여져 안정감을 주는 반면 신인으로써 패기가 부족해 보였고, 〈금동반가사유상〉도 낡은 소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자옥산의 봄〉은 2년째 같은 제목의 작품을 응모한 것이 문제였다. 숙고 끝에 우리는 완성도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기로 했다. 당선작으로 뽑힌 〈오후 3시〉는 첫수 초장부터 참신하고 신선했다. 또 기존 시조의 낡은 상투성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오후 3시〉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섬세하면서도 활달한 시적 세계로 잘 표현했다. 이는 시조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따뜻한 상징과 투명한 이미지의 결과다. 분명히 시조의 새로운 권역을 확장하리라 믿으며, 우리는 비로소 한 시인의 미래에 대해 신뢰를 갖기 시작했다.


*당선소감-이태순

아주 낡고 조그만 초성리역이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쓸쓸함에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은, 눈이 내리면 또 가보리라 생각했는데 눈보다 먼저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제 제 글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행복이 교차합니다.

내 삶 속에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환하게 살아있는 꽃밭이었습니다. 늘 따뜻한 시어들을 시들지 않게 가꾸어야겠습니다.

유년시절을 온통 손녀사랑으로 채워주셨던 할아버지가 보고싶습니다. 떡갈나무 밑에 누렇게 쌓여 있던 도토리, 얕은 냇물이 말갛게 흘러가고 할아버지가 매어주신 그네를 타던, 지금도 그 보물같은 삽화 한장 내 안에 고이 접혀 있습니다.

뿌리만 박혀 있던 제 밑바닥에 이제 봄이 오면 싹이 돋을 것입니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시인이 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농민신문사에 감사드리며, 시조의 신발을 신겨주신 스승님께 이 영광 돌립니다. 그리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 사랑하는 가족, 보고 돌아서도 또 보고싶은 문우님들과 이 기쁨 오래 나누고 싶습니다.
[♣위로가기]

=====================================================================

[2005 전북중앙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대장간 - 한석산


속살까지 죄 들어낸 화덕 안 잉걸불에
안으로 결 삭으며 붉게 익은 쇳조각을
담금질, 담금질한다, 뿌지직 노을이 탄다

시우쇠 무딘 정수리 쌍메로 두들겨서
숫돌에 양날을 세워 殺意가 번득이는
갓 벼린 조선낫 들어 검은 밤을 가른다

벌건 불꽃 입에 물고 쇠붙이 기다리는
대장간 언저리서 곁불 쬐던 한 소년이
얼룩진 사진 속에서 풀무질을 하고 있다


<시조 심사평>

고려말부터 오랜 세월을 이어온 시조는 여느 시와는 달리 3장 6구 12음보의 형식을 갖춘 한국 고유의 전통시이다. 또한 고시조와는 달리 음악으로부터 분리된 현대시조는 시조의 형식미와 함께 현대 감각에 걸 맞는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표출된 이미지를 일관되게 끌고 가는 호흡도 중요하지만 비유와 상징, 절제되고 함축된 시어를 제자리에 앉히는 솜씨가 있는지 즉 시의 완성도를 가늠해보아야 한다.

심사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응모자의 이름과 주소 등 인적사항이 삭제된 응모작품 200여편 중에서 읽고 또 읽으면서 눈에 띈 작품 20편을 골라내고 다시 10편으로 압축한 후 각 작품을 낭송하면서 다시 검토한 결과, 한석산의 ‘대장간’, 이태호의 ‘소록도’, 정행련의 ‘가자미 낚기’, 이종대의 ‘모둠발로 서는 미륵사지탑’ 등 4편을 최종심 작품으로 선정하였다. 고심 끝에 작품의 순위를 정하고 신문사 담당기자에게 결격사유 유무를 확인케 한 후 한석산의 ‘대장간’을 당선작품으로 합의했다.

한석산의 ‘대장간’은 인간의 존재론적 문제와 실존에 대한 연민이 있으며, 그 삶의 정서를 예술적인 안목으로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대장간은 쇠를 다루는 곳이지만 인생 또한 계속된 담금질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곁불 쬐던 한 소년이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풀무질하는 모습을 지난날 자신의 초상으로 떠올리면서 무리 없이 이끌어간 힘이 돋보였고 적절한 시어의 조탁으로 시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태호와 이종대의 작품은 고르고 안정적이었으나 신선한 면이 부족했고, 정행련의 작품은 거칠지만 이끌어 가는 힘이 좋았으나 생경한 시어의 남용이 거슬렸다. 앞에 거명한 네 사람의 작품 모두 수준급 이었으나 신춘문예의 특성상 한석산의 ‘대장간’을 당선작으로 밀게 되었다.

