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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서연정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7.12.05 14:26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300


서연정.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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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정

광주 출생

중앙일보 지상액일장과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

작품집 <먼 길>, <문과 벽의 시간들>, <무엇이 들어있을까> 등 다수

대산창작기금, 우송문학상, 무등시조문학상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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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하나 나 하나

 

 

 

형상이 화려한가 향낭이 있길 한가

비바람 아픈 매질 온몸에 받는 바위

생식生殖의 방법이라곤 깨어져 뒹구는 것

 

피 맺힌 속울음은 꽃문양을 새긴다

가슴을 깨는 소리 귀 시린 노래일까

바닷가 몽돌밭 가득 꽃내 살내 비리다

 

슬쩍 슬쩍 지나친 모서리 골목에서

반만 뜬 눈 반만 연 귀 서로가 낯선 우리

그 모습 비로소 예서

말문을 둥글리고 있다

 

 

 

마라도

 

 

 

별을 쥐고 찾아가는

내 꿈의 최남단

 

파도를 놓아기르는

바람이 주인인 곳

 

번번이

초행길처럼

 

그리워서

멀어라

 

 

 

오늘의 무게

 

 

 

가시 감옥을 뜷고 알밤이 쏙 빠지네

 

잘 익은 봄여름가을겨울 열개 백개 구었네

 

나무가 비축한 생을 넘겨받은 가을날

 

그냥 가는 세월 그냥 사는 듯해도

 

열매는 응축하고 낙엽은 함축하네

 

날마다 생명을 바쳐 육중한 오늘 하루

 

 

 

거꾸로 읽는 시

 

 

 

빚어 숨 불어넣고 뜨거운 펜 놓았겠지

 

뒤에서부터 한 행씩 더듬어 올라간다

 

깊은 산 시의 탯자리 분화구를 찾아서

 

도착이 출발인 길 정상頂上은 원점이다

 

씨앗 속 꽃잎 같은 휘파람을 물고서

 

아름찬 벼랑을 날아 발자국을 지운 새

 

 

 

무등산

 

 

 

어머니 셈범으로 영을 만들어준다

아무려나 그럴까, 민지 못하겠거든

때 묻은 시시비비를 올려놓아 보아라

 

찾아가 불안거나 멀리 바라보거나

푸른 손수건으로 흐린 눈을 닦아준다

묵묵히 늘 그곳에서, 아심찮게 무등산

 

 

 

의열사를 찾아서

 

 

 

임진년 먼먼 이름 봄가을로 불러내

열렬히 공경했을 사당 마을 벽진동

천리향 담청색 향기에 빈집은 몸을 허무네

 

큰기침 끊어진 곳 넝쿨이 기어들어

외삼문 내삼문을 기세 몰아 두리기둥을

곱걸며 다시 곱걸며 폐허를 짜고 있네

 

종아리 걷은 대숲을 바람이 치는 소리

매운 뜻이 저물면 사라지는 별나라

헤매고 다니지 마라 의열사를 찾아서

 

 

* 의열사는 회재 박광옥, 충무공 김덕령, 김덕홍 등을 배향한 사당으로 서구 벽진동에 있었다. 지금은 폐허이다.

 

 

 

 

 

등나무의 혀들이 공중에서 흔들거린다

끈적거리는 접속에 비틀거리는 뒷걸음질

줄기판 그 혀의 덩굴을 싹둑 자른 붓이 있다

 

어둠을 떨쳐입고 춤추는 불꽃

넋 놓은 정수리에 쏟아진즌 얼음물

세월의 동록銅綠을 벗고 말씀이 걸어나온다

 

삼동 건너 필연코 봄에 닿겠노라고

칼날 앞에 목 내놓고 피로 썼을 상소문

한 시대 우둔히 살았으되 시공 너머 삶을 산다

 

 

 

몸의 현상학

 

 

 

편두통 시작되고 머리가 생각나요

마비된 다리에서 다리가 만들어져요

아픔을 생성하는 곳

잊었던 몸의 실체

 

미행을 들으면서 미행을 따돌리는데

추행을 읽으면서 추행을 씻어내는데

때 없이 시리고 저린 세상의 팔다리들

 

눈부신 유리성채城砦 바람벽에 붙어서

새들아 눈감아라, 번쩍이고 싶던 맘

통증이 재조립하는

몸을 고대 만나요

 

 

 

식욕

 

 

 

체중을 줄이려는 땀투성이들 속에서도

 

삶이 비밀이라면 다 먹고야 말겠다는 듯

 

현실은 뚱뚱해진다

가상으로

증강으로

 

 

 

블랙박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화면에서

당나귀처럼 벌름거리거나 암소처럼 쌔근거리네

난 이미 까맣게 잊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농담에 팔려다녀도 송곳니에 물린 듯

그 뇌리 나의 모습 빼앗아 올 수가 없네

곳곳에 신을 모시네 처분만 기다리네

 

 

 

풀꽃 은유

 

 

 

비바람이 그친 콘트리트 길섶에

 

무명으로 익명으로 잉여로 불리던 풀

 

투명한 서러움 활짝

 

꽃피우고 있다

 

몸 하나가 전부인 가난한 풀의

 

경배밖에 모르는 해맑은 미소

 

생명의 프리즘 속에서

 

삶은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