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순천만 유혜영
바람의 모서리를 견디는 중인데도 꼿꼿이 일필휘지 필법을 생각한다 온몸이 붓이 되었으니 필체가 웅장하다
밀물과 썰물이 조석으로 읽고 가며 오밀조밀 새긴 문장 짠 내가 풍부하다 뻘밭을 꼭 찍어 맛보는 왜가리는 쉼표인가
한순간 철새 떼가 갈대를 필사한다 이곳의 진경을 저곳으로 옮긴다 이 세상 가장 거룩한 습지 황홀경이 살고 있다
유혜영 경기도 이천시 출생. 2001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풀잎처럼 나는』 『치마, 비폭력을 꿈꾸다』 등 출간. 박종화 문학상 수상.
차상 하루 류용곤
손가락 한 마디가 달 속으로 사라지고 또다시 올라오는 동쪽 하늘 아린 새벽 몇 번을 잘려 나가야 통증 없이 살아날까.
차하 소방일기日記 남궁증
1 너희는 날기 위해 꿈자리를 비운다지 방수화에 방화복 구두 대신 올려놓고 천 번의 눈 맞춤 끝에 새매*되어 난다더군
2 뼈를 훑는 사이렌 긴 물줄기 거머쥐면 불길 속 컵라면 한 끼, 면발 잘린 산소통 몇 초의 생수병처럼 물을 쫓아 뒹구는 헬멧
3 이런 밤이면 생각나요 어머니의 붉은 밥상 침상 끝을 써 내려간 처음인 듯 마지막의 그 문장 날개를 달고 눈시울을 나는구나!
※새매 : 용맹을 상징하는 소방공무원의 표지장이다. 지난 10년간 54명의 소방관이 순직하였다.
이달의 심사평 6월, 신록이 눈부신 달. 이달의 당선작들을 올린다. 장원은 유혜영씨의 ‘순천만’이다. 화자는 장엄한 순천만의 풍경을 진경산수화를 그리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유도 뛰어나고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등 다양한 심상을 활용한 시적 기법도 탁월하다. 시조가 가져야하는 제시, 전환과 확장, 종결의 미학도 잘 살렸다. 그러나 둘째 수 중장 ‘풍부하다’라는 형용사가 걸린다. 모든 어휘는 시어가 될 수 있지만 어떤 언어는 시어가 될 수 없다는 모순성 때문이다.
차상은 류용곤씨의 ‘하루’다. 삶의 고단함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초장의 ‘손가락 한 마디가 달 속으로 사라지고’는 강렬하다. 험난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하고, 하루를 손가락 마디 하나가 잘리는 것이라는 말로도 읽힐 수 있는 중의적 표현이라 더욱 그렇다.
차하는 남궁증씨의 ‘소방일기’다. 다른 사람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지옥과도 같은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의 이야기다. 1장은 화자가 일기의 주인공인 소방관을 대하는 자세, 2, 3장은 제목대로 어느 소방관의 일기다. 이를 통해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급박한가를 잘 보여주었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 앞에 고개 숙이게 하였다. 오대환, 이미순, 서희정씨의 작품도 주목해서 읽었다.
심사위원 : 김삼환, 강현덕 (심사평 : 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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