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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춘
제주시 애워릅 곽지리 출생
2001년 <시조세계>로 등단
시집 <쇠똥구리의 무단횡단>, <어떤 직유> , 현대시조 100인선 <노란, 그저 노란>
제주작가,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원
과물
애월과 금성 사이
밀물과 썰물 사이
백록담 숨어든 물 해안에 와 터지는
그만치 그 거리에는 곽지리 과물이 있다
윗물은 마시는 물,
아랫물은 멱 감는 물
숭숭 뚫린 담벼락 여턍을 훔쳐보던
깔깔깔 조무래기들 멱살 잡힌 낮달아
물허벅에 퐁퐁퐁
원정물질 발동기 소리
울산일까 방어진일까 어머닌 떠났어도
내 고향 마르지 않는 순비기꽃 숨비소리
단애에 걸다
이 겨울 누가 내게 마른 꽃을 건넨 걸까
거꾸로 걸어놓은 한 움큼 산수국이
기어코 애월 바다로
나를 끌고 나왔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한 무리 괭이갈매기
저마다 파도 끝에 사연들을 묻어놓고
해질녘 아득한 하늘
또 하루를 삭힌다
늦은 귀갓길에 눈 몇송이 남아서
모난 마음 한쪽 자꾸만 깍아내다
아슬히 단애斷崖에 걸린
인연마저 떠민다
다시, 가을
별짓을 다 해밨자
시 한 줄 없는 가을
우연한 발길 따라 서영아리 오름에 앉아
불에 뜬 뭉게구름만 다독이고 왔었다
깊이 한번 빠져봐야
그게 진정 사랑인 거
소금쟁이 딛고 간 길에 서 푼어치 사랑만
한 번도 젖지 못하고 물수제비로 떠돈다
단풍나무 따라가다,
왔던 길도 놓쳤다
아예 분화구에 터 잡은 세모고랭이처럼
물 건너 딸아이에게 안부나 묻는 저녁
그 옛날 청춘들은 연애편지 한 장에도
생목숨을 내던지던 그런 시절 있었지
오늘은 그 바위 위에 새 한마리 앉았다
어떤 소문들은 부표처럼 떠올라
너에게 가는 길마저 접근금지 당했다
하늘에 금줄을 긋듯
길 떠나는
하얀 손
항파두리
밤마다 별빛들이
다녀가는
샘이 있다
어느 장수 발작구이
섬으로
찍혀있는
장수물 얼비친 성을
떠받든
눈빛이 있다
단풍
타다만 불꽃을 보며 흔드는 저기 저 손
잡목 숲 등허리에 감춰진 이야기인 듯
떼 그르, 떼그르르르 바람 앞에 떼그르르
한때는 파랗게 중심에 서 있었다
내 본색은 붉은 빛 물들대로 물들어
세상은 뒷문을 열고 배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