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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은주
충남 당진 출생
2013년 <시조시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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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연애
너에게 너무 쉽게 웃음을 또 흘렸다
아이의 울음처럼 애견의 재롱처럼
내 안의 어떤 여자가 허락 없이 나왔다
존재의 가벼움은 불가피한 태도일까
노견老犬처럼 비루해져 꼬리를 잘았지만
내 안의 다른 여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찔레꽃
행여나 업어줄까
내리막에 늦춘 걸음
저만치 뒷모습이
수풀속에 사라졌다
실개울
건너는 순간
확 찔렸다
너에게
심장으로 주세요
서툴게 뭉쳐져서 쉽게 녹는 첫눈 같이
우리도 사라지면 용서를 받게 될까
잡았던 손을 놓친 게 네 탓만 같았는데
어둠이 쌓여가는 늦저녁 포장마차
순대 썰던 주인 왈 내장도 드릴가요
뜨끈한 심장 있나요 심장으로 주세요
지나간 사람들은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쳐서 못 본 사이 지나쳐서 멀어진 사이
몇 번째 검은 밤일까 긴 겨울이 앞에 있다
늦은 밤
자정도 훌쩍 넘겨 비틀비틀 들어와선
조각내기 싫은 잠을 이어가는 귓전에다
이쁜아
날 버리지 마
당신없인
못 산다
술주정 조금 빌려 사랑가를 토해낸다
주무셔 걱정 말고 나이가 오십인데
참말로
갈 데도 없는
너무 늦은
밤이다
모른다고 말했다
곱창이 지글대는 송년회 막바지에
안하던 질문들을 서로에게 던졌는데
우리는 행복하다고
웃으면서 답했다
술잔을 더 채우다 비스듬히 앉았고
어쩌다 본 남편 눈은 저 여자를 향해 있다
곱창이 불판 위에서
시커멓게 뒤틀렸다
잡으면 사라지는 연기 같은 행복을
곱창을 뒤집으며 속으로 뒤집었다
누군가 또 물었을 때
안심대출
한밤중 돌아누운 그의 등은 말이 없다
어둠은 우리 사이로 수복이 쌓여간다
허락 없이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와서
이십 년 상환제로 대출을 신청했다
산만큼 더 살기로 한 무언의 약속이다
나는 그를 담보로 안심을 원했으나
저금리 그물망에 빚만 내고 말았다
서둘러 계절은 가고 다른 계절이 왔다
능소화
대문간 삽살개도
잠이 든 여름 한낮
바짝 독이 올라
담장을 타고 오른
백마리
붉은 혓바닥
태양도 멈춰 섰다
중고서점
때 절은 좁은 골목 미닫이 문을 열자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한 이야기들
지나간 유행가처럼 귀퉁이가 닳았다
성경처럼 끼고 잤던 신성한 성문영어
출퇴근 졸고 넘던 대장정의 태백산맥
그 많던 푸른 앨범들 여기 다 있었구나
침 묻은 순간들을 한 장씩 넘기다가
얼마나 더 묵으면 골동품이 되는지
골똘히 구석에 앉아 희귀본을 뒤져 본다
벚꽃
19번 버스가
꽃길을 오고 있다
백 미터 앞 정류장
여학생도 달린다
다 같이
응원하다가
승차하자 박장대소
해감
그물망에 글려 온 한 무리의 피홍합
싱크대 물밑에서 움찔움찔 숨죽이다
앙다문 입술 사이로
커져가는 신음소리
조금식 벌린 입술 기밀을 뱉어놓고
고문 끝에 불어버린 동지들이 아픈 곳
검푸른 등을 부비며
숨죽여 우는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