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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등록일 2016.01.13 18:01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556

201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파란 잉크 주식회사

이중원

 

새초롬한 잎사귀에 햇살이 내리쬐어도

 

버스가 남기고 간 잿빛의 연기만이

 

망막에 재고가 남은 유일한 색채일까

 

발 아래 선이 있고 내 뒤로 줄이 있다

 

느려지는 발자국을 억지로 잡아끌어

 

통근의 컨베이어에 실려가는 유리병

 

모래알 흐르듯이 부서지는 빛줄기가

 

정류장 팻말 옆의 풀 허리에 한껏 고여

 

메마른 마개 틈새에 떨어지는 오전 10시

 

빵, 하는 경적음에 뜬 눈이 부시도록

 

생생하게 흔들리는 푸릇한 잡초들만,

 

염가에 세일 중인 창공, 한없이 싱그럽다


 

[시조 당선소감]

 

나만의 빛의 온도로이 길의 끝까지…

이중원

 

싸늘하게 입김마저 얼 것 같은 공기만큼이나 햇볕이 곱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날. 당선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가슴 벅찬 기쁨도 있었지만 ‘아, 이제 정말로 시작이구나’… 글을 쓰는 손 위에 좀 더 무겁게 실리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오래전에 꺼져버린 것 같은 마음속의 불을 다시 지펴주신 아버지, 그리고 언제나 격려 어린 말과 함께 객관적 태도로 작품을 읽어주시는 어머니와 형님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건축학적 접근과 관련하여 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르쳐주신 이승훈 교수님, 어려운 순간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시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챙겨주신 유성호 교수님, 금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남규형, 그리고 미력한 습작에도 분에 넘치는 격려를 보내주신 오세영, 윤금초, 홍성란, 박형준 선생님께도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작가란, 그리고 시인이란 아마도 자신만의 빛으로 온갖 온도의 현실을 표현하는 사

 

람일 것입니다. 저 자신이 그것을 앞으로 얼마나 더 잘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이것을 좀 더 철저하게 고민하는 것부터가 저의 첫걸음이리라 생각합니다. 이 길의 끝까지, 열심히 달려가겠습니다.

 

―1986년 서울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입학

―제4회 님의 침묵 전국 백일장 차상

 

[시조 부문 심사평]

 정형 구조 넓힐 신인… 더 놀라운 '파란' 기대돼

정수자(시조시인)

 

오래된 형식으로 어떻게 오늘의 시를 열어갈까. 기대와 설렘으로 거듭 읽었다. 시조에 입혀온 선입견이나 관념적 답습에 그친 낡은 모사(模寫)와, 작년 응모작을 살짝 고쳐 낸 것들부터 내려놓았다. 새로움을 향한 도전으로 께름한 데다 습작의 양이 등단 후 생존에도 큰 바탕이기 때문이다.

 

당선작으로 이중원씨의 ‘파란 잉크 주식회사’를 올린다. 끝까지 겨룬 응모자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대상을 파고드는 시선이 예각적인 조우리씨, 참신한 어법으로 진술과 이미지의 명도를 높인 김상규씨였다.

 

서정적 여운을 형식의 미덕으로 삼을 줄 아는 정영희씨, 재기로 정형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 조선의씨도 다시 읽게 했다. 서희정·이태수·이예연씨 등 이십 대가 펼쳐낸 상상력과 발랄한 문법에서도 새로운 시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중원씨의 독창적 세계 개진은 그중 단연 돋보였다. ‘파란 잉크 주식회사’는 언어에 촉수를 달고 탐사하듯 세밀한 감각의 깊이로 잡아 엮는 묘사와 진술이 긴밀한 조화가 압권이다. 현실의 다면을 꿰는 독법으로 발생시키는 낯선 미감의 어조 속에 유지하는 정형성도 견고하다.

 

제목 ‘파란’이 촉발하는 원인에 대한 다양한 상상 또한 작품 전편에 이상한 생기와 냉기를 부여한다. 지면 사정상 미룬 ‘열두 개의 계단’은 긴 분량(12편 33수)임에도 매 편 다른 발성과 기법으로 시적 역량의 최대치를 보여주고 있다. 응모작(총 9편 58수)마다 색다른 어법과 고른 수준과 능숙한 형식 운용 등으로 미루어볼 때, 정형 구조를 확장할 신인 탄생으로 기대된다.

 

당선을 축하한다. 더 놀라운 ‘파란’을 열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