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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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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0년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16.02.11 19:07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213

국제신문

 

찔레의 방

 

오영민

 

 

병원 문을 나서다 하늘 올려다 본다

아기인 듯 품에 안긴 찔레 같은 어머니

기억의 매듭을 풀며 꽃잎 툭툭, 떨어지고

 

잔가시 오래도록 명치끝 겨누면서

수액 빠진 몸뚱이로 물구나무 서보라며

먼 바다 어느 끝으로 내몰리는 나를 본다

 

파도 끝 수평선은 붉은 줄 내리 긋고

굽 닳은 하루해가 출렁이다 멈춰 선 곳

익명의 불빛이 와서 꽃잎으로 흔들린다

 

[당선소감]

 

모든 분들이 달아주신 이 아름다운 날개

 

잊고 살았었다. 습관처럼 서점에 들러 시집을 사던 버릇을 고치고 난 후, 모두 잊고 있었다.

 

다시 펜을 들었을 때는 서른을 훌쩍 넘긴 적지 않은 나이였고, 남편도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꿈은 잠시 숨어있다 다시 고개를 쑤욱 내밀어 내 앞을 서성이며 조롱하듯 글을 쓰게 만들었고, 나는 신기하게도 시조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들이 내겐 많았었기에, 당선전화를 받고서도 나의 눈물은 서러웠는지 한참을 멈추지 않았다. 당선 전화를 받던 날은 생일이 이틀 지난 오후였다. 세상에 그렇게 멋지고 화려한 선물이 또 있을까. 온전하게 내 몫으로 다가온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이 너무 많다.

 

아직 덜 여문 열매에 단비를 내려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이 멋진 날개를 달기위해 허둥거리던 지난 몇 해 내게 달디 단 가르침을 주신 이승현 시인님. 변현상 시인님. 서정택 시인님. 그리고 인터넷 문학클럽 시로 여는 이-좋은 세상의 회원님들과 권갑하 시인님 께 감사드린다.

 

신춘을 준비하면서 몇 달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내로 만들어 달라고 했던 약속을 지켜준 남편에게도 감사하며, 저의 당선작 속 주인공이신 어머님께도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

 


모든 분들이 달아주신 이 예쁜 날개에 절대 흉터가 남지 않는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해 보며, 오늘의 기쁨이 자만이 되지 않도록 다시 나를 다듬어 본다.

 

〈약력〉 ▷1972년 경남 창원 출생 ▷인터넷 문학클럽 '시로 여는 이-좋은 세상' 부설 현대시조 아카데미에서 시조공부를 함

 

[심사평]

 

현대인의 정체성을 품격 높은 시조로 잘 살려

 

400여 편의 많은 응모작도 근래에 보기 드문 양이려니와 작품들의 질적 수준 또한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 최종심 몇 편을 고르는 일조차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 시조의 멋과 맛을 동시에 지니면서 시대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이 엿보이는 작품으로 '눈 밖에 나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 세네갈이란 나라 있지', '수련은 수련 중이다' 그리고 오영민의 '찔레의 방', '구두' 가 결심에 올랐다.

 

'눈 밖에 나다'는 서편제에 등장하는 주인공 '송화'의 삶이라는 설화적 모티브가, ' 아프리카 대륙 서쪽 세네갈이란 나라 있지'라는 작품은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인류애가 돋보였지만 시조의 품격과 치열한 시정신이 아쉬웠다.

 


선자들의 시선을 끝까지 붙든 작품이 '수련은 수련 중이다'와 오영민의 '찔레의 방'이었다. 시어를 갈고 닦는 솜씨와 이미지를 빚어내는 기교가 둘 다 탁월했지만 수련의 개화 장면을 '환상의 발레리나'로, 자연친화적 장면을 '환상의 세레나데'라고 읊은 상투성이 눈에 거슬렸다. 오영민의 '찔레의 방'은 팽팽한 시적 긴장 속에서 파편화의 길을 가는 현대인의 현실적 고뇌를 집요하게 시조화한 점이 빼어나다. 특히 운명에 무덤덤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답지 못한 현대인의 정체를 암시와 상징으로 냉철히 응시한 점이 새롭다. 대성을 빈다. (이우걸 전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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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바람의 산란

 

배경희

 

 

