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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곳에 가고 싶다/정희경 등록일 2018.01.17 09:28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663

그곳에 가고 싶다

 

 

정희경

 

 

 

 

 

일찍이 사봉 선생님께서는 시조 짓기-하지 말 일둘째 수에서 즉흥 기행 쓰지 마라/선밥에 설사 할라//축시 조시 읊지 마라/거짓말 버릇될라//조운(曺雲)<구룡폭포(九龍瀑布)>/9년 만에 썼다니라고 하셨다. 깊은 사고와 퇴고를 거치지 않은, 보이는 것만을 읊는 즉흥 기행시조 쓰기를 경계하셨다.

  평생 여행을 즐기셨고 주옥같은 기행시조를 많이 남긴 백수 선생님의 기행시조에 대해 박기섭 시인은 대저 기행시조를 써서 성공한 예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백수 시의 진가를 드높인 것이 바로 기행시조라는 점은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를 던진다. 여행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기행시조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연 시인, 그가 밝힌 기행시조 창작의 요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시상의 완전 여과와 완숙을 이루는 일이었다”( 먼 산빛, 水墨의 그늘-백수 정완영 시인을 찾아서라고 밝힌 바 있다.

  기행시조는 여행이라는 정해진 소재로 인해 서정적 자아가 배제된 채 흡사 기행문의 여정이나 견문과 같은 시조로 흐르기가 쉽다. 그래서 기행시조는 잘 쓰기가 힘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박기섭 시인의 언급처럼 시상의 완전 여과와 완숙을 꾀한다면 그 어떤 시조보다도 빛날 수 있으리라. 보고 듣고 느낀 것은 더 구체성을 띄기 때문에 실감實感, 실정實情을 표현하는데 유리할 것이다. 문제는 경치나 건물, 사건, 사물, 사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얼마나 이마지화하고 육화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현대시조는 기행에서 얻은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잘 녹여 내어 빛나는 작품들이 많다.

 

  서석조 시인은 45일간의 중남미 9개국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기행시조집 별처럼 멀리 와서와 함께 왔다. 새롭고 경이로운 감흥을 사진과 시조로 새겨 독자들을 낯선 곳으로 자세히 그리고 감동적으로 안내한다. 별처럼 멀리 와서에는 사람냄새가 있고, 문화가 있고, 자연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을 안내하는 시조가 있어 더욱 값지다.

 

 우유니사막 한밤, 열사흘 달이 환해

 추위에 몸을 떨며 하염없이 올려보다

 내 몹쓸 욕심은 얼마 샅샅이 비칩니다

 

 사만 리 외딴 멀리 눈치 볼 무엇 없어

 굽고 젖은 마음들 하나 없이 꺼내놓고

 이 지상 더없이 맑은 달빛으로 바랩니다

 

 견주어 바글대며 때 없이 부린 욕심

 왜 하필 먼 이역 소금 사막 달빛인지

 부신 눈 내려놓으며 그대만일 뿐입니다

 -서석조 사만 리 외딴 멀리전문, 별처럼 멀리 와서(2017, 교음사)

 

  시인은 볼리비아의 우유니사막을 여행 중이다. 그것도 한밤, 열사흘 달아래 서 있다. 우유니사막의 광활한 모습에 대한 감탄을 넘어 시인은 자신을 반추하고 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우주의 티끌처럼 작은 인간, 자신을 비추어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매개체는 열사흘 달이다. ‘몹쓸 욕심’ ‘굽고 젖은 마음’ ‘때 없이 부린 욕심소금 사막 달빛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어 독자로 하여금 시인의 감정을 쉽게 헤아리게 하며 또한 수긍하게 한다.

왜 하필 먼 이역 소금 사막 달빛인지라고 되묻고 있지만 이는 여행자의 마음을 녹이기엔 우유니사막이 충분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대만일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사만 리 외딴 멀리와서 눈치 볼 무엇 없어소금사막 달빛에 자신을 비우는 시인,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는 소금 사막의 광활함에 대한 감탄을 욕심과 달빛에 녹여내는 시인, 여행자로서의 참 모습을 보는 듯하다. 우유니사막, 그곳에 가고 싶다.

 기행시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시조는 문화, 산업, 자연, 인간에 이르기까지 한 지역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내기도 한다. 이것은 시조로 지역을 노래함으로써 지역사랑의 마음을 돈독하게 하고 그 지역을 알리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지역을 노래한 시조로 엮어진 네 권의 시조집을 앞에 두고 가슴 설레고 행복한 것은 시조가 현대 생활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 때문이다.

