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非婚) 시대 이순화
자정 지나 퇴근하는 환갑 줄 총각 이씨 기다리는 처자식 누구 하나 없어도 대세는 비혼이라며 너털웃음 달고 산다 앞질러 기다리는 자잘한 불행에게 젊음과 맞바꾼 돈 빚 갚는 셈 내어주며 새벽길 파지 한 장도 기쁨으로 주워든다 바닥을 치면서 바닥이면 또 어떠냐고 국보급 무한긍정 같이 늙는 트럭 한 대 방지 턱 넘을 때마다 달빛 출렁 쏟아진다
「1965년생. 서경대 일문과. 동두천 문협, 동연독서회에서 활동. 유심시조아카데미에서 시조 공부 중.
」
뿔 윤애라
보도블록 틈 사이로 헤집고 나온 봄이 텅 빈 하늘에다 점을 찍고 있습니다 홀씨로 들이받는 꿈 환해지는 이 공간 어느 골짝 먼 물소리 귀 기울여 보다가
한 방울 젖을 때면 키를 늘인 연둣빛 비집고 나섰습니다 아직 추운 이 둘레 겨우내 찬바람에 닦이고 닦인 별빛 가슴에 받아 안고 그예 꿈 내 딛는 날 천지를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싶습니다.
봄의 현관 조긍
잡동사니 쌓인 겨울 읽고 있는 다용도실 여남은 개 묵은 감자 새싹이 돋고 있다 겨우내 미루던 일기 씨눈으로 적는 건지 텃밭 가꾼 친구가 먼 택배로 보내와서 버리지 못했더니 그예 한마디 쓰나 보다 잔설의 여백을 건너 첨부하는 상춘 안부 식탁에 올리면 구수한 낱말 돋아난다 대보름 부럼이랑 찐 감자에 동치미 조각 손 글씨 늦은 답장이 자꾸만 길어진다
그리하여 마침내 봄이 왔고, 봄이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숙성을 위해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작품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한 가운데 이순화씨의 ‘비혼 시대’를 장원 작으로 들어올렸다. 이 작품은 환갑 줄에 접어들도록 총각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무한긍정”으로 세상 을 살아가는 이씨의 곡절 많은 삶이 오롯이 포착된 가작이다. 바로 그 이씨의 삶 위에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인간관계도 다 포기했다는 5포에다, 그 보다 더한 7포, N포 세 대가 겹쳐져 보여서 가슴이 뭉클 했다. 시상 전개에도 별다른 무리가 없고, “방지 턱 넘을 때마 다 달빛 출렁 쏟아진다” 같은 신선한 구절에도 방점을 찍게 했다. 차상으로 뽑힌 윤애라씨의 ‘뿔’은 봄날 뾰족뾰족 돋아나는 생명을 뿔에다 비유하여 표현한 제 목부터가 상큼하고, “천지를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싶습니다”로 이어지는 메시지의 도출과정도 자연스럽다. 차하로는 조긍씨의 ‘봄의 현관’을 뽑았다. 달마다 빠짐없이 응모하고 있는 조씨의 작품들은 전 반적으로 리듬이 불안하고 말의 기맥이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늘 아쉬웠는데, 이제 많이 개선 된 것 같다. 앞으로 이점에 좀 더 유의하면 보다 좋은 작품을 쓰게 될 것이다. 박혜순, 설경미, 정화경, 원순자, 김경연씨 등의 작품들이 끝까지 각축을 벌였다. 모두 새로 투 고한 분들이라 앞날에 기대를 가지게 했다. 심사위원: 염창권·이종문(대표집필:이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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