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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인은주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8.06.22 12:59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938


미안한 연애.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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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은주

충남 당진 출생

2013년 <시조시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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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연애

 

 

 

너에게 너무 쉽게 웃음을 또 흘렸다

 

아이의 울음처럼 애견의 재롱처럼

 

내 안의 어떤 여자가 허락 없이 나왔다

 

 

존재의 가벼움은 불가피한 태도일까

 

노견老犬처럼 비루해져 꼬리를 잘았지만

 

내 안의 다른 여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찔레꽃

 

 

 

행여나 업어줄까

 

내리막에 늦춘 걸음

 

저만치 뒷모습이

 

수풀속에 사라졌다

 

실개울

 

건너는 순간

 

확 찔렸다

 

너에게


 

 

심장으로 주세요

 

 

서툴게 뭉쳐져서 쉽게 녹는 첫눈 같이

우리도 사라지면 용서를 받게 될까

잡았던 손을 놓친 게 네 탓만 같았는데

 

어둠이 쌓여가는 늦저녁 포장마차

순대 썰던 주인 왈 내장도 드릴가요

뜨끈한 심장 있나요 심장으로 주세요

 

지나간 사람들은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쳐서 못 본 사이 지나쳐서 멀어진 사이

몇 번째 검은 밤일까 긴 겨울이 앞에 있다

 

 

 

늦은 밤

 

 

자정도 훌쩍 넘겨 비틀비틀 들어와선

조각내기 싫은 잠을 이어가는 귓전에다

 

이쁜아

날 버리지 마

당신없인

못 산다

 

술주정 조금 빌려 사랑가를 토해낸다

주무셔 걱정 말고 나이가 오십인데

 

참말로

갈 데도 없는

너무 늦은

밤이다

 

 

모른다고 말했다

 

 

곱창이 지글대는 송년회 막바지에

안하던 질문들을 서로에게 던졌는데

우리는 행복하다고

웃으면서 답했다

 

술잔을 더 채우다 비스듬히 앉았고

어쩌다 본 남편 눈은 저 여자를 향해 있다

곱창이 불판 위에서

시커멓게 뒤틀렸다

 

잡으면 사라지는 연기 같은 행복을

곱창을 뒤집으며 속으로 뒤집었다

누군가 또 물었을 때

모른다고 말했다

 

 

안심대출

 

 

이십 년 된 우리는 아직도 사랑일까

 

한밤중 돌아누운 그의 등은 말이 없다

 

어둠은 우리 사이로 수복이 쌓여간다

 

허락 없이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와서

 

이십 년 상환제로 대출을 신청했다

 

산만큼 더 살기로 한 무언의 약속이다

 

나는 그를 담보로 안심을 원했으나

 

저금리 그물망에 빚만 내고 말았다

 

서둘러 계절은 가고 다른 계절이 왔다

 

 

능소화

 

 

대문간 삽살개도

 

잠이 든 여름 한낮

 

바짝 독이 올라

 

담장을 타고 오른

 

백마리

 

붉은 혓바닥

 

태양도 멈춰 섰다

 

 

중고서점

 

 

때 절은 좁은 골목 미닫이 문을 열자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한 이야기들

 

지나간 유행가처럼 귀퉁이가 닳았다

 

성경처럼 끼고 잤던 신성한 성문영어

 

출퇴근 졸고 넘던 대장정의 태백산맥

 

그 많던 푸른 앨범들 여기 다 있었구나

 

침 묻은 순간들을 한 장씩 넘기다가

 

얼마나 더 묵으면 골동품이 되는지

 

골똘히 구석에 앉아 희귀본을 뒤져 본다

 

 

벚꽃

 

 

19번 버스가

 

꽃길을 오고 있다

 

백 미터 앞 정류장

 

여학생도 달린다

 

다 같이

 

응원하다가

 

승차하자 박장대소

 

 

해감

 

 

그물망에 글려 온 한 무리의 피홍합

싱크대 물밑에서 움찔움찔 숨죽이다

 

앙다문 입술 사이로

커져가는 신음소리

 

조금식 벌린 입술 기밀을 뱉어놓고

고문 끝에 불어버린 동지들이 아픈 곳

 

검푸른 등을 부비며

숨죽여 우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