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냉이 / 라면 먹는 남자 / 양파 생각 / 공 / 겨울비 / 꾀꼬리 / 빨래판 / 복숭아 탐하다 /
바람개비 / 귀뚜라미 / 거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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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혀 같은 새순 나와
톱니가 되기까지
한 생을 엎드린 채
푸른 별을 동경 했다
서릿발
밀어올리는
조선의 저 무명치마
라면 먹는 남자
새벽별 보는 사내 인력시장 찾는다
막노동 삼십년에 이력이 날만한데
늘어난 이자만큼이나 졸아든 어깻죽지
팍팍한 건설 현장 새파란 감독앞에
헛딛지 않으려고 버팅기는 두 다리로
댕초를 화끈하게 푼
콧물까지 들이켠다
알바를 끝낸 자정 꼬불꼬불 끓인 속을
맵짠 생 후후불며 희망 몇 올 건지려다
면발에 구르는 눈물 고명으로 얹는다
양파 생각
함부로 벗기지 마라, 최루성 속내린다
동심원 펴져가듯 그리움에 닿기 위해
한겨울 땅속에서도 달달한 향 지켰으니
화농을 도려낸 날[刀]하나 내게 없고
성냥불 확 댕겨 타오를 눈빛도 없어
살 속에 살을 감추어 매운 눈물 담았으니
공
지하철 계단에서 동그랗게 몸을 말고
동전을 기다리는 두 손이 얼어 있다
치솟는 빌딩에 가려 빛을 본 지 오래인듯
하이힐 찍는 소리 서둘러 멀어진다
단속반 툭 건드리자 통째로 구르는
오늘을 그리는 촉수 화석으로 멎는다
겨울비
부르르 몸을 떠는 노숙의 젖은 어깨
온천천 벤치에서 밀린 기도 하고 있다
한사코 매달리는 천식 뿌리치지 못하고
가솔도 아랫목도 묻어둔 가슴 한 켠
숭숭뜷린 구멍마다 파고드는 숨비소리
시치미 딱 떼고 가는 애완견의 옷이 곱다
갈 길 놓친 왜가리의 구불텅한 목덜미
지루한 목숨 하나 버짐처럼 붙어있다
외발로 버티는 하루 빌딩 숲이 기운다
꾀꼬리
호륵 호륵
호로리요우
숲속의 초록 방언
분수가 솟구치듯
실로폰을 딛고 간다
온 산이
가슴을 푸는
탱탱한
오월 한낮
빨래판
브라와 청바지가 뒤엉켜 돌아간다
젖은 숫자 눌러놓고 하프를 켜는 여자
금간 손 엇박을 치며 빨래판을 긁는다
절은 때 씻는 하루 비벼대는 요철 속을
부르튼 물집들이 시나브로 터지는 밤
오그린 발칫잠에도 꿈속 길을 달린다
갸르릉 밭은 소리 리듬을 타다보면
헐거운 솔기 사이 얼핏 뵈는 푸른 하늘
옥탑방 바지랑대 세워
맑은 햇살 당긴다
복숭아 탐하다
제 멋대로 자라나도 때 되면 연지 찍는다
엉덩이와 엉덩이가 춘화를 그리는데
노린재 더듬어간다
발칙한 더듬이
도화살 뻩쳤는가 단내 폴폴 풍겨댄다
풋고추 약으로는 칠월 땡볕 열기 속
풍뎅이 헉헉거린다
속살을 파고든다
바람개비
바람을 마주하는
그것은 숙명이다
모두 앚아있어도
일어나 가야하는
연어의
시간을 보라
모천 찾아
떠나는
귀뚜라미
울음낭 터트리고
나 대신 누가 우는가
가을을 끌어안고
밤새워 누가 우는가
그믐달
새벽이슬 밟으며
한 사람을 보낸다
거울
좌우가 바뀐 채로
거울 속서 누가 본다
똑바로 보려거든 그대를 뒤집어라
한 번쯤 뒤집고 보면 가는 길이 보이리
영문글자 자리 바꿔
달려오는 앰불런스
앞차의 백미러엔 생명길 뜷고 있다
꽉 막힌 내 안을 본다
거울 하나 찾는다
김덕남
경북 경주 출생, 공무원문예대전 시조 입상, 2010년 부산시조 신인상 수상, 시조집 젖꽃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