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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정수자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3.01 20:4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485

===========================차 례===========================================

 

장엄한 꽃밭/ 물비의 시간/ 꽃 유서/ 슬픈 고무신/ 너무이른 사람, 나혜석/ 붉은 저녁/ 환향

===============================================================================

 

 

장엄한 꽃밭

 

 

1

 

오체투지 아니면 무릎이 해지도록

한 마리 벌레로 신을 향해 가는 길

버리는 허울만큼씩 허공에 꽃이 핀다

 

그 뒤를 오래 걸어 무화된 바람의 발

雪山을 넘는 건 사라지는 것뿐인지

경계가 아득할수록 노을 꽃 장엄하다

 

2

 

저물 무렵 저자에도 장엄한 꽃이 핀다

집을 향해 포복하는 차들의 긴 행렬

저저이 강을 타넘는 누 떼인 양 뜨겁다

 

저리 힘껏 닫다 보면 경계가 꽃이건만

오래 두고 걸어도 못 닿은 집이 있어

또 하루 늪을 건넌다, 순례듯 踏靑이듯

 

 

 

물집의 시간

 

 

쓰라린 기억들이 집을 찾아 나섰네

상처의 길을 따라 자릴 잡고 앉더니

한 열흘 포진 할 듯

자위가 자못 붉네

 

그 속으로 물의 집이 가둬가는 시간과

그 밖으로 터질듯이 부푸는 대치 끝에

소소한 가려움조차 화인으로 남을지니

 

딱지란 견딘 만큼의 시간의 허여임을

흉터란 또 그 시간의 겸허한 봉인임을

 

이르듯

무슨 과일께로

고요히 드는

가을

    

 

꽃 유서

    

 

오늘도 십대의 유서가 조간으로 배달되고

검은 고딕 속에서 금수강산 금가는데

 

가슴을 퍽퍽 치면서도

우린 금세 외면해요

 

아픈 꽃의 투신 들고 심장이 도려진 채

차라리, 하다가도 그림자로 사는 이들

 

유서를 거듭거듭 읽으며

피 묻은 초를 켜요

 

혼자 떨다 뛰어내린 어린 아린 낙화 따라

어느 추운 영혼이 낙화를 또 예습할지

 

비명들, 가위눌린 꿈들,

손은 항상 늦어요

 

감히 받은 꽃자리를 저만의 목숨인 양

벼락으로 내던진 유서 앞의 유구무언

 

그래도 차마 말할래요

아파서 또 꽃이라고

 

 

슬픈 고무신

-어느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의

 

 

고무신이 벗겨진 채 소녀는 끌려갔네

 

부를수록 집은 멀고 총칼은 목에 닿고

 

악문 채 몸을 봉해도 군홧발에 녹아갔네

    

총을 물고 울었건만 목숨은 욕넘어

 

헐은 몸 닦고 닦아 옛집 앞에 섰건만

 

코 베인 고무신처럼 생이 자꾸 벗겨지네

 

 

 

 

너무 이른 사람, 나혜석

 

 

 

세상의 돌멩이쯤 콧등으로 받아치며

온몸을 붓 삼아서 생을 거듭 세웠지만

 

당신은 외로운 검객

이중의 아픈 식민지

 

가부장국 철옹성에 펜을 불끈 겨눌수록

쏠고 씹는 가십들이 문전에 쌓일수록

 

이마가 불타올랐다

손목이 뜨거웠다

 

결국은 애도 집도 다 앗긴 채 홀로 걸은

칼바람만 등을 치는 선각이란 진창길에

 

높아서 슬펐던 사람

그 눈이 아직 붉다

 

 

 

붉은 저녁

 

 

 

시방 나는 뜨겁다

슬픔을 분리하느라

 

뇌관을 움킨 채 불타는 관자놀이

    

그냥 확, 뽑을까 말까 

꽃시절이 그리 갔다

    

짤까 말까, 왕여드름

자폭을 어루만지던

 

화농의 봄날처럼 하늘을 올려보니

 

그이도 어쩔 줄 모르나

눈시울이 하냥 붉다

 

 

 

환향

 

속눈썹 좀 떨었으

세상은 내 편이었을까

 

울음으로 짝을 안은 귀뚜라미 명기鳴器거나 울음으로 국경을 넘던 흉노족의 명적鳴鏑이거나 울음으로 젖 물리던 에밀레종 명동鳴動이거나 울음으로 산을 옮기는 둔황의 그 비단 명사 鳴砂거나 아으 방짜의 방짜 울음 같은 구음口音 같은 맥놀이만 하염없이 아스라이 그리다가

 

다 늦어 방향을 수습하네

바람의 행간을 수선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