 

  시조의 국제화에 노력하고 있는 ()국제시조협회는 중국 번역시조집 경북의 마음을 엮었다. 사드문제로 냉각된 양국의 관계를 회복하고 경북 사람들의 순수한 서정으로 중국인들의 상심을 위무한다는 의미 있는 모색이라고 책머리에 밝힌 이 작업은 시조의 국제화에 한걸음 다가선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안개 피는 못둑에서 점자판을 더듬는다

 행간 넓은 수면 넘겨 물의 책 읽어 가면

 왕버들 수백 년 역사 만연체로 흔들린다

 

 발 젖은 나이테에 짓뭉개진 장서藏書마다

 문장과 물결사이 잉어들 헤엄쳐와

 별바위* 눈 먼 그림자 아픈 내력 전해준다

 

 가던 길 잃어버린 낮달을 배경으로

 이제 막 도착한 연초록 신간들이

 꿈꾸는 이름을 달고 윤슬로 글썽인다

 

*주왕산에 있는 바위로 주산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있다

-김광희 주산지를 읽다전문, 경북의 마음(2017, 목언예원)

 

  주산지를 물의 책점자판으로 읽고 있음이 신선하다. ‘만연체’ ‘장서藏書’ ‘문장’ ‘연초록 신간이라는 시어들이 물의 책과 조응하고 있어 잘 엮어진 책 한 권을 읽는 느낌이다. 제목을 주산지를 읽다로 놓은 점 또한 물의 책과 연관하여 성공하였다.

  주산지에는 30여 그루의 왕버들이 물속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고 있다. 시인은 그 모습을 발 젖은 나이테에 짓뭉개진 장서藏書라고 표현하여 물속에서 뿌리가 썩어 고사위기에 있는 왕버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있다. 고사 위기에 처한 왕버들을 살리기 위래 청송시에서는 새 왕버들을 옮겨심기도 했다고 한다. 시인은 그러한 주산지의 모습을 연초록 신간으로 명명하여 꿈꾸는 이름을 달고 윤슬로 글썽인다라고 희망을 읽고 있다. 아름다운 주산지의 모습과 오랜 시간 물속에서 뿌리 내리고 자라는 왕버들의 멋진 모습이 중국인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리라 믿는다.

 

  제주시조시인협회와 울산시조시인협회는 전국시조시인을 대상으로 제주와 울산을 노래한 시조를 모아 그 섬에 가고 싶다시조, 울산을 읊다를 엮었다. 제주 풍광에 오래도록 머물며 제주와 하나 되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그 섬에 가고 싶다에 담았다고 한다. 또한 시조, 울산을 읊다울산의 자연환경과 산업현장, 인간살이, 유적 유물이 어떤 생명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또 그 삶의 실체가 어떠한 것인지를 시적 언어를 통하여 그 의미를 새겨보았다고 한다. 두 시조집은 전국시조시인들이 그들의 시조를 통해 제주와 울산을 노래함으로써 두 지역에 대한 관심을 한껏 끌어 올렸다.

 

 바다건너 불빛들이

 유배지에 왔습니다

 

 대정 고을 정의 고을

 흰 옷으로 비치다가

 

 불 꺼진

 정의 현청에

 잠시 와서 섰습니다

 

 성앞에 서지 않으면

 그 먼 길이 안 보입니다

 

 기다림이 깊어지면

 돌이 되나 봅니다

 

 육지의

 사약소리도

 먼 기별은 좋습니다

  -강상돈 돌하르방1전문, 그 섬에 가고 싶다(2013, 제주시)

 

  제주의 첫 인상은 돌하르방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하르방은 마을의 평안과 융성을 지켜주며 기원하는 수호신적 기능, 사악한 것을 막아주는 주술 종교적 기능, 성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의 구분이나, 성문 출입을 제한하는 위치 표지 및 금지 표시 기능 등을 한다고 한다. 그런 돌하르방을 시인은 제주도로 유배 온 사람에 이입시켰다. 버림받은 오지로서 취급을 받아 조선시대 정객과 학자들의 유배지로 많이 채택되었던 제주의 역사를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이기 위하여 이 작품은 대정 고을 정의 고을’ ‘정의 현청등의 옛 지명을 배경으로 가지고 왔다. ‘육지의/사약소리도/먼 기별은 좋습니다라고 하는 종장은 당시의 제주의 열악한 상황을 잘 나타내주고 육지를 향한 그리움의 적절한 표현이다. 제주에 유배 온 우암 송시열, 추사 김정희 등 많은 정객과 학자들이 제주에 유학을 보급시키고 문화발전을 꾀했으니 유배자인 그들이 제주를 지키는 수호신인 돌하르방으로 서 있는 것이리라. 이러한 제주의 역사를 에둘러 표현한 이 작품은 읽을수록 매력적인 작품이다.