모든 것이 사라져도 바람은 존재한다

수천 년 살아있는 혼들의 화석처럼
떠돌며 우리의 삶 속에 잔뿌리를 내린다

 

당신은 허공 속의 자궁에서 태어난다

힘들고 지친 자들의 울음을 파먹으며

온몸을 먹구름 속에 수없이 휘어가며

 

밤새 비 쏟아지고 나무를 두드렸던

바람 새들 불러 모아 한바탕 쓸고 간

마당엔 햇살 물고기 푸륵푸륵 뛰논다

 

[당선소감]

 

“방황하는 난 늘 뒤에 있었다”

 


현재 진행형, 내면의 방황을 하면서 늘 나는 뒤에 있었습니다. 어릴 적 대추나무 아래서 어머니를 온종일 기다렸던 시간들, 먼 한천 내를 바라보면서 질경이를 질기도록 뜯었던 시간들, 한천 둑방길을 끝없이 걸었던 시간들, 그러한 기억들이 저를 있게 한 힘이었습니다.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이 납니다. 아무도 없는 마당 위 햇빛 재잘거림과 나무의 그림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한낮은 구름 양떼를 이끌고 돌아온 하늘 집이었습니다.

 

그 그리움으로 외로움을 지탱하며 시를 습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시절 도종환 선생님, 송찬호 선생님께서 큰 힘을 주셨습니다. 그 길을 근근이 걸어 온 10년이라는 세월, 저의 시는 더뎠습니다.

 

우연히 정수자 선생님 시조를 읽고 느낀 시조의 깊이와 여백의 미. 그것은 큰 나무가 되기 위해 잔가지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시조는 격이 있는 나무였습니다. 그 격조와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취미 삼아 그림 붓질을 해온 터이지만, 시조는 그림과 다른 위안과 힘을 주었습니다. 시조는 길가에 핀 들풀이나 풀잎에 맺힌 물방울, 그 안에 숨은 우주를 보는 것, 징을 울릴 때의 파문, 울림 같은 것이었습니다.

 

파편 속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마음을 기르겠습니다. 갈 길이 멀지만 그만큼 더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하고 더없이 부족한 저를 격려하고 이끌어 주신 수자 선생님, 그리고 보이지 않게 성원해준 우리 가족과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서울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 약력


-1967년생 충북 청원 출생

-2009년 7월 중앙일보 시조 장원

 

[심사평]

 

이미지와 정형미의 융합

 

문단의 지형도에 첨예한 서슬과 싱그러운 기세를 불어넣는 것이 신춘문예이다. 시조 부문에서는 해마다 응모작이 수적으로 늘어나고 문학적 성취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반가운 움직임은 견고한 천년의 내력을 간직한 시조에 바로 지금 시점의 생기 도는 감각을 선사함으로써 새로운 심미를 탐색하고 있는 시도들이다.

 

당선작에 선정된 배경희의 ‘바람의 산란’은 감수성이 흐드러진 시상을 펼치는 가운데 시조만의 정형 또한 탄탄하게 지키고 있다.

 

이러한 조합을 기반으로, 시적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개시킨 것도 주시할 만하다. 인간의 삶을 ‘바람’으로 투영하는 과정에서, 실체 없는 심상을 선연한 이미지로 옮기고 있어 부단한 생각의 깊이와 무게가 느껴지며, 가락을 유희하는 듯이 구성한 정서의 흐름이 노련하다.

 

최종심에 오른 후보작은 강연숙의 ‘청자상감범나비-애벌레의 꿈’, 송필국의 ‘새하얀 삘기꽃만 눈발처럼 흩날리고-장 프랑수와 밀레의 이삭줍기’, 장은수의 ‘새의 지문’, 김대룡의 ‘우항리를 지나며’, 이상근의 ‘그림 일기’ 등이다.


이미 각자 뛰어난 특질을 갖추고 있으므로, 내면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는 소통의 시어를 찾으며 장르에 부합할 정형미를 가다듬고, 소재와 묘사에 접근하는 발상을 과감히 바꾼다면 모두가 시조 시단의 놀라운 기량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한분순,·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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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새, 혹은 목련

 

박해성

 


앙가슴 하얀 새가 허공 한 끝 끌고 가다

문득 멈춘 자리

매듭 스롯 풀린 고요

콕 콕 콕

잔가지마다 제 입김 불어넣는

 

그 눈빛 낯이 익어 한참 바라봤지만

난시가 깊어졌나.

