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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이석구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7.11.16 23:34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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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구

충남 청양 출생

2004년 <월간문학> 신인상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에 당선

시집 <커다란 잎>

21세기 시조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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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등點燈

 

 

 

소리를 막으면 빛이 새어 나오지요

 

휴대폰을 검색하며

 

문자판 꾹꾹 눌러

 

어둔 밤 실시간으로 촛불을 전송해요

 

모두가 오늘 밤을 마감하는 함성으로

 

불이 나서 빛이나서

 

출렁이는 광장에서

 

불꽃들 타오른 만큼 꺼질 때도 환하죠

 

 

나의 집 2

 

 

내가 나를 찾아야 할 원주시내 중앙시장

목소리가 사라지고 안 보이는 엄마는

길 가다 손을 놓았을까 손을 잡다 놓쳤을까

 

파란 눈의 부부가 나를 품고 데려간 뒤

창고 속 미아가 돼 유령으로 남은 서류

두텁게 쌓인 먼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붓꽃

 

 

파르르 떠는 꽃대

배회하는 유령幽靈이다

 

누구도

아무 누구도

그림자가 안 보였다

 

밤길을 미행한 꽃잎

보랏빛의 저 둘레

 

 

 

홍시

 

 

붉히다 붉혔다가

참 많이 그리운 날들

 

하늘로 올라간 새

흔적 없이 사라지자

 

마음만

깊은 생각에

내 몸 이리

무겁다.

 

 

복사꽃 만개滿開

 

 

띄엄띄엄 읽어가는 베트남댁 한글처럼

가늘게 실눈 뜨고 꽃망울이 돋고 있다

물오른

투명한 가지

색을 놓고 피고 있다

 

담 너머 사방 십 리

봄빛을 몰아쉬고

햇살 아래 톡톡 터진

복사꽃 더듬으며

꽃잎을 덧칠한 구름

밑그림이 발갛다

 

 

제주 동백

 

 

해삼 멍게 소라를 판

해녀 할머니가

 

바다 가장자리

갯바위 등에 지고

 

외손녀

속눈썹 닮은

동백꽃만

바라본다

 

 

소원 1

 

 

잘 난것 하나 없는 저게 내 아들이야

앞뒤 꽉 막힌 것이 밴댕이 소갈머리

세상에 어떤 계집이 저놈에게 시집올지

 

몽달귀신으로 늙어 죽을까 봐 걱정인데

며칠 여행 간다더니 베트남 여자하고 왔네

내 맘에 드는게 문젠가 지들 둘이 살면 되지

 

근데 고게 야무져서 보기보다 괜찮은데

손짓 발짓 눈짓 보며 말할 때가 답답은 해

그래도 아들딸 셋을 낳았으면 좋겠어 

 

 

산촌山村

 

 

이팝나무 가지에서

꽃 피는 보름 내내

 

보름달 비치면서

부풀어 오른 저녁

 

밥상에

얹힌 꽃잎들

둥둥 흘러

떠다녔다

 

 

 

산 위에서

 

 

내 밟힌 그림자도 살이 찌는 이 가을에

기러기 눈물 같은 낮달 하나 떠오르면

골짜기 깊은 안개가

능선 위로 넘어가고

 

열매를 뜸 들이며 허물 깁는 하늘빛이

무지개 얹어두고 넘쳐오를 것이지만

메아리 경계로 두른

연봉들이 부침하다

 

마음만 헤아리면 궁색한 가난인데

바람이 먼저 물든 단풍으로 불을 댕겨

신혼의 아내는 지금

꽃씨 봉지 접는다

 

 

마량리 동백

 

 

길이 아닌 곳에서만 가는 길이 보인다고

외발 수레바퀴 끌고 오는 눈발 따라

그림자 뒷걸음치며 마른풀을 밟는다

 

여기 아무도 모른 낯선 세상에 내가 있듯

악보에는 없는 음표 호흡을 조절하며

얼음장 빗금 친 파도 겨울 바다를 건넌다

 

앞선 사람 대신 좁혀오는 바람처럼

지상의 문을 여는 미지의 열쇠 구멍 속에

발자국 찍힌 눈꽃이 꽃망울을 터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