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
-박한
도려 진 살점 앞에 순한 눈 지느러미
아리고 비린 가슴 기억을 뒤로 한 채
어시장 난전 위로는 발자국만 넘친다
발목 잠긴 생의 뒤란 목숨에 저당 잡혀
조각난 그리움을 무두질로 달랬었지
촉 낮은 비릿한 꿈이 사리로 빚어지는
굳은 살 박힌 등짝 거스러미 재우다가
바람 칼 이고 서서 아픔 꾹꾹 다지며
한 평생 가시를 삭여 또 한세월 건넌다
시래기와 노인 모습 얼비쳐 … 쇠잔한 풍경 담담하게 그려
녹음이 짙어진 5월의 끝이다. 푸른 불길이 지펴진 생명의 숲에서 애써 쇠잔한 삶의 형상을 돋워내는 예비시인들을 만난다. 우선 조영애·정두섭·박한 등의 작품이 각축을 벌였다. 장원으로 올린 조영애의 ‘시래기 덕장’은 함께 보내온 ‘제비꽃 한나절’과 함께 시상의 단정함이 돋보였다. “양구덕장”의 “시래기”와 “파고다 공원”의 “슬픈 눈들”이 병치되면서, 사물의 이야기가 몸의 서사에 겹쳐진다. 말라가는 “시래기”에 “노인들”의 모습을 얼비치게 하여 쇠잔한 풍경을 환기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차상으로 올린 정두섭의 ‘아마도’는 말을 앞세워 의미를 구성하는 힘이 돋보인다. 그런데 다른 작품에서 보듯, 말의 재미에 빠져 산만해질 수 있다. 여기서 ‘아마도’는 “지도에 없는 섬”이자 노년의 회상이 닿는 곳으로, 인생사의 축약본이라 할만하다. “
“길 잃고 길 묻는다”고 했을 때 자기 의지로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이며, “희고 붉은 아마도”는 생의 종착역에 대한 막연한 추측이 아니겠는가.
차하로 올린, 박한의 ‘개복치’는 시조의 정공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려 진 살점” “비린 가슴” “조각난 그리움” 등은 삶의 형상을 떠올리는 장치이다. 어시장 좌판에 놓여 있는 “개복치”를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네 삶도 “가시” 박혀 난전을 떠도는 처지와 다름없음을 나타낸다. 이밖에도 끝까지 남은 남윤혜의 작품은 시선의 발랄함이 눈에 띄었으나 결구 처리에 허술한 틈이 보여 안천근·남궁증·고경자 등과 함께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였다.
심사위원: 박명숙·염창권(대표집필 염창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