이름도 잘 모르겠다

시간의

녹슨 파편이 낮달로 걸린 오후

 

은밀하게 징거맸던 앞섶 이냥 풀어놓고

곱하고 나누다가

소수점만 남은 봄 날

화르르!

깃 터는 목련, 빈손이 사뿐하다

 

[당선소감]

 

지독한 불면의 실마리 이제야 겨우 잡힐 듯

 

아침에 눈을 뜨고 냉수 한 컵 마십니다, 비수처럼 서늘히 가슴에 꽂히는 한강 줄기! 웅녀가 마셨던 그 강물이 내 몸을 깨웁니다. 이제야 겨우 잡힐 듯한 지독한 불면의 실마리, 그게 바로 시였습니다. 신전의 대리석 기둥같이 나를 지탱해주는, 아니 저항할 수 없는 견고함으로 나를 압도하는 나의 천국, 나의 지옥 그리고….

 

아버지, 당신의 바람 같은 자유를 증오했고 출구 없는 가난을 저주했으며 타협할 줄 모르는 우직함을 원망했었지만 대책 없이 당신을 닮은 딸이 이 허허한 벌판에 맨발로 섰습니다. 오늘은 따듯한 그 등에 업혀 아이처럼 실컷 울고 싶습니다.

 

나의 첫 번째 독자이자 절대 팬인 남편 이조훈 님에게 이 영광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딸 명휘 승휘, 아들 승규와 새로이 가족이 된 티머시 미드와 배지현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되리라 다짐합니다. 6년의 습작기간을 채찍질해 주신 지도교수님과 동행한 문우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내 문학의 모태가 되어준 경기대학교 국문학과에 빛이 있기를!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고루한 편견 없이 평등의 정의를 실천하는 동아일보에서 희망을 읽습니다. 누군가에게 빛과 소금이 되는 ‘사람’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심사평]

 

모국어의 가락을 가장 높은 음계로 끌어올리는 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신춘문예에서 읽는다. 올해는 더욱 많은 작품이 각기 글감찾기와 말맛내기에서 기량을 보이고 있어 오직 한 편을 고르기에 어려움을 겪는 즐거움이 있었다.

 

‘에세닌의 시를 읽는 겨울밤’ (이윤훈)은 서른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러시아 시인의 이름을 빌려 자작나무 숲이 있는 겨울 풍경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데 시어의 새 맛이 덜 나고 ‘새로움에 대한 사색’ (송필국)은 고려의 충신 길재의 사당 ‘채미정’을 소재로 생각의 깊이를 파고들었으나 한문투가 거슬렸다. ‘널결눈빛’ (장은수)은 해인사 장경판전의 장엄을 들고 나왔으나 글이 설었으며 ‘빛의 걸음걸이’ (고은희)는 말의 꾸밈이 매우 세련되었으나 이미지를 받치는 주제가 미흡했고 ‘도비도 시편’ (김대룡)은 지금은 뭍이 된 내포의 한 섬을 배경으로 역사성을 갈무리해서 완성도를 보였으나 내용과 형식의 새로운 해석을 얻지 못했다.

 

당선작 ‘새 혹은 목련’(박해성)은 ‘왜 시조인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는 작품이다. 역사적 사물이나 자연의 묘사가 아니더라도 현대시조로서의 기능을 오히려 깍듯이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활짝 열고 있다. 감성의 붓놀림과 말의 꺾음과 이음새가 시조가 아니고는 감당 못할 모국어의 날렵한 비상이 맑은 음색을 끌고 온다. 더불어 시인의 힘찬 날갯짓을 빈다.

(이근배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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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해토머리 강가에서 

 

김환수 

 

갯버들 가장귀에 물구나무선 눈먼 햇살

풋잠 든 하얀 잎눈 이따금 들여다본다.

도톰한 봄의 실핏줄, 돋을새김 불거지고.

 

물비늘 풀어헤친 낯익은 수면 위로

명지바람 건듯 일어 빗살무늬 그려내고

웅크린 이른 봄날을 종종걸음 재우친다.

