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슬픈, 밥/ 꽃말을 엿듣다/ 수평선/ 안개/ 새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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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밥
1
무작정 상경하여
봉제공장 지하에서
밥줄인양 끌어안은
중고 미싱 돌려가며
파리한 만성 위장염
얼굴같이 뜬, 낮달
2
길 아닌 길을 내며
말을 끄는 늙은 마방
아찔한 곡예하듯
벼랑을 넘고 넘어
싸아한 생을 품으며
올려보는 그, 낮달
꽃말을 엿듣다
애써 외면했던 지난 겨울 혹한 속에
칼금긋듯 종적없이 무너지던 그 기억들
어둠에 길들여지고 눈물에 힘을 얻고.
언 땅을 줄탁하듯 기지개를 펴는 하루
허했던 가슴팍이 온기로 풋풋하다
하루가 천금이라고 진을 치는 봄볕 나절.
뉘 몰래 숨겼던 눈 살포시 뜨다 말다
이 꽃과 저 꽃 사이 심부름하는 바람
오가다 흘린 말들을 귀를 모아 듣는다.
수평선
너를 받쳐 물이 된 나
나를 안아 허공 된 너
오늘토록 멍이 들도록 바장이는 눈시울에
잡힐 듯
잡지 못한 손이
아득히 닿아 있다.
안개
생전에
울리고 싶던
소리공양 한 소절이
꺽이다가 치이다가
둘숨 한 숨 몰아 쉰다
물 번진
흑백 사진 같이
빛바랜
시간 같이.
새떼
허공에 집을 짓곤 허물던 여자들이
기억은 놓아버려도 가슴에 묻은 이름
그 어혈, 풀릴 때까지 시간을 되짚는다
평생을 달고 살던 무형의 족쇄였나
낯설은 그물에서 날개죽지 파닥이며
금침을 곳고 있는가, 잘 익은 고요 한 겹.
<정형시학 2016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