 

 파도가 몸을 잠근 개운포 바닷가에

 처용을 따라와서 돌아가지 못한 배들,

 소금이 하얗게 절은 그리움을 닦고 있다

 

 수줍은 꽃잎들이 노을 앞에 옷을 벗자

 얼마나 자랐을까 키를 재는 그리움

 무너진 성돌 너머로 별 한 움큼 획, 뿌린다

 

 키가 큰 왕대나무 손 비비는 소리 끝에

 해체된 고래였나 하얀 뼈로 끌려오면

 포구는 해무海霧 속으로 다친 팔을 숨긴다

  -유설아 개운포 이야기전문, 시조, 울산을 읊다(2015, 작가시대)

 

  개운포는 울산 남구에 있는 포구이다. 지금은 공장에 둘러싸여 쇠락한 포구이지만 신라시대에는 국제무역항이었다고 한다. 처용의 설화가 있고 개운포 성터가 남아있다. 신라 헌덕왕이 바다에 나왔다가 갑자기 생긴 구름과 안개로 길을 잃었는데, 해신에게 빌어 구름이 걷혔다 하여 개운開雲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시인은 그런 개운포에서 역사를 따라 걷고 있다. 과거에 비해 쇠락한 포구에서 처용설화를 만나고 염산지로 유명한 개운포의 소금을 만지며 무너진 성돌 너머로 별을 던진다. ‘왕대나무군락지를 건너 귀신고래 회유 회면에까지 이른다. 시인은 포구를 따라 오면서 소금이 하얗게 절은 그리움을 닦는다고 했다.

  이 작품은 역사(염산지-소금)를 현실(그리움)에 꿰맨 자국 없이 잘 녹였다. 공단화된 오늘의 개운포를 다친 팔로 묘사하는 비범함이 놀랍다. ‘개운開雲이 다시 해무海霧 속으로’ ‘다친 팔을 숨기니 공단화된 오늘의 개운포에 처용의 부적을 붙이러 가고 싶다.

 

  이호우 이영도 문학기념회에서는 시조의 수도, 청도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오누이시조문학제를 매년 개최하여 많은 시조시인들을 청도로 모이게 한다. 2013년에는 청도를 찾고 청도를 사랑하는 시조시인들의 청도에 관한 시편들을 모아 청도의 시조, 시조의 청도라는 문구와 더불어 살구꽃 핀 마을이라는 시조집을 엮었다.

 

 낮 더위 비켜서자 걸어오는 저녁 노을

 여름을 입에 물어 성 둘레 더욱 푸르고

 성벽은 도포 입은 채 묵언으로 수행 중

 

 오래된 벼루처럼 모로 서 있는 척화비 앞

 나리꽃 주홍빛 얼굴 기와담장 훤하고

 공북루*, 둥근 기둥마다 되새기는 역사책

 

 *새로 복원된 청도읍성의 북문

  -강옥숙 청도읍성전문, 살구꽃 핀 마을(2013, 목언예원)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1995114]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는 청도읍성에서 시인은 청도읍성 밟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름 저녁 무렵 나리꽃 주홍빛 얼굴로 복원된 청도읍성을 거닐고 있는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척화비 앞에서 외세로부터 내 것을 지켜야한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있으리라. 그날의 역사를 오늘 청도읍성에서 생생히 읽고 있으리라. 그곳에서 시인과 함께 여름밤을 걷고 싶다.

  이 작품은 걸어오는 저녁 노을’ ‘여름을 입에 물어’ ‘도포 입은 채’ ‘오래된 벼루처럼등의 개성있는 표현으로 청도읍성을 자연 속에 배치하여 청도읍성을 이미지화하고 회화적으로 잘 나타내었다. 청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이고 역사를 아끼는 마음이 시조로 모여 청도는 이미 시조의 수도이다.

 

  여행은 낯선 곳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 일이다. 시조로 여행을 간다는 것은 그 설렘이 배가 될 것이다. 시조시인들이 시조로 많은 사람들을 여행지로 데리고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곳에 가고 싶다는 욕구가 시조로 피어나길 소원한다.

 

 

<약력>

- 2008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으로 등단.

- 2010서정과현실신인작품상 당선. 가람시조문학신인상, 올해의시조집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 - 영언 동인.

- ​시조집 지슬리』 『빛들의 저녁시간

 

<시조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