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북어/ 장마당 풍경/ 난중일기 1/ 유품
==================================================
북어
이달균
못에 찔려 잠드는 날들이 많아졌다
좌판 위 마른 북어의 정물처럼 차갑게 누워
가슴을 짓밟고 가는 구두소리를 듣는다
뚜벅뚜벅 그들처럼 바다에 닿고 싶다
아무렇게나 밀물에 언 살을 내맡겨 보면
맺혔던 실핏줄들이 하나 둘 깨어날까
내 꿈은 북(北)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고
하얗게 녹슨 생각들이 부서져 쌓이는 밤
뜨거운 피를 흘리며 깊은 잠에 들고 싶다
장마당 풍경
어느덧 해는 뉘엿
산 그림자 내려온다
마음 둔 청춘 남녀
스리슬쩍 다가서고
저만치 횃불 그림자
사람들은 너울너울
거, 앞에 키 큰 양반
고개 좀 숙여 보소
섬에 나고 섬에 자라
이런 구경 처음이오
막걸리 동이째 내온
객줏집 인심도 좋아
어디서 두런두런
쇠판 돈 털렸다네
먼 곳 악다구니
괭쇠 소리에 잦아들고
춤판은 무르익는데
돌아갈 집은 멀다
난중일기 1
- 통영 세병관에서 적조를 아룀.
대감, 그곳 소슬한 청죽바람은 여전하온지요? 전하께옵서 기우제 드린 소식은 접했으
나 이 남도 균열의 대지엔 미금만 풀썩입니다.
삼복염천을 나면서 이렇게 지필묵 놓고 글 올리는 이즈음이 매양 우울해서인지 한여름
고뿔이 찾아와 요 며칠 고생 중입니다.
문득 임진년 대승첩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왜적이라지만 떠오른 주검 앞에서 승전의
축하일배주는 허할 수 없나이다.
오늘 한산 바다는 동백이 지고도 한참, 다홍빛 저 붉음을 어찌 꽃답다 하겠습니까. 떠오
른 고기들의 울음이 놀빛인 양 서럽습니다.
두창 뒤에 따라온 검붉은 호열자처럼 창궐한 떼죽음을 어이 필설로 다하오리까. 이럴
땐 목민의 자리가 죄스러울 뿐입니다.
세월을 당겨서 은하도 가까워진 오늘, 저 붉은 뉫 살을 대적할 무기가 벽방산 무릎을 파
낸 한 줌 황토뿐이라니.
한 차례 태풍이라도 다녀가시면 모를까 의서에도 이 병의 처방이 묘연타 하니 이만큼
차오른 울화만 다독일 뿐입니다.
유품
유품은 더 이상 죽은 자의 것이 아니다
길바닥에 버려진 흙 묻은 개의 주검처럼
한 켤레 낡은 구두로 생애를 정의한다
떠도는 말씀은 여우비에 씻겨 가리라
아무도 마지막 종을 울리지 않았지만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 싸늘히 잊혀 진다
하지만 깊은 밤 촉 낮은 불을 밝히고
가슴으로 써내려간 한 권의 일기장
이보다 품격을 더한 유품이 어디 있으랴
남긴 것도 뿌린 것도 초라한 이름이지만
그는 청천하늘의 뇌성병력을 가졌고
애잔한 파도소리도 함께 가진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