심사위원에게 넘겨진 작품들은 몇 편을 빼고는 정형시로서 시조의 기본에 충실하였으며 작품 수준도 고른 분포를 보였고, 시조 창작에 오랜 수련을 거친 각자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이 많아 고무되었다. 전북중앙신문의 신춘문예 공모야말로 가람 이병기 선생의 고장에서 시조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당선자는 앞으로 자만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여 시조단의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정순량 우석대 대학원장/ 시조시인·양점숙 시조시인>


<당선 소감> - 한석산

떨린다. 다시 손 떨리는 긴장감을 안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너무나도 먼 길, 피 말리는 시조의 세계를 향해 외롭고 괴로운 여행길, 그 험한 가풀막 길을 기어 올랐나 보다.

3장 6구 12음보의 율격을 갖추어야 하는 시조문학. 시조 한 수는 45자 안팎의 글자 수로 이루어진다. 작다고 보면 작고, 짧다고 보면 형편없이 짧은 그 ‘그릇’ 속에는 세상 모든 이치와 우주의 섭리까지도 담아내야 한 다.

세계에서 유일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문학인 시조문학은 독특한 형식미학을 갖춘 정형시이다. 그러므로 율격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그 안에 사상을 담아내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득음(得音)의 경지가 어떤 것인가. 시조문학이 지닌 오묘한 묘리(妙理)를 터득하는데 얼마나 많은 방황을 계속했던가.

부족한 나의 시 끈을 놓지 않도록 흙을 북돋아 주신 경기대 문창과 윤금초 교수님, 아직 모자라는 글을 어여삐 여기시어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큰 절을 올린다.

그리고 가파르고 머나먼 길 늘 함께 해온 문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내 선녀, 큰 아들 대섭, 새 애기 윤수, 딸 은선, 막내 건섭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다.

함께 응모하셨던 선생님들께는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끝으로 전북중앙신문사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

* 한석산 약력

1949년 충남 태안 출생. 분당거주 한의원 원장 30년.
2003년 현대시문학 시 부문 신인상 당선.
2004년 7월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장원.
사회교육원. EBS. 케이블TV 등에서 대체의학 강의.
민족시사관학교 회원.
[♣위로가기]

=====================================================================

[2005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겨울 운문사에서 - 박수민(본명 박순희)


오래된 풍문처럼 밤새 폭설이 내리면
극락전 솔가지는 그리움에 늘어지고
대숲에 바람 드는 소리 하얗게 쌓였다

묵언에 드는 길은 아득히 멀다마는
어둠을 밟아 오르던 저 단아한 예불소리
문 밖에 기대어 서서 미륵 되어 보았다

마음에 때가 끼어 앉힐 수가 없었을까
가부좌 튼 자세로는 벽을 허물 순 없었다
고요에 몸을 맡기면 조금은 알 것 같은데

단층 끝 소리물고기 절간 바람을 흔들 뿐
햇살에 순은이 되는 숲길을 간직한 채
아무도 밟지 않는 길 발자국 하나 찍었다


[심사평]
율조 따른 세련미 탁월

사설시조는 이 땅에 자유시가 발붙이지 않았을 때 자유시로서의 기능 일부를 감당했다고 할 수 있다.

창의 입장에서는 달리 설명되겠지만 사설시조는 그 형식이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신춘문예의 시조는 정형시로서의 시조를 뽑아야 한다. 그런 연유로 사설시조는 일단 선에서 제외하기로 하였다.

전년에 비해 응모작품 수가 대폭 늘었다. 작품의 우열을 가리는데 많은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예선을 거쳐 2심을 거친 작품은 '겨울 운문사에서' '금동반가사유상' '난분을 옆에 두고' '하구에서 서성이다' '紅玉' '바위' 등 여섯 작품이었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겨울 운문사에서'와 '하구에서 서성이다' 그리고 '바위' 등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 중 형식의 파괴가 마음에 걸리는 '하구에서 서성이다'를 제외하기로 하고 마지막 두 편을 두고 고민에 들어갔다.

어느 작품이나 장·단점은 있다. 언어의 세련미와 시조로서의 율조를 잘 따른 '겨울 운문사에서'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임종찬(부산대 교수) 전치탁(시조시인)


[당선소감]
힘겨웠던 글쓰기 시간들 하나 가득 눈 꽃 되어 비상

12월 끝자락에 서면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잘한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들이 겨울바람 채찍이 되어 돌아옵니다.

낯선 전화번호가 휴대전화에 찍혀 있었고, 혹시나 하는 두근거림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당선 통지를 받았을 때는 정작 차분해졌습니다. 혹 꿈은 아닐까, 몇 번이고 되뇌어 보았지만 분명 꿈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간절한 바람이 현실로 다가올 때처럼 저도 똑같은 말을 쓰고야 말았습니다.

