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례========================
인忍-파자破字/ 파자破字 11 -죄罪/ 지문 열쇠/ 독거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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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忍
-파자破字
분노도 갈무리면 밤하늘 별이 된다
나비가 꽃을 그리듯 마음이 휘는 시간
달빛에 우려낸 눈물 무장을 해제했다
온몸에 고여 있던 욕망의 얼룩들은
뼈 속에서 우려낸 말
진국 같은 체온으로
벼려진 내 혀의 칼날 뜨겁게 끌어안고
<시조21 2014. 겨울호>
파자破字 11
-죄罪
나는 죄 많은 사람
눈물로 쓴 참회록엔
하루에도 몇 번씩 죄를 짓고 살았다
법망罒은 옳지 않은 일非 걸러내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지은 죄를 알고 있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이라 우기며
실실이 피어나는 꽃을 무잡하게 희롱하고
가벼운 혀끝으로 괴담怪談을 퍼뜨리며
풀잎 위에 이슬을 바람처럼 되작이다
비구름 몰려오는 날
야차夜叉가 되기도 했다
지문 열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심을 실감한다
아파트 출입문에 지문 열쇠 달렸는데
어머니 엄지손가락 문을 열지 못한다
아들 딸 젊은이는 쉽사리 열리는데
어머니 닮아 가는 아내의 지문까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새 아파트의 자동문
목메인 여든 세월 바지런한 성정으로
지워져서는 안 될 지문이 지워져도
‘내 삶은 지울 수 없니라’ 종요로이 웃으신다
독거 연습
섬에 와서 혼자 사는 법을 익힌다
밥하고 청소하고 넥타이를 고른다
아내는 수혈의 자양 뉫살처럼 흔들리고
어둡고 텅 빈 동굴 심지를 올려 봐도
숨쉬는 건 오래된 시계와 풍란 한 촉
나 홀로 살아가기엔 호흡이 너무 길다
때 절은 옷섶 위에 마른 땀 흘리면서
한 줄기 바람 따라 노숙하는 입덧마냥
그리운 이름을 헤며 윗도리를 벗어 건다
느리게 뛰는 맥박 내가 나를 의지한 채
골다공 낡은 관절 스스로를 증언하며
어느 날 주어진 독거 검불처럼 다독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