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외출/ 뜬소문/ 슬픔의 역사/ 지난봄의 왈츠/ 줄/ 오래된 선물/
하지/ 처서/ 희망/ 숲의 말/ 대화행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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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심심한 봉분 곁에 할미꽃 졸고 있다
먼 기억을 날아온
하얀 나비 한 마리
빙그르
꿈꾸는 날갯짓
몇 생이나 흘렀을까
뜬소문
삼 일 이상
아무도
너에게 관심 없어
세상이 흘린 말빚 왁자해도 다 지나가
가볍게 귀 비우는 아침
분리수거 된 상처
슬픔의 역사
기차는 떠났고 나는 여기 남겨졌다
세월이 허락한 망각은 쿨한 축복
웃을 수 없을 것만 같던 시간들은 흐르고
내 영혼의 무게는 점차 가벼워진다.
살 수 없을 것만 같던 나날들은 흐르고
더 이상 삶의 무게는 저울질하지 않는다
풍화된 시간은 어디로 가 쌓였을까
깊은 벽 담쟁이 긴 상처를 덮는다
아무도 기억 못하는 길목
기적은 다시 울리리
지난봄의 왈츠
쇼윈도 앞에서 눈길만 보내다가
아쉬워 돌아서면 도도한 너의 웃음
꿈에나 품에 안길까
삼삼히 감겨 오네
뭇 눈길 흘리던 요염한 다홍치마
꽃 한번 피고 지니 웃음도 순해졌나
어느 날 특가 세일 포즈도
가판대에 누웠네
줄
헷갈리는 환승역 또 줄을 잘못 선다
타기 전에 알아 그나마 다행이야
멋쩍어 방향을 바꾸며 피식 웃는다
살면서 줄 잘못 선 일 어디 한두 번일까
줄어들지 않는 줄, 코앞에서 끊어진 줄
때로는 줄 속의 줄도 되지 못해 기웃대고
무엇을 기다릴까 어디로 가는 걸까
왜 여기 서있지 가는 길 이뿐인가
오늘은 대열을 이탈한다
줄 되어 내가 간다
오래된 선물
보내지 않아도 봄날은 가버리고
화장 짙던 모란도 한때,
그만 별이 되는데
맹세코 잊은 적 없는 넌
잊혀져
무엇이 될까
꽃은 피고 지고 피고
눈물 떨군 꽃자리
아픈 열매 하나쯤 모른 체 지나가면
이 세상, 천치 같은 몸날
처음 온 듯 다시 온다
하지夏至
꽉 찬 높이 뜨겁다 길게 든 빛의 시간
다 가진 듯 한창이어도 차면 기울더라
보일까 하늘아래 바람
응달이 자란다
처서處暑
보고는 곧 잊어버릴 거리의 간판을 본다
닿을 곳
모르는
내 마음의 소설집
신호등 세월을 점멸하고
그 건널목
나
서있다
희망
목마른 가지에 벅찬 울음 비치나 보다
묵은 상처도 그만 연둣빛 눈짓이다
저것은 살아남은 자의 기쁨
가슴 울컥,
너 온다
숲의 말
사람이 사람인 건 간격間隔이 있어서야
참나무처럼 겨우살이처럼 향기 다른 홀씨처럼
너는 너, 나는 나 되어 가뿐하게 한데 살자
대화행 열차
안전선 안쪽일까, 바깥일까 지금 난
주황빛 꿈에 담긴 직립의 삶 오가네
믿어봐
비틀거려도 희망,
아직 달리고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