남들보다 항상 한 발 늦게 출발한 탓에 앞서 간 이들의 뒷모습이 한동안 저를 지치게도 했지만 이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큰 힘을 얻습니다. 기쁩니다. 정말 기쁩니다. 글을 쓰면서 힘겨웠던 지난 시간들이 한꺼번에 눈꽃이 되어 하늘 가득 날아오릅니다. 제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저 눈꽃들처럼 저도 이제 제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겠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등지신 어머니를 떠올려 봅니다.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것을 미리 안다는 듯 이제 제 마음에 연둣빛 물이 돕니다. 그러나 아직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제 앞에 놓여진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듯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항상 지친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해준 남편과 책상 앞에서 씨름하는 엄마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는 아들,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국제신문에는 더욱 좋은 작품으로 보답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약력
1960년 부산 출생
한국방송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2004년 여수 해양문학상 수상.
부산 서구 동대신동 2가 2의121

[♣위로가기]

=====================================================================

[2005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동백,몸이 열릴 때 - 장창영


한때는 너도
불 밝히던 심장이었다
눈 밟는 소리에도
온통 가슴 설레어
어쩔 줄 몰라만 하던 붉디 붉은 눈이었다
하기야 그때는
너조차 몰랐을게다
네 몸을 사정없이
훑으며 지나간 것이
한 떨기 바람, 그도 아니면 감당 못할 욕망이었는지
꽃무리 지고 난 후
다시 또 여기 서 있다
실팍한 가슴 한켠
환한 불씨 동여맨 채
안에서 밀어올려낸 향기 한 올 풀어 건네며


[심사평]

신춘문예는 기존의 작품수준을 월등 뛰어넘는 새로운 패기,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한다.

올해 응모된 작품들은 종전에 비해 수준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우리 고유의 전통시인 시조에 대한 열기가 그만큼 높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웠다.

응모작품 대부분이 시조의 틀을 지키면서도 현대성을 지녔고 소재면에서 다양했으며, 삶의 현장성을 갖고 노래한 것과 우리 역사성을 갖고 노래한 것 등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심사기준은 시조가 갖는 형식을 지키되 어떻게 새로운 리듬, 감각으로 현대적 기능으로서의 기법을 구사했느냐에 초점을 맞췄다.

당선작 ‘동백, 몸이 열릴 때’는 하나의 꽃이 깨어나는 신생의 날카로운 감성과 언어의 배합 같은 것들이 신선했다. 시조의 운율을 갖고 재구성하면서 새맛나는 기량을 보여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금동반가사유상’(한분옥)은 안정감 있고 상당한 시적 수련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최종 당선작과 겨루었으나 소재 면에서 신선감이 덜해 선외로 밀려났다.‘광개토태왕비’(방승길)는 고구려 역사왜곡과 잃어버린 고구려의 역사성을 면밀히 관찰하는 투시력으로 힘줄 넘치게 쓴 작품이다.

그러나 힘에 너무 치우쳤고 언어의 조탁에서 밀렸다.‘사랑’(이지윤)은 서정성과 시조다움에 가까운 작품이다. 첫발을 내딛는 신인의 시조로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진도아리랑에 부쳐’(이태호)는 시조 가락이 철철 넘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현대시로서의 의미, 새로운 감각을 살려내지 못해 아쉬웠다.
<이근배·한분순>


[당선소감]

당선 연락을 받던 날은 동지였다. 그날 저녁, 글쓰는 형 몇몇과 함께했던 술자리에서 팥죽을 먹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웃이 끓인 팥죽이 한 다리 건너 우리에게까지 건네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 정은 이처럼 소소한 것에서 생겨나 다른 이들의 마음 속에 웅숭깊게 자리매김하는 걸 게다. 아마 시조가 지향하는 바도 팥죽을 끓이는 이의 마음 씀씀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쓰지 못할 때처럼 비참한 경우가 또 있을까. 매년 신춘을 겪어 본 이들이라면 찬바람이 불 때마다 제 몸 안에 갇혀있던 무엇인가가 목청을 돋우는 것을 느꼈으리라. 이제 매번 마감시간 직전까지 휘둘리게 했던 그 무엇이 이 자리에 내디디게 만든 힘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글을 쓰는 매 순간마다 숨쉬게 하며, 살아 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도록 만드는 힘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마음 써 준 가족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들은 내게 가장 큰 스승이다. 지금까지 글과의 인연을 놓지 않도록 도와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큰 빚을 진 셈이다. 이 자리를 빌려 시조라는 거대한 물줄기에 합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절을 올린다. 누군가 길을 만들었기에 다음에 나선 이들은 보다 쉽게 갈 수 있다. 만약 그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인생은 외롭지 않다. 나로서는 이제 시조라는 든든한 벗을 얻은 셈이다. 나 역시 후에 오는 이들에게 또 다른 길을 열어 주고 싶다.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것이기에.

