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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김정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7.11.28 15:2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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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본명 김정자

경북 안동 출생

2004년 <현재시조> 등단

시조집 <맨발로 온 여름>

을숙도 문학상 우수상, 현재시조 작품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부산문인협회 이사

부사시조시인협회 부회장, 나래시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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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 일기




사나흘 면발 뽑던 저 굵은 빗줄기들

허기진 산과 들을 배불리 먹여놓고

그 온갖 잡동사니를 몽땅 끌고 냐려왔다


하구도 배부른지 꺽 하고 트림한다

모처럼 먼 길 날아 다시 찾은 진홍가슴 새

여기가 어딘가 싶어 고개 절래 흔든다


물 아래 고기들이 숨 막혀 배 뒤집는

적자처럼 밀려와서 야적된 강의 침묵

흐르는 시간의 틈새 다릿발을 놇는다




장미꽃 엄마




장미꽃 넌출 넌출

고개를 내밀고 있다


텅 빈 집 누가 올까

가시로 울을 치고


뜰 안을

넘보던 햇빛

숨죽이는 한낮에


한때는 울 엄마도

불꽃 같은 장미였다


한 잎 한 잎 눈부셨던

빨간 루주 꽃잎 입술


바람이

다 훔쳐가고

휘인 등뼈 가시만




민달팽이




비 오면 그냥 젖어 집세도 걱정 없다

떠도는 숱한 소문 안테나로 걸러 가며

쉼 없이 은빛 길 내며 또 하루를 건넌다


초고층 아파트 해무 위에 둥실 떠 있는

제 몸 보다 더 큰 껍질 지고 있는 달팽이들

자정이 가까웠는데 문은 굳게 닫혀있다


지고 갈 그 무엇도 남길 것 없는 한 생

선물로 받은 하루 오체투지 하다 보면

저녁놀 자리를 편다 갓등 켜준 달이 밝다




문자 실루엣




"엄마, 여기 추워

나 집에 가고 싶어"


물속에서 썼음직한

또렷한 문자 한 줄


핸드폰 화면속에서

너는 아직 웃는데


문득 현관 쪽에

초인종이 울리리라


대낮에도 불을 켜는

다도해 섬들처럼


실루엣 엄마 액정은

마를 날이 없구나




창을 열다




꼭 닫힌 창을 열고

맑은 공기 모십니다


먹구름도 눈이 있어

저만치 물러납니다


스스로 닫은 가슴도 활짝 열어 봅니다


천근의 무게로

짓눌러온 응어리를


두 팔 벌려 살포시

창공에다 펼칩니다


내 속에 가둔 바늘을 죄다 풀고 싶습니다




가을 을숙도




머릿수건 벗어든 물억새를 배경으로

빗살무늬토기 빚던 철새 떼 저 춤사위

무대를 내준 갯벌이 놀 조명에 환하다


3막이 채 끝나기 전 자리 편 일몰 앞에

꽁지로 담묵 찍어 하늘에 시를 쓴다

산등성 돋아난 반달 글 말미에 낙관 찍고


먼 길 돌아돌아 뒤채던 물줄기도

다다른 하구에서 지친몸 푸는 시간

빗장 연 어머니 자궁 따뜻하게 감싼다




태풍 차바




마닐라 해상에서 잠을 깬 거대 수룡水龍

부라린 눈알 굴리며 뭍으로 달려와서

순식간 발톱 세우며 도시를 점령했다


흙탕물 상가 곳곳 수족관 되어갔고

강에서 떠내려 와 숨 막혀 튀는 붕어

급류에 저지대 차들 래프팅을 하는 듯


시침 뚝 떼고 나온 청자빛 고운 하늘

영화 같은 장면들은 초록별 경고인듯

끝없는 인간의 욕망 내려놓고 살라는






홍매




벌떼로 귀에 붕붕

을어대는 만세 소리


먼 산 터지도록

주리 트는 싸락눈에


찍힌다,

붉은 저 인장

함묵하는 백지장 위




을숙도 일몰




철새 떼 일가족이

저녁상 차려낸다


갈대를 꺽어다가

수저 몇 벌 올려놓고


저녁놀

꽃자리 편다

숭늉처럼 따습다




가을을 끓이다






내 마음 불어가는 스산한 이런 날엔

들꽃 향기 꺾어와서 찻물을 끓입니다

아직도 못 잊은 사람 생각 한 술 보탭니다


습기 찬 사유들은 가을볕에 널어두고

돌쩌귀 환하도록 덮은 시집 펼쳐가면

어느새 귀뚜리 소리 가을을 읽습니다


들녘 끝 누군가가 저벅저벅 옵니다

하루 일 마감하는 머리 숙인 일몰 앞에

따뜻한 찻잔 받들어 그대에게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