 

귓가에 기웃거리는 자갈밭 여울물 소리

백일 남짓 어린애가 옹알이하듯 재잘대고

산그늘 조금씩 끌어당겨 정수리를 덮고 있다.

 

몇 겹의 물굽이가 수만 번 날을 세워야

딱지 앉은 상처처럼 푸른 문신 새겨낼까

겨우내 숨죽인 강물, 접힌 허리 쭉쭉 편다.

 

[당선소감] 자그마한 꽃대 하나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가 살을 에는 늦은 오후에 한 통의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학양식인, 전통과 조화를 이룬 현대시조가 3장 6구 정형의 틀 속에 언어의 압축미를 통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그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시조와 함께한 지난 4년이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노숙자 무료 급식소에 관한 작품을 써놓고 직접 현장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던 일, 여름날 산과 들로 나가 여우비 맞던 일, 박물관에 들러 유물을 관찰하던 일 등등 시조가 내 몸속에 자리 잡고 자그마한 꽃대 하나를 물어 올리고 있는 것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지난 5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무척 납니다. 3년 반의 투병 생활을 하면서 힘든 모습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몸을 낮춰 행동하라고 늘 당신보다 자식 걱정만 하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큰 소리로 부르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설익은 작품을 뽑아주신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 선생님, 저에게 시조의 길로 인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신 윤금초 교수님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민족시사관학교 선배 문우들께 영광을 돌리고 싶고 시골에 홀로 계신 어머님과 말없이 지켜봐준 가족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김환수 /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에스엘㈜ 근무. 민족시사관학교 회원.

 


[심사평] '언어예술' 원론적 명제 충실

 

우리 모국어가 시조의 형식미학의 천착을 통해 더욱 아름답게 정제되기를 바라면서 부일신춘문예 심사에 임했다.

 

올해의 응모작 350여 편을 꼼꼼하게 다 읽고 난 후 네 편을 뽑아들었다. '매화'(이성배), '새우'(서상규), '구상나무, 적멸에 들다'(김봉집), '해토머리 강가에서'(김진우)가 최종심에 오른 작품이다. '새우'는 착상과 상상력의 전개가 이채롭다. 새우가 지닌 C자형의 모양과 웅크린 노숙자의 잠자는 자세에서 유사성을 찾아 현실문제를 부각시킨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시의 메시지가 좀더 명료한 이미지로 직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 정진하면 좋은 시조시인이 될 것 같다. '매화'의 작가는 시적 감수성은 뛰어나지만 아직 표현의 미숙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매화는 겨울의 뼈로 녹여 만든 꽃망울'과 같은 이미지는 그의 시적 재능을 가늠케 한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경합한 작품이 '구상나무, 적멸에 들다'와 '해토머리 강가에서'이다. '구상나무, 적멸에 들다'는 선이 굵고, 깊은 사유와 정신의 기개를 느끼게 하며 시적 에너지가 충일한 반면, '해토머리 강가에서'는 보다 섬세한 감성으로 언어미감에 충실하며 이미지의 조형이 탁월했다. 시는 언어예술이라는 원론적 명제에 성실하게 맥이 닿아 있다. 다시 말해 주제의식의 예술적 형상화가 시조의 그릇에 넘치지 않도록 축조했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정진을 당부한다. (정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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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콩나물 일기

 

 조민희

 

 

하지 무렵 짧은 고요 어둠에 잠겨 든다.

별꽃 뜬 어둑새벽 그믐달과 살을 섞고

쟁쟁한 징소리 내며 두 손 밀어 올린다.

 

노굿이 날개 접고 지어가는 고치 속에

갇혔다 튕겨진 몸, 바람에 여위어 가고

이제는 못 삭힌 열망 갈증으로 남는다.

 

눈물로 녹여낼까? 꺼내어 든 물음표

외발로 등 기대고 소통의 문을 연다.

화들짝 개나리 피어 또 한 생이 열리고.

 

번잡한 영등포역 문 헐거운 국밥집에서

인력시장 줄 선 사내 빈속을 달래 주는

그렇게 열반에 든다, 누추한 시대 성자처럼…

 

[당선소감]

 

도전의 활 시위 당길 수 있게 독려해 준 분들께 감사

 

늦게 김장을 담그던 날, 당선 통보를 받았다. 반가움보다는 떨림이 앞섰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웬 욕심으로 신춘문예에 도전했느냐는 질책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내면에 도사리고 있었나 보다.


