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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박권숙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2.10 13:10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217

=======================< 차 례>=======================

객토 1/ 門 2- 비녕자의 노을/ 아버지의 밭 1/ 남강에 와서/ 싹/ 물풀/ 청명날/ 풍경소리/ 

시월의 창/ 유리창/ 철쭉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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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토 1/

 

 

해묵은 목골 흙벽 젖은 살을 말린다

쇠꽂이 창살만큼씩 작아지는 가을 햇빛

나는 또 해빛만큼씩 작아지고 있었다

 

여름내 비워 두었던 고래에 불 들이며

미장된 가슴 속의 물기가 걷힌 자리

그득히 차오르리라 먹기와빛 바람 소리

 

연통을 빠져 나간 자욱한 슬픔들이

유릿가루 묻어 있는 밤하늘 별이 되듯이

축축한 우리 한 생에 젖은 살을 말린다.

 

 

門 1

- 비녕자의 노을

 

 

어두운 하늘을 향해 저문 문을 나서자

맨드라미 꽃술 같은 툭루 끝에 와 걸리는

저 낯선 감촉의 별은 언제 떠나왔을까

 

펄럭이며 돌아눕는 핏빛 쇠북 소리를

차생의 문 앞에다 깃대처럼 꽂아 놓고

선짓빛 물보라 되어 너도 부서지느냐

 

흔들리고 흔들려 온 깃발 같은 슬픔도

검은 흙 땅바닥에 맨몸으로 눕는 저기

결별의 노을 속으로 선뜻 문을 나서자

 

 

아버지의 밭 1

 

 

그곳은 언제나 초록빛 숲에 닿아 있다

달패이의 노란 등집 혹은 작은 자벌레의

투명한 행로만으로 무성한 눈물자국

 

소리와 빛의 고랑을 고루 헤쳐 보면 안다

흰 두건 쓴 앞산이 쇠호미를 잡으면

텃밭의 깊은 뿌리가 숲 속으로 기운다

 

비 그친 뒤 애야 보아라 흙은 자꾸 부풀고

부풀다 부풀다 봇해 연한 순을 터뜨린다

그곳은 보이지 않은 초록빛 숲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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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에 와서

 

 

인광의 비수처럽 깊어지는 저녁강에

관절 마디마디 양귀비꽃을 놓아주며

수주의 논개는 아직 팔을 풀지 않는다

 

새빨간 꽃잎에 갇힌 남강의 어둠들은

황금의 쌍가락지로 나를 묶어 놓은 채

열두 폭 스란치마의 물주름을 펴는 절벽

 

너 아직 거기 있느냐 무서운 꽃 한 송이

선홍의 물여울로 깊어지는 저력강에

버려도 아프지 않을 빛나는 이마를 하고

 

 

 

 

땅 속 깊은 잠자고 있던 종이

작은 솜털을 가진 어린 것들을 데리고

소리의 연한 근육을 뚫고 깨어났을 때

 

해 뜨는 곳에서 온 우리 아버지들이

부싯돌로 모닥불 같은 해를 지펴 올렸듯이

껍질의 둥근 천장을 밀어올리는 불시 있다

 

부드러운 흙에서 어둠이 차올라

빛 속으로 깨끗한 씨를 쏘아 보내고

갓 돋은 젖은 죽지의 주름을 펴 말린다

 

 

물풀

 

 

왕을 만났을 때 푸른 곡옥이 빛났다

아직도 안압지엔 승천 못한 눈빛들이

빛에 탄 그늘 쏟으며 잠겨 살고 있었다

 

울음소리 울음소리 울음소리 울음소리

울고 있는 것들은 나의 어린 씨일까

삼세를 돌아 흐르는 바람 속에 물 속에

 

받쳐 놓은 역광을 우르르 허물며

쓰러지는 물풀들은 은발을 나부꼈다

뿌리가 내렸던 곳이 어둠 속에 보인다

 

 

청명날

 

 

흰 빨래를 널어 놓고 목련꽃 송이 본다

불질없다 낮게 속삭여 보는 봄날

꽃가지 끝에 매달린 탐스러운 햇빛

 

흔들리는 것들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깊은 밝음으로 쓸쓸한 한낮

꽃은 또 웃으라 한다 빨래도 희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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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보이지 않는 것들을 향해 너는 넘어진다

저녁 풀숲을 헤치고 나온 달을 밀어내며

예리한 서술이 앉은 소리를 떨어뜨린다

 

낙하의 거리에 숨은 그대의 눈이 빛날 무렵

양철 쇠 지느러미에 닿는 고요의 거친 살결

하얗게 넘어진 채로 벗겨지고 있었다

 
 

시월의 창

 

 

창 밖에 빈 손으로 들판의 해를 빚는 나무

가을이 오고 있는가 나무이 눈이 젖는다

붉어서 선명히 굿는 제 핏줄을 자르며

 

마른 잎의 투명한 맥이 햇살을 쪼고 있다

쪼인 햇살의 마지막 파편 툭 툭 창을 흔들고

내 눈도 함께 젖는다 투명해진 몸이 아프다

 

 

유리창

 

그림자 없는 것들을 광장은 풀어주며

진눈깨비 속에 숨은 첫별을 만져 본다

아직도 남아 있을까 늦여름의 온기

 

어두어지는 몸들을 흰 안개로 감싸고

길 밖으로 조용히 흘러가는 활엽수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그리움의 입구

 

 

철쭉꽃

 

 

꽃잎 떨어지는 마당 가운데 어머니

이슬 같은 생애의 마지막 물기 보입니다

흥건히 젖은 목숨의 진한 향기에 취해

 

대금 소리 긴 바람 불어 슬픈 봄 태풍인데

은장도 날에 잘린 붉디붉은 혼백들은

핏자국 선연한 땅에 빗소리로 눕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꽃빛 고운 저승길

어머니 다음 세상엔 목숨의 낙화 없는

싸늘한 흙이 되어서 태어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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