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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김진숙 시인 시집엿보기 등록일 2020.01.28 13:2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411

김진숙.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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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2006년 <제주작가>로 작품활동 시작, 2008년 <시조21> 등단,

시조집 <미스킴 라일락>, <눈물이 참 싱겁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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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콩

 

 

 

한 뼘 반 콩깍지가 잘 벼린 칼날 같다

 

맨발로 신명나게 작두 한번 타볼까

 

초가을 먹장구름도 배겨나기 힘들겠다

 

 

 

 

뭉크의 겨울

 

 

 

겨울 귀퉁이마다 포클레인 이빨 자국들

너덜너덜해진 세상을 구덩이에 파묻던 밤

그토록 치열한 입을 나는 본적이 없다

 

뭉크의 겨울처럼 귀를 찢던 비명소리

치욕으로 붉어져 밤새 눈은 내리고

구제역 도장이 찍힌 동물들이 지워졌다

 

펑펑 눈 내려 울음 다 덮을 수 있을까

어미젖을 헤집다가 어미 따라 묻힌 별들

하얗게 평지의 무덤, 눈이 계속 내렸다

 

 

 

겨울 관음사

 

 

 

멍들고 뒤틀리고 찢겨진 것들의 고향이다

 

금박장식 벗겨진 미륵대불 어깨 위로

 

세상을 견디게 하는 눈이 펄펄 끓는다

 

 

 

담쟁이

 

 

밤새 벽을 긁었던가

손톱 끝이 먹먹하다

 

길 잃은 새끼 고양이

울다 잠든 새벽녘

 

일용직 하루를 싣고

언더배기 오른다

 

새벽종이 울지 않아도

따뜻한 밥을 위하여

 

주춤주춤 일어서는

내 부모 살아온 땅에

 

나는 또 무엇을 향해

푸른 손을 뻗는가

 

 

 

휘청

 

 

 

솔방울을 밟았다

이빨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무심코 내뱉어버린

가볍고 쓰디쓴 말들

 

괜찮아?

어금니 꽉 깨물고

솔방울이 먼저

물었다

 

 

 

빈집의 화법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린 적 있었다

감물 든 서쪽 하늘 물러지는 초저녁

새들이 다녀가는 동안

버스가 지나갔다

 

다 식은 지붕 아래 어둠 덥석 물고 온

말랑한 고양이에게 무릎 한쪽 내어주고

간간이 떨어진 별과 안부도 주고받지

 

누구의 위로일까

담장 위 편지 한 통 

'시청복지과' 주소가 적힌 고딕체 감정처럼

어쩌면

그대도 나도 빈집으로 섰느니

 

직설적인 말투는 잊은 지 이미 오래다

좀처럼 먼저 말을 걸어오는 법이 없는

그대는 기다림의 자세,

가을이라 적는다

 

 

 

비양도 노을

 

 

 

저물녘 서쪽 하늘로

하루 같은 능소화가

 

홀연히

레데의 강을

이제 막

건넜는지

 

비양도 마음 언저리

그도 나도 뜨겁다

 

 

 

제주 고인돌

-용담2동 581

 

 

제주에선 고인돌을 '석선'이라 부르지요

귀퉁이 닳고 닳아 표정조차 읽을 수 없는

옛사람 오래된 집을 판독하는 바람의 날

 

섬에서 나고 자라 바람 타는 법을 알지요

저어라 노 저어라 유배지의 파랑주의보

팽나무 그늘에 들면 거친 숨소리가 들려요

 

이백여 년 출륙금지령도 끝끝내 막지 못한

자유를 향한 항해의 꿈 잠결이듯 튕겨보는

난바다 검은 팔뚝에 일어서는 파도소리

 

 

 

숟가락 드는 봄

 

 

사월 어깨 너머 푸른 저녁이 온다

이 빠진 사발처럼 걸려 있는

초승달

 

누구의 가슴 한쪽이

저리 시려 오는 지

 

그림자 빛을 가두며 내 뒤를 따라 온다

한 걸음 딛고 나면 달아나는 발자국

 

온 섬을 불 지르고 간

그날에 가닿을까

 

꽃이라 불렀지만 눈물이라 읽힌다

제주 땅 어디에나 울먹울먹 피어나

 

뿌리째 흔들고 간다,

내가 모른

봄 저편

 

눈물은 그런 거여 퍼내도 우물 같은

함께 울 줄 알아야 세상을 배우는 거여

 

힘겹게

숟가락 하나

눈물 한 줌

뜨는 봄 

 

 

 

가을귀

 

 

스릉스릉 귀뚜라미

훙부네 박을 켜나

 

톱질하다

톱질하다

 

베란다 쌓아 올리는

 

그 울음

혼자 두지 못해

밤새 켜둔

하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