65세에 조선대 평생교육원 문창과에 입학해 시 쓰기를 시작했고 4년 만에 당선의 기쁨을 안게 됐다. 50년 전 내 고교시절 담임이셨던 조복남 선생님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친정 백부이신 조설현은 립운동가 신석우가 1920년대 조선일보를 인수할 때 참여했던 분이어서 조선일보를 통한 등단이 내겐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나를 시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문병란 교수님, 젊은 분들 사이에 끼어 공부할 수 있게 허락하시고, 시 분석의 즐거움을 맛보게 해 주신 전원범 교수님, 정원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말부림의 멋과 현대시조의 광맥을 찾아가는 민족시사관학교 윤금초 선생님과 문우와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사랑과 행복한 삶을 실천하는 복음교회 목사님과 교우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따뜻한 시와 시조로 보답하련다. 도전의 활시위를 당길 수 있게 독려해 준 박현덕 시인, 이보영 시인에게 감사하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조민희

▲1940년 전남 영광 출생

▲조선대 가정학과

 

[심사평]

 

서정의 화법으로 선보인 현대적 운율 돋보여

 

올해 시조 부문의 응모작들은 재기 넘치는 시도들이 저마다의 완성도를 겨루었다. 낱말의 시각적 배치로 확보하는 신선한 형식미, 고시조의 강박을 벗어나 다양화된 소재, 현시대와 소통할 만한 말랑하며 친밀한 서술로 돋보이는 수작들이 많았다.


그러나 응모작들 가운데 그럴듯한 시어들의 기계적 나열에만 그치는 것도, 초장 중장 종장의 글자 수를 교과서 같이 맞춰서 리듬감을 잃는 것도, 모두 운율의 묘미를 살리지 못한 작품도 눈에 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그 밤의 타클라마칸' '난(蘭)의 겨울' '무' '노래하는 돌'이다. 이들 모두 당선될 만한 역량을 지녔으나, 난해한 수사법이 몰입과 이해를 가로막고, 처연한 독백에 머물러 긍정의 혜안으로 전환되지 않은 미비함이 보인다. 또한 시조의 결정적 아름다움, 다시 말해 종장의 수려한 마무리를 놓치고 있다.

 

당선작은 조민희의 '콩나물 일기'이다. 삶의 소소한 편린에서 착안한 진정의 공감을 바탕으로, 시조의 형식 미학을 지키면서 틀에 구애되지 않는 현대적 운율을 구사한다. 그리고 세밀하게 흐르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형상화와 어우러져 여향을 남긴 결구까지 서술과 서정이 조합된 화법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현대 시조의 범주를 새롭게 확장시킬 솔깃한 기질의 발견이라 여긴다.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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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아버지와 바다

 

조춘희

 


아버지,

수면을 두드리지 마세요

수평의 긴장을

간신히 지탱하는

해저의

섬과 섬 사이

안간힘을 보세요

 

아버지,

낚싯줄을 던지지 마세요

거멀못 박아둔 자리

새물이 차올라

파도는

푸른 비린내

바다를 토막내어요

 

아가야,

염려말고 바다를 보아라

달을 안고 뒤척이는

바다의 설렘을

지금 막

사랑을 품고

마음 붉어지는 찰나란다

 

[당선 소감]

 

파도의 리듬을 닮은 시조 쓸 것

 

바다가 잉태한 섬, 그 섬에 태생을 둔 저는 바다의 언어로 서정을 배웠습니다. 문학을 하겠다고 무작정 뭍으로 나왔으나 바다의 언어는 자주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문학을 하겠다는 당찬 자신감마저 잃은 채 휘청거리기도 했습니다. 바다의 언어만으로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겠다는 좌절을 느낄 즈음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건 흡사 나의 서정도 소통될 수 있다는 천명(天命)을 받은 것처럼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순간, 사량도의 바다도 출렁, 했겠지요? 무덤 속의 할머니도 덩실, 춤을 추셨겠지요?


