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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
부산출생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소리가 강을 건넌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
부산시조작품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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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돌
띄엄띄엄 이어놓아 물길을 끊지 않고
흐르는 물도 비켜 길 한 쪽 내어준다
여울진 생을 앞서간
그가 나를
부른다
현관
문밖엔
늘 헤쳐 온 파도가 넘실댄다
바다도 뭍도 아닌
여기는 작은 선창
그물질
지친 몸 부릴
배를 댄다
집이다
바람이 사람같다
신명은 어찌 못 해 산에 들에 죄다 풀고
부아가 치밀 때면 회오리 들이민다
사람이 그리운 날은 애먼 창만 두드린다
때로는 갈 데없는 떠돌이로 터벅댄다
너 떠나 텅빈 길을 구르는 가랑잎이
바람의 발꿈치인 양 가다 서고 가다 선다
보금자리
잔가지 집어 물고 공중을 나는 까치
집 장만 한다는 건 새들도 큰일거리
그래도 집세 걱정은 너네는 않고 살지
전세금 더 낮추어 이사할 집 찾는 최씨
새라면 훨훨 날다 깃들이면 그만인데
벽보판 전월세방엔 눈 맞출 데가 없다
새끼들 커가면서 채 펼치지 못한 날개
언젠간 날아오를 꿈만은 접지 마라
달동네 가파른 길도
올라서니 훤하다
그날
백화점 여성 의류 판매 사원 이정아 씨
어두운 표정 한 채 손님을 맞았다고 고객 불만 접수되어
사무실로 바로 호출, 새파란 대리한테 상소리 들어가며
다신 안 그러겠다 시말서 쓰던 그날
홀로된 친정아버지 입원 소식 접한 그날
물수제비
저수지 너른 곳간
가득 채운 물의 왕국
햇살이 비호되듯
수면 위를 반짝이고
목말라 뛰어든 돌멩이
몇 발자국
못 가네
권 목수
내리친 망치질에 손가락뼈 부러지고
전동 톱이 입힌 흉터 옷소매로 가린 사람
뭔 생각 그리 많은가 걸핏하면 넘어진다
해준거 하나 없이 딸 셋 다 컸다고
귀만 보면 입이 근질, 딸 자랑 펼치는 그
잠자코 들어주는 게 덕을 쌓는 일이다
새아버지 손을 잡고 신부 입장 하던 큰딸
하객들 눈을 피해 먼발치서 봤다는 말
덕 쌓아 술친구 되니 술잔처럼 건네준다
대빗자루
구석이 제격인지 거처는 늘 그 자리
일터로 나가서도 환대받은 적은 없다
서러운 눈칫밥 먹듯 이는 먼지 삼켰다
지난 걸음 돌아보면 귀얄무늬 지워진 길
바닥을 쓸어안고 모지랑이 되어갈 때
빗자루 하늘을 나는
꿈에 잠시 기댄다
독백 2
-데자뷔
동백이 제 꽃잎을 발아래 떨구는 걸
건너편 목련나무 꽃눈이 지켜본다
내게도 그런 날 올까
어렴풋이 돋는 아픔
독백 7
빼곡한 서가에서 책을 꺼낼 때면 본다
이웃한 두서넛이 잇달아 기우는 걸
제 중심
허물어가며
덮어주는 빈자리
독백 11
한때 채여 넘어진 건 쨍쨍한 날이었다
우산 쓰고 걷다보면 바닥에 젖는 생각
진창길 디디고 건너는 돌부리가 낯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