약력

1967년 전주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현대시 전공)
200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전주대학교 교양학부 객원교수
[♣위로가기]

=====================================================================

[2005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물안개 자욱한 날-평창강 섶다리/홍준경


싸릿대 잔솔가지 얼기설기 얽어 입고

옷자락 나부끼던 그 세월 어찌 났을까

거칠은 진흙을 덮고 평창강 지키고 있다

물안개 자욱한 날, 강물 그리 흘러 보내고

새벽 국밥 한술 뜬 눈빛 순한 사람들이

저마다 봇짐을 지고 분주하게 오며 가네

장돌뱅이 허생원도, 누렁소도 건너가고

세상이 흔들리면 섶다리도 휘청거린다

이따금 마파람 불면 헹가래 치듯 들썩인다.

※섶다리=강원도 평창군 평창강에 놓여있는 다리. 소나무 및 싸리 가지를 얽은 다음 그 위에 진흙을 덮어 섶다리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이 지나 다닌다.

 강여울<본명:홍준경·양구군 양구읍 학조리>


[강원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시조부문

 시조부문 응모작품 경향을 분석하면,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구획 지을 수 있다. `뼈다귀의 시조’와 `껍데기의 시조’가 그것이다.

 `뼈다귀의 시조’는 글 속에 담을 이른바 사상이란 것을 미리 설정해 두고 거기에다 격에 맞지 않은 미사여구를 짜 맞춘, 그러므로 문맥이 자연스런 유기체가 되지 못하고 앙상한 뼈대만 드러낸 정형시를 말한다. 김진실씨의 `생존’과 이기준씨의 `부활’이 여기에 해당된다.

 `껍데기의 시조’는 표현 형식에만 매달려 감동적 내용을 담아내지 못한, 알맹이 없는 시조를 의미한다. 박진아씨의 `우수절’과 이석구씨의 `꽃집 앞에서 꽃을 심다’와 같은 작품이 이 계열에 든다. 외중내졸(外重內拙) 즉 겉모양(형식)에 치중하게 되면 내용이 치졸해진다.

 당선작 `물안개 자욱한 날’(강여울)은 앞에서 지적한 `뼈다귀 시조’와 `껍데기 시조’의 함정을 절묘하게 극복한 작품이다. 따로 떼어두면 별 의미 없는 이미지들이지만 그것이 제 짝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의미망을 확충하는, 마치 퍼즐 같은 언어 조립의 미학이 격렬하게 펼쳐진다. 평창강에 놓여 있는 섶다리를 소재로 하여, 이 고장에 뿌리 내리고 사는 백성들의 정서를 강물 푸른 빛깔로 풀어낸 것이다. `새벽 국밥 한술 뜬 눈빛 순한 사람들'을 떠올리는가 하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허생원과 장돌뱅이도 불러들이고 있다. 긴장을 늦출 틈을 허락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 우리는 시조 특유의 순간적 임팩트(충격)를 느낄 수 있다.

■심사위원:김영기(강원일보논설고문·문학평론가) 윤금초(시조시인·민족시사관학교대표)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소감]시조부문-강여울

 섶다리를 찾아 평창강에 갔었다.

 검푸른 강물위에 부표처럼 놓여있는 섶다리는 선사(先史)의 비밀과 민중의 애환을 간직한 채 묵묵히 평창강을 지키고 있었다. 그 여울목에는 심한 어지럼증과 흔들림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강원도의 끈질긴 역사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끊어질 듯 이어가는 한반도의 힘이 그 강물에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것은 운명 같은 만남이었다.

 응모작 `물안개 자욱한 날'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날을 평 창강에 매달렸다. 수백리 산길, 들길을 달려가서 강물에 발 담그고 섶다리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무언(無言)의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 결과가 당선의 영예를 안겨 준 것 같다. 시조는 어느 문학 장르보다 언어의 조탁이 뛰어나야만 좋은 작품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시조만이 가지는 형식 미학의 특성 때문에 그러하다. 절제된 언어의 미학(美學), 그 매력과 깊이는 입문해 보지 않고는 감칠맛을 느껴볼 수 없을 것이다. 시조에는 우리 민족의 살아 숨쉬는 `정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시조는 민족 정서를 대변하는 문학의 정수인 것이다.

 우선 창간 60주년을 맞은 강원일보에 축하를 보내며 회갑을 맞은 신문사의 신춘문예(시조부문)에 당선하게 되어서 더없이 기쁘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새로운 각오로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졸작을 당선시켜 주신 심사 위원님들께 큰절로 인사를 드리며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면서도 구김 없는 가정을 일구어낸 아내와 식구들에게도 가슴 뭉클한 온정을 느낀다. 나를 아껴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프로필

△1954년 전남 구례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과 졸업
△재단법인 구례장학회 운영이사(현)
△대평 주택 건설 주식회사 대표이사
△감사원 주최 부실공사 방지 전국 수기공모 대회 입선(감사원장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