제가 여전히 뭍에서 바다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다의 태생을 물려주신 부모님께서 아직도 그 섬, 사량도에 계시는 덕분입니다. 제가 누릴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딸의 느린 걸음에도 재촉하는 법이 없으신 부모님께 돌려야 할 몫일 겁니다. 늘 문학을 꿈꿨으나 현실의 짐과 바꿀 수밖에 없었던 언니와 이제 막 결혼을 한 오빠, 그리고 내 동생 영석과 형부의 응원에 감사합니다. 뭍에서 사는 법을 일러주시는 민병기 교수님과 김정자 교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 시조의 존재를 일러주신 김형진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멈춰 서 있던 제 삶에 신발을 신겨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설렘 한편에는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있어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파도의 리듬을 닮은 시조’, 그 다양한 소통방식을 모색해서 좋은 작품을 쓰는 ‘건강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1980년 통영 사량도 출생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2년 창대문학상(시) 당선 △2003년 동아문학상(소설) 당선 △2004년 부대문학상(소설) 당선 △현 창원대 강사

 


[심사평]

 

음보와 운율 솜씨 있게 갈무리

 

새해 벽두, 한국시조단의 축하 속에서 미래를 열어갈 또 한 사람의 신예를 배출한다는 생각에 심사는 진중할 수밖에 없었다.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문인들은 경향각지에서 나름의 빛깔과 개성으로 괄목할 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전통 계승과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신예를 뽑는 일이라는 점에서 어깨가 더욱 무겁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일정부분의 성취를 보이고 있었고 치열한 습작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군계일학의 작품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남는다. 신춘의 고고성을 울리며 기존의 시조단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거나 날카로운 필치로 폐부를 파고드는 신인다운 패기를 기대한 때문이다.

 

시조는 응축의 문학이다. 짧은 3장 6구라는 정형 속에 얼마나 알맞게 시상을 가다듬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시상은 넓게 원심력을 그려야 하고, 언어는 구심력에 의지해 내적으로 단단한 구성을 취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선에 오른 작품은 ‘오래된 것에 대한 변명’, ‘겨울나무의 수사학’, ‘아버지와 바다’ 세 편이었다.


‘오래된 것에 대한 변명’은 신춘문예의 특성에 근접한 작품이다. 우선 낡은 음풍농월에서 벗어나 현대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것이 좋았다. ‘유효기간 지난 지갑’ 같은 따뜻한 시선이 눈길을 끌었으나 앞서 말한 시어의 중복이 전체적인 탄력을 얻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겨울나무의 수사학’은 상당한 내공이 엿보인다. 섬세함과 강건함을 동시에 지니는 장점들이 있어 충분한 가능성이 엿보였으나 ‘그날 그 짙은 그리메 낮달 뒤로 사위고’ 같은 추상적인 표현들이 거슬렸다.

 

‘아버지와 바다’는 3수의 작품으로 퍽 안정된 느낌을 준다. 첫 수에서 섬과 섬 사이의 안간힘이 수평의 긴장을 지탱하는 동력임을 말하고, 둘째 수에서는 낚싯줄로 잔잔한 바다의 균형이 깨지는 상황을 연출한다. 다시 셋째 수에서는 길항 관계인 아버지와 바다가 서로를 품어 안으며 화해를 시도한다. ‘바다의 설렘’, ‘사랑을 품고’ 같은 직설적 언어가 거슬리긴 하지만 음보와 운율을 갈무리하는 솜씨에 신뢰가 간다.

 

심사위원은 이 세 편 중 조춘희씨의 ‘아버지와 바다’를 당선작으로 민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선전한 두 분에게는 재도전의 발판이 되길 빈다. (김연동, 이달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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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매일신문

 

양두고(兩頭鼓)

 

유현주

 

 

어우르던 장구가 더운 숨을 토한다

생사의 경계선을 이랑인 듯 넘어와

울음을 되새김하여 소리로 환생한 소

옹차던 속 들어 낸 여섯 치 오동나무에

조임줄로 다시 묶여 코 뚫림을 당할 땐

북면을 힘껏 조이며 공명통을 안는다

사포를 쇠 빗 삼아 쓸어주는 조롱목

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로 조율되고

긴장한 소릿결들이 평온하게 풀릴 즈음

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

열채로 엉덩이를 가볍게 두드리자

덩더꿍, 변죽을 울리며 타령을 끌고 간다

 

[당선소감]

 

