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투명을 향하여/ 유자나무 집/ 그 섬에 그가 있었네/ 먼나무 숲으로/ 무적/ 5월 나비잠/ 설 수 있는 까닭/ 폭설 2/ 유자 나무의 말/ ======================================================================= 투명을 향하여
은행잎이 걸어간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은행잎이 야위어간다 유화에서 수채화로 제 갈 곳 아는 것들은 투명을 향해 간다 어머니 걸어가신다 검정에서 하양으로 어머니 날개 펴신다 소설에서 서정시로 먼 그곳 가까울수록 어머니는 가볍다
유자나무집
그 집엔 누가 살까 혹시 빈 집 아닐까 닫혀진 창문에는 꽃무늬 커튼 자락 샛노란 유자 등불만 둥글둥글 환한 집 이끼 낀 담장 위로 새벽을 깨우는 새 먼지 뿌연 창문마다 빗자욱만 선연한데 언제쯤 그 창 열릴까 둥근 마음 보일까 재개발 시작되면 골목도 사라지고 이 집도 유자나무도 떠내려가 버리겠지 나는 또 무얼 디디며 이 도시를 건널까 그 섬에 그가 있었네
그는 가 버렸지만 섬을 그를 보내지 않았다 온몸으로 껴안았던 오름의 어깨를 따라 두모악 너른 품속에 댕기머리 그가 있다 노을 속 억새 울리는 바람의 눈동자에 눈 내린 들판 위 그림이 된 나목 곁에 빛 어둠 찰나를 가르는 구름 속에 그가 있다 현무암 구멍마다 산수국향 머무는 곳 흩날리는 눈발 속 눈시울 붉은 동백으로 되살아 이어도가 된 김영갑이 웃고 있다 *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 원래는 한라산이라는 뜻 먼나무 숲으로 새벽녘 당신 얼굴은 빛나는 5월의 숲 숲 언저리 먼나무꽃 연보라 향 남실대고 그대를 숨 쉬고픈 나는 아주 멀리 있습니다 오련한 꿈길을 걸어 먼 학교에 갑니다 교실도 꿈속 같아 어항처럼 말이 없고 창너머 살구나무엔 새 한 마리 납니다 때때로 내 마음은 텅 빈 사막입니다 흔들리는 별빛 아래 적막을 마주한 날 도린곁 먼나무 숲을 새도록 걷겠습니다 무적 서럽게 등대가 운다 55초마다 5초 동안 오 천지 해무에 싸여 간절곶도 묻혀 버린 날 어둠 속 너를 향하여 목이 쉬는 하얀 짐승 해안선도 수평선도 허공으로 사라진 날 안개 뚫고 갈 수 있는 건, 오로지 소리 하나 부우~부, 여기에 나 있다 울부짖는 나팔수 5월 나비잠 엄마, 언덕 위에 오동꽃이 피었어요 보랏빛 환한 안개가 주변을 맴돌아요 며칠 전 붉은 눈자위 엄마 얼굴이 떠올라요 낮시간 병실에도 밤 11시 지하철에도 찔레꽃 하얀 얼굴로 찾아오는 당신이 있어 자꾸만 눈물이 나도 웃으면서 살래요 이 세상 모진 바람도 숨죽이며 잠이 드는 아직도 향기로운 모란꽃 엄마 품에서 잠깐만 나비잠 잘래요 속잎 살짝 덮어주세요
설 수 있는 까닭
멀대 같은 대나무가 설 수 있는 까닭은 곧아서도 단단해서도 그건 절대 아니다 뿌리들 땅속의 인연 놓지 않기 때문이다 일곡 여문 벼가 설 수 있는 까닭은 알차서도 결곡져서도 그건 더욱 아니다 한 포기 함께 해온 어깨 서로 겯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너와 내가 서 있을 수 있음은 힘, 능력 그 무엇 때문도 결코 아닐 것이다 때때로 서로 위해 흘린 눈물 그것 때문 아닐까
폭설 2 손사래쳐 가라 해도 끝없이 다가오고 아니야 말을 해도 쉼없이 입을 막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뚝 부러지는 늑골 하나 유자나무의 말 - 재개발 지역 풍경 7 허리가 꺾인 채로 겨울을 건너왔다 반쪽 물관으로 목숨줄 연명하며 낮달이 밤 기다리듯 그날만 기다리며 새들 함께 보듬었던 이웃들 다 떠나고 반짝이던 초록 소매 가위질 당한 오후 봄은 또 한참 와서는 목련을 터뜨리는데 은결든 생각으론 꽃 하나 피울 수 없다 저승꽃 피어나듯 가시만 돋아나고 차라리 눈을 감으면 꽃자리가 끈하다 -------------------------- 이옥진 시인 경남 통영 출생, 북제주 애월 하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냄 청주교대, 부산교육대학교 졸업, 부산 수영초등학교 교사 2004년 <부산시조>신인상으로 등단 부산시조시인협회 이사, <나래시조>기획위원, <어린이시조나라>부회장, <부산크리스천문학>사무국장 <시눈>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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