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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이승은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2.12 17:43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531

 ====================<차  례>=============================

전봇대/ 단추/ 고도를 기다리며/ 입춘대길/ 팥죽/ 꽃밥/ 나침반/ 겨울기차/ 고양이/ 나비/

고래, 찾다/ 첫 손질의 봄/ 동치미 국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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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봇대

 

  가로등이 환히 켜진 그 아래 기대서서 혹시나

하는 맘에 기다려본 이는 안다, 소슬히 그림자

세우고 저물어 가던 밤을

  어쩌다 막다른 길 그늘 폭도 넓어졌다 가파른

골목 어귀 전단을 덧붙이는 총총한 발걸음마다

내가 자꾸 걸리는 날

  마지막 버팀목인양 덕지덕지 붙은 꼴이, 그 위

에 더러 몇 장 희망으로 펄럭일 때 힘겹게 버틴

겨울이 버짐으로 피어있다


 

단추

 

 

  잠갔다 푸는 일이 풀고 다시 잠그는 일이 항다

반 널려있는 항다반의 일이라지만 문 밖을 나서

려 할 때면 느닷없는 이 긴장감,

 

  어쩌다 올이 뜯긴 단춧구멍 사이로 몸 건너 난

처함이 몸 안으로 안겨들 때 풀어진 실밤을 물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는,

 

고도를 기다리며

 

 


 

스멀대는 회갈색의 무대가 흔들린다

 

힘겹게 떠받친 듯 휘굽은 가지 사이로

조명도 구부러졌다, 수다만이 왁자한 채 

 

슬픔의 행로 위에 무명천을 깔아 논 듯

 

결코 떠나지 못하는 부랑의 사내드이

 

시간을 견딘다 하랴, 그냥 그쯤에 놓였다 하랴

 

그래, 모든 것은 기억의 농간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밤과 밤의 불연속선

 

풀리는 어제의 물레에 내일이 바투 감기고

 

계산된 우리 관계는 오늘의 말뚝에 묶여

 

가자, 가자, 하면서도 차마 떼지 못하는 발길

 

끝내는 만나지 못했다, "고도씨를 찾습니다!"


 

입춘대길立春大吉

 

 

양지쪽에 남아 붙은 추위마냥 인부 너덧

<도시가스 공사 중> 형광 띠를 둘러놓고

배달된 짬뽕그릇을 흙손으로 받쳐 든다

그들 곁에 쌓여있는 한 무더기 벌건 흙덩이

그 빛깔로 식은 국물 얼큰히 들이켠다

목젖에 엉기는 한기도 햇살 말아 넘긴다

으스스 몸이 풀리며 허기가 채워지자

보장된 일당만큼 부푸는 어깻죽지

봄이다, 선진조국의 크게 한 번 좋을 봄!

 

팥죽

 


 

홍시 빛 늦가을이 엷게 번지는 하오

 

광장시장 노점에 앉아 서넛이 먹는 팥죽

달그락 수저소리에 잔 그늘이 비껴간다

 

젊은 날 속 끓이듯 팥물도 끓었으리

 

이래저래 반을 놓치고 퍼져버린 쌀알 속에

헤아려 살아 갈 날들이 옹심이로 떠 있다

 

꽃밥

 


 

참꽃 떨어져서 흘러드는 잠수교 밑

 

떠도는 불빛들이 한사코 따라와서

 

강물이 너울거리며 꽃을 먹네, 늦저녁

 

손위에 손을 얹듯 포개지는 물이랑에

 

참꽃 떨어져서 차려지는 성찬인가

 

시장기 돌던 불빛이 꽃밥으로 배부르다

나침반

 

 

아무 곳에 갖다 놓아도 슬쩍 돌려놓아도

 

쫑긋, 바늘귀가 정방을 가리키던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얽매임 없는 구름처럼 부대낌 없는 술처럼

 

먼 눈빛에 갈마들어 손길 더워 온다면

 

유쾌한 불가능으로 꽃이 져도 좋습니다

 

겨울 기차

 

  적당히 덜컹대는 하행 차 차창에는 잠 설친 눈

꺼풀이 꽃잎마냥 떨고 있다 닦아도 흐려만 지는

지샐 녘의 그믐달

 

  이쯤에서 나 이렇게 목젖이 떨려오고 너 또한

보내놓고 헛발질을 할지라도 하얗게 얼어붙느

니, 빗장