혼자 아닌 가족들의 힘으로 영광얻어

 

시조를 시작하고 나서 한 삼년 두문불출하고 살았습니다. 처음엔 다독을 하다가 나중엔 무진 쓰기에만 매달렸는데 그 몰두가 독학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가끔은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시 같지도 않은 글들을 시라고 우기며 긁적거리던 것과는 다르게 시조는 그 매력에 비례하는 힘겨움을 주었고 길이 아닌가 싶게 뒷걸음질치게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쉼 없이 정형의 틀에 자신을 꿰맞추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이왕이면 목표를 정하자고 생각한 것이 신춘문예였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이들이 줄 서 있음에도 저에게 이 단단한 문을 열어 주신 매일신문사 측에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는 혼자서 꿈을 이룬 것이 대견하였는데 다시 생각하니 이것은 모두 가족의 힘이었다는 걸 알겠습니다.


먼저 오늘이 있기까지 말없이 지켜봐 준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또한 평생을 시조창으로 살아오신 친정 아버지와 그 뒤를 그림자처럼 보필하신 어머니께 큰 절을 올립니다. 아버지의 학 같던 춤사위가, 지나던 달빛을 잡아두던 시조 가락이, 손수 파신 오동나무로 장구를 만들던 어린 날의 기억이 지금의 제게 너무도 큰 재산이 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들, 아버지의 감성을 오롯이 물려받지 않았던들 이 영광은 절대 없었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시어
앞으로의 저를 지켜봐 주십시오.

 

지인께서 어떤 글을 써 보고 싶으냐고 질문하셨을 때 겁도 없이 신춘문예 당선 소감을 써 보는 것이라고 한 것을 기억합니다. 드디어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단히 노력했지만 아직은 많이 섭니다. 열어주신 이 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가면 지금까지 부딪치지 않았던 어려움과도 만나게 되겠지요. 그럴 때마다 힘들었던 어제를 생각하겠습니다. 겸손하고 바르게 한발 한발 내딛으며 열매를 익힐 것입니다.


부족한 글을 선하여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진하여 보답하겠습니다.

 

유현주

▷1967년 충남 서산 출생 ▷2007년 4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2008년 2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2009년 7월 중앙시조백일장 차상

 

[심사평]

 

활유의 기운 넘치고 정서 조율 솜씨도 자별

 

투고한 작품들은 저마다 한 송이씩의 꽃이라는 생각이다. 피봉을 뜯는 순간 서둘러 벙근 꽃들이 선자의 손에 이르자 일제히 만개한다. 그 향기와 빛깔의 다툼이 현저할수록 고선의 고통은 커진다. 안타까운 것은 그 많은 꽃 중에서 오직 한 송이만이 독자한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다. 익명의 꽃이 실명의 꽃으로 바뀔 때, 또 한 사람의 시인이 우리 곁에 온다.

 

올해도 경향 각지에서 고른 투고가 이어졌다. 섣부른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치열한 각축 양상이다. 지르잡아 읽고 다잡아 읽는 몇 번의 숙고 끝에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강은미씨의 「민들레의 잠」, 배경희씨의 「나무의자의 기억」, 백점례씨의 「고요한 강」, 그리고 유현주씨의 「양두고(兩頭鼓)」 등 네 편이다.

 

「민들레의 잠」은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어쩌다 화분에 날아온 민들레를 입양아에 빗댄 감각 또한 신선하다. 「나무의자의 기억」은 존재의 사유를 밀고 가는 안정된 호흡이 강점이다. 나무의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톱날과 대팻날의 신산으로 풀어내고 있다. 「고요한 강」은 낚시터의 상념이다. 차분한 어조로 세상 속에 낚싯대를 드리운 생존의 풍경을 그려낸다. 이들 작품은 당선권에 바짝 다가섰으나, 정서의 깊이나 얼개의 치밀함에서 아쉽게 깍지가 풀리는 느낌이다.

