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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정해송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4.24 08:34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317

===============차 례===================

가을의 톱날/ 벚꽃/ 냉잇국 먹는 날에/ 응시/ 겨울 해운대/ 바람의 말/

기척/ 2월의 젓니/ 헬스를 하며/ 물의 말/ 고백/ 제철공장에 핀 장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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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톱날



가로수 잎맥들이 엷은 햇살에 시린 오후

친구는 우수를 띄워 술잔을 건네준다

목로에 그의 주식이 낙엽처럼 깔리던 날


하나 둘 점등되는 도회의 불빛들이

유리컵 해안으로 향수처럼 귀항할 때

무거운 계절을 끌며 전철 타고 헤어졌다


자정 근처 승강기는 하늘 가는 통로였나

톱날에 지는 몸을 받쳐주던 손 그림자

가을은 늑골 사이에 통증으로 깊어간다





벚꽃




7일 전국에 방사성 비 내린다


오늘 조간 제 일면에 톱기사로 뜬 표제


벚꽃은 열처럼 피어 남서풍에 파리하다





냉잇국 먹는 날에




들바람 끝자락엔 겨울 손톱 남아있다

아내는 철을 짚어 냉잇국 끓이는 아침

따스한 봄의 전령이 식탁 위에 오른다


가난한 우리 맘에 초록물 들이느라

하늘은 몸을 낮춰 손놀림이 바빠지고

삼동을 건넌 이 미열은 풋것으로 다스리자


누가 저 땅 속에서 징을 치고 있나보다

푸른 숨결, 푸른 말이 일어서는 신명 따라

풍작의 삶을 경작할 삽날 다시 벼린다





응시




못에 비친 하늘처럼 내 안에서 누가 본다

고요의 무게 속에 피고 지는 생각들을

없는 듯 그가 숨 쉬며 지켜보는 이 한때


잎 지는 소리를 듣고 있는 내가 있고

듣고 있는 나를 보는 이 뿌리는 무엇인가

계절도 걸음 멈춘 채 유리창에 타고 있다





겨울 해운대



마음이 시린 날은 외투 깃을 세우고

겨울바다 해안선을 악보인 양 끼고 가면

저 깊은 영혼이 뜯는 현의 소리 밀려온다


솔가지 높인 달이 날선 화두를 달굴 즈음

열두 물길 닫혀 있어 동백꽃은 더욱 붉고

숯덩이 타는 가슴이 물이랑을 불 지핀다


섭리를 따라 다스리는 묵언의 시간 앞에

매운 해풍을 견디며 성찰하는 겨울뼈여

영원은 소금기둥을 깎아 정밀 속에 받쳐 섰다





바람의 말




바람에 사운대는 잎새들은 무얼 듣나

어디서 불어와서 귀엣말로 전하기에

나무는 시방 귀를 다 열고 안테나로 서 있나


존재의 뿌릴 향해 저음으로 스며들어

소리는 소리를 불러 이랑처럼 번져나가

이 깊은 어둠을 가르는 천둥으로 울어라


밑동에서 우듬지로 영혼이 닿는 곳에

시간도 테도 없는 저 허공 숨결이여

만유를 세워 빗질하는

바람의 말을 투명하다





기척




한밤에 기침하면 어머니가 먼저 안다

잦으면 애가 쓰여 거실을 서성이고

사원이 보이는 쪽으로 두 손 모아 앉으시다


새벽을 일으키는 어머니의 묵상기도

영성의 맑은 피가 뇌혈관을 통해 오고

한 사발 따끈한 자애 잠긴 목이 풀렸으니


방에도 거실에도 어머니는 이제 없다

내가 기침해도 빈 여음만 쌓이는 집

창 너머 바랜 미소가 어둠 속에 상감된다


 


2월의 젖니




겨울과 봄 사이를 이른 비가 오고 있다

가로수 마른 팔에 링거처럼 스며들고

행인들 어깨 너머로 예감하는 그대 기척


그러나 정작 네 숨결은 잎눈 속에 갇혔는데

누가 먼저 이 소식을 속달로 보냈을까

젖먹이 빨간 입 속에 웃고 있는 새싹 두 잎!





헬스를 하며




그대가 그리운 날은

바벨을 들어올렸다


한껏 숨을 들이켜

네 생각을 뿜어내며


손에 든

당신의 중량을

가슴으로 밀어냈다


맷돌 밀던 삼손처럼

그렇게 또 그렇게


회한과 버팀 속에

눈 먼 날들 흘러가고


그리움

그 부피만큼

가슴살이 여물었다



물의 말




물은 어디서든 낮은 데로 흐르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높은 곳을 가고 있다

허공을 찌르는 대숲을 보라

물이 분명 위로 간다


흐르면서 거스르는 저 완강한 물의 저항

온몸으로 운기 세워 하늘까지 올라간다

순리와 역리를 한울에 엮는

물의 말은 둥그렇다





고백




방에 앉아

시 쓰는 일이

부끄러운 시절이다


은유며 상징이며

분칠 같은 기교들이


이 유월

녹색 깃발 아래

가화假花처럼 여겨진다





제철공장에 핀 장미는




제철공장 블록담은 가시줄로 관을 썼다

녹슨 시간들이 빗물에 녹아내려

핏자국 마른 상처로 얼룩지며 신음한다


관리층 미학자는 죽은 벽을 살리려고

담을 돌아가며 장미를 꺾어 심어

번지는 이상기류를 꽃을 피워 눅이렸다


화부의 분노같은 불길은 활활 솟고

주물공 타는 아픔이 쇳물로 끓을 때도

장미는 키가 자라고 연방 잎을 토해냈다


노사간이 등을 돌린 적막한 빈터에는

줄기마다 꽃망울이 울을 돌아 맺히더니

용광로 타던 불꽃을 옮겨 담아 피어난다





 

정해송 시인

경남 고성 출생. 197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1978년 <현대시학>으로 문단에 나옴

시조집『겨울 달빛 속에는』『제철공장에 핀 장미는』『안테나를 세우고』『응시』, 평론집『『우리시의 현주소』

성파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부산시조>편집주간

부산문인협회 부회장, 부산시조시인협회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