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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본명 김정자
경북 안동 출생
2004년 <현재시조> 등단
시조집 <맨발로 온 여름>
을숙도 문학상 우수상, 현재시조 작품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부산문인협회 이사
부사시조시인협회 부회장, 나래시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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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 일기
사나흘 면발 뽑던 저 굵은 빗줄기들
허기진 산과 들을 배불리 먹여놓고
그 온갖 잡동사니를 몽땅 끌고 냐려왔다
하구도 배부른지 꺽 하고 트림한다
모처럼 먼 길 날아 다시 찾은 진홍가슴 새
여기가 어딘가 싶어 고개 절래 흔든다
물 아래 고기들이 숨 막혀 배 뒤집는
적자처럼 밀려와서 야적된 강의 침묵
흐르는 시간의 틈새 다릿발을 놇는다
장미꽃 엄마
장미꽃 넌출 넌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텅 빈 집 누가 올까
가시로 울을 치고
뜰 안을
넘보던 햇빛
숨죽이는 한낮에
한때는 울 엄마도
불꽃 같은 장미였다
한 잎 한 잎 눈부셨던
빨간 루주 꽃잎 입술
바람이
다 훔쳐가고
휘인 등뼈 가시만
민달팽이
비 오면 그냥 젖어 집세도 걱정 없다
떠도는 숱한 소문 안테나로 걸러 가며
쉼 없이 은빛 길 내며 또 하루를 건넌다
초고층 아파트 해무 위에 둥실 떠 있는
제 몸 보다 더 큰 껍질 지고 있는 달팽이들
자정이 가까웠는데 문은 굳게 닫혀있다
지고 갈 그 무엇도 남길 것 없는 한 생
선물로 받은 하루 오체투지 하다 보면
저녁놀 자리를 편다 갓등 켜준 달이 밝다
문자 실루엣
"엄마, 여기 추워
나 집에 가고 싶어"
물속에서 썼음직한
또렷한 문자 한 줄
핸드폰 화면속에서
너는 아직 웃는데
문득 현관 쪽에
초인종이 울리리라
대낮에도 불을 켜는
다도해 섬들처럼
실루엣 엄마 액정은
마를 날이 없구나
창을 열다
꼭 닫힌 창을 열고
맑은 공기 모십니다
먹구름도 눈이 있어
저만치 물러납니다
스스로 닫은 가슴도 활짝 열어 봅니다
천근의 무게로
짓눌러온 응어리를
두 팔 벌려 살포시
창공에다 펼칩니다
내 속에 가둔 바늘을 죄다 풀고 싶습니다
가을 을숙도
머릿수건 벗어든 물억새를 배경으로
빗살무늬토기 빚던 철새 떼 저 춤사위
무대를 내준 갯벌이 놀 조명에 환하다
3막이 채 끝나기 전 자리 편 일몰 앞에
꽁지로 담묵 찍어 하늘에 시를 쓴다
산등성 돋아난 반달 글 말미에 낙관 찍고
먼 길 돌아돌아 뒤채던 물줄기도
다다른 하구에서 지친몸 푸는 시간
빗장 연 어머니 자궁 따뜻하게 감싼다
태풍 차바
마닐라 해상에서 잠을 깬 거대 수룡水龍
부라린 눈알 굴리며 뭍으로 달려와서
순식간 발톱 세우며 도시를 점령했다
흙탕물 상가 곳곳 수족관 되어갔고
강에서 떠내려 와 숨 막혀 튀는 붕어
급류에 저지대 차들 래프팅을 하는 듯
시침 뚝 떼고 나온 청자빛 고운 하늘
영화 같은 장면들은 초록별 경고인듯
끝없는 인간의 욕망 내려놓고 살라는
홍매
벌떼로 귀에 붕붕
을어대는 만세 소리
먼 산 터지도록
주리 트는 싸락눈에
찍힌다,
붉은 저 인장
함묵하는 백지장 위
을숙도 일몰
철새 떼 일가족이
저녁상 차려낸다
갈대를 꺽어다가
수저 몇 벌 올려놓고
저녁놀
꽃자리 편다
숭늉처럼 따습다
가을을 끓이다
내 마음 불어가는 스산한 이런 날엔
들꽃 향기 꺾어와서 찻물을 끓입니다
아직도 못 잊은 사람 생각 한 술 보탭니다
습기 찬 사유들은 가을볕에 널어두고
돌쩌귀 환하도록 덮은 시집 펼쳐가면
어느새 귀뚜리 소리 가을을 읽습니다
들녘 끝 누군가가 저벅저벅 옵니다
하루 일 마감하는 머리 숙인 일몰 앞에
따뜻한 찻잔 받들어 그대에게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