 

올해의 선택은 「양두고(兩頭鼓)」를 들고나온 유현주씨다. 작품의 전편에 활유의 기운이 넘친다. 감각과 상상력의 결속이 뛰어나고, 긴장의 밀도를 다져가는 적절한 비유가 돋보인다. 사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서를 조율하는 솜씨 또한 자별하다. 장구는 북편과 채편의 양두를 가진 악기다. "더운 숨을 토하"던 소는 가죽으로 남아 생전의 "울음을 되새김"한다. 소의 "완강하던 고집이 세마치"장단으로 환생하면서 "공명통을" 울리는 감동에 닿는다. "옻 밥을 먹은 소가 밭갈이를 나선다"는 표현은 마지막 칠을 마치고 연주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열채로" 두드리는 "엉덩이"는 장구의 채편일 터. 그럴 때 궁글채는 북편의 "변죽을 울"릴 것이다. 그렇게 장구는 세속의 신명 속으로 "타령을 끌고 간다.'' 당선의 영예에 매몰되지 않는 각고와 성찰로 정형미학의 완결성을 높여주길 바란다. (박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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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월, 누에고치

 

이상선

 


할머니 지문 찍힌 뽕잎마다 이랑진 삶 
넉 잠 든 잠실에 들면 반투명 누에들이
큰스님 넉넉한 손처럼 가진 것 죄 내줄 때.

 

이따금 명주실 같은 부드러운 바람결이
자디잔 물비늘을 은어 떼로 풀어놓고,
풀벌레 달빛 속에서 반짝반짝 울고 있다.

 

지는 꽃의 뒷등마냥 적막한 누에고치
길을 버린 누에들은 곡기마저 물리친다,
폭폭한 제 속울음도 다 퍼내지 못하고.

 

마분지 빛 흐린 날의 장막 한 겹 걷어낸다.
얼음 박힌 동치미국, 할머니 손맛 되새기며
시렁 위 채반에 올라 가만가만 숨 고른다.

 

호박벌은 귓전에서 풀무 소리 잉잉대고
가느스름 눈 뜬 채 장엄 열반 꽃 둥지 엮는,
한 살이 터억 매조지한 울 할머니 뒤태 같다
 
 
[심사평]말부림과 말 엮음 능력이 ‘탁월’  
 
▲ 윤금초  
 
예심을 거쳐 선자의 손에 넘어온 작품은 59편이다. 부풀려 말하면 헤모글로빈 냄새 풍기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의 격전장을 방불케 한다. 저마다 다채로운 언어풍경을 펼친 작품 가운데 다섯 편을 놓고 적잖이 고민을 하였다. ‘황태’, ‘지슬리, 보리 베다’, ‘바다는 슬픔을 모른다’, ‘배다릿집 어부 아재’, ‘5월, 누에고치’가 그것인데, 이들 시편은 어느 작품을 골라도 좋을 만큼 색다른 개성과 성취를 보이고 있다.

‘황태’와 ‘지슬리, 보리 베다’는 시조의 형식미학과 구문법을 오롯하게 갖춘 빼어난 작품이다. 그러나 시를 끌고 가는 힘이랄까, 저력은 유지하고 있는데 아직 내공(內攻)이 부족한 탓인지 강렬한 주제의식과 세련미를 엿볼 수 없다. ‘바다는 슬픔을 모른다’와 ‘배다릿집 어부 아재’를 주의 깊게 살펴봤다. 두 작품은 어디 한 군데 흠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우며, 흡인력 또한 넘쳐난다. 하지만 상징과 은유가 때로는 겉돌며, 발상법이 기발하지만 그 재치가 경이로움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당선작 ‘5월, 누에고치’는 ‘관조의 총혜(총명하고 슬기로움)’를 읽을 수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약간 예스런 정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삶에 대한 남다른 통찰과 이해가 녹아 있는 ‘5월…’은 ‘말 부림과 말 엮음 능력’이 탁월하다. 넉 잠 든 누에들이 “큰스님 넉넉한 손처럼” 가진 것 다 내주고, “한살이 터억 매조지한 울 할머니 뒤태 같다”는 대목은 시조 특유의 그윽한 맛을 우려내고 있는 것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오늘의 영광이 글쓰기의 피리어드가 아닌, 시조시학을 새로 경영하는 첫 삽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흔들림 없이 정진하기 바란다.

윤금초

● 프로필

시조시인

1941년 전남 해남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부’ 당선

제11회 현대불교문학상(시조부문, 2006)

작품 <어처구니 없는 소득(所得)>(아리랑·1971), 시집 <어초문답>(지식산업사·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