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
개살구/ 연탄/ 오늘은 금요일/ 귀농일기/ 누구 없소/ 달은 지다/ 고등어/ 산딸기/
선인장/ 붉은 청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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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살구
잎 먼저 꽃이 피는 칠삭둥이 개살구야
피어봤자 눈시울 젖지 익어봤자 개꿈만 꾸지
쓰다 만 이력서 뒤에 발목 부은 여름만 가지
연탄
누구든 내 앞에서 소신공양을 말하지 마라
이 몸 안과 밖이 시커멓게 생겨 먹어도
법명은 구공탄 2호
육십년 청춘이다
옥봉동 오르막길 그 육십을 오르내리며
전쟁과 혁명을 묻고
진보와 보수를 거쳐
아랫목 절절 끓여서 핏덩이도 키웠다
외풍이 들며 나며 윗목에서 자고 가던
바람은 알고 있느냐, 비운의 이 통사를
힘없는 오줌발 보면
울음이 탄다 울음난 다 탄다
오늘은 금요일
돌솥밥 간장게장 아구찜 삼결살도
목을 삐죽 내밀다가 서로 눈 마주치다가
한숨만 푹푹 쉬다가 졸다가 시어터지다가
규제는 다 풀리고 바닥을 쳤다는데
돈이란 적혈구라서 그게 붉어야 산다는데
오늘은 금요일인데 비는 왜 구시렁대나
가마솥 설렁탕은 씨펄씨펄 혼자 끓다
저 혼자 열 받다가 벌컥벌컥 넘치다가
소주만 병나발 불며 울컥울컥 우는 밤
귀농일기
고구마 순이 뻗어 불알이 탱탱 여물고
알 하나 태어나서 암탉이 되기까지
하늘은 보름달을 보내 여섯 번의 점고를 한다
유정란 한 꾸러미 이천 원을 손에 쥐고
미쳤지, 내가 미쳤어, 명치에 붓는 막걸리
그래도 땅심만 믿고 비탈마다 심는 내일
한밤중 횟대 위에 수탉놈 신방을 차려
칠거지악 불문율을 경으로 가르칠 때
하품을 한 입 베어 물고 영농일지를 적는다
누구 없소
버럭질
땅 밑에서
단말마로 외치는 소리
거기 누구 없소
여기 사람이 있소
희망을 버리는 것이
희망이 된
하루
달은 지다
빗돌에 새긴다고 다 청사는 아니리
보리는 오늘도 자라 황산벌에 푸르러도
패검에 푸른 녹 슬면 자루부터 썩는 것
울어라 수막새 한 점 소리 내어 울어라
계백은 쓰러져도 그 피는 땅에 스미어
아직도 흙이 못 되어 두 눈 뜨고 있었느냐
고등어
대안동 새벽시장 단두대에 올랐다
댕겅, 목을 쳐다오 소금을 뿌려다오
한때는 등푸른 꿈이 동해를 출렁였지
얼마냐 묻지 마라 주인 없는 몸이다
퍼렇게 눈을 떠도 반 토막 난 세상에
혓바닥 다 헤진 놈이 무슨 이름을 값하겠나
어차피 한물간 몸 값이면 떨릴까 몰라
참고 또 참아온 한기 참을 수밖에 없는
죽음은 살고 싶은 것, 버티어 살아남는것
산딸기
아무도
손 안 탄 거
니한테만 줄라꼬
니보다
더 붉은 거
니한테만 보일라꼬
그 붉던
그적 거짓말
아직도 붉은 거짓말
선인장
창문과 빛과 바람이 차단된 어둠에
저 먼 길 더 먼 고향
잊기 위해 잊지 못해
돌아갈 길을 막았다
모루뼈도 걸어 감갔다
한 평 반 지하쪽방엔
외로움도 누울 수 없다
끝까지 끝은 아직 보이지 않고
온몸에 가시를 세워
관념의 살을 뺀다
컵라면 삼각김밤
내생의 반려자들과
한 모금 남은 벌로 목숨을 떠받치고
잊어라
노여워마라
죽음도 마중하라
붉은 청바지
흐리고 우울한 날엔 청바지를 입어라
낡아도 질긴 근성 청춘보다 더 푸르러
두 손을 호주머니에 푹, 찌르니 참 붉다
너 헤진 자국마다 상처가 스쳐가고
불꽃이 밤을 태워 하얗게 새벽이 와도
슬픔은 아름다웠다 고뇌도 희망이었다
가난과 이별과 실패의 마른 눈물
아플 것 하나도 없다 아직도 붉은 청춘 너
옹이는 오래 굳어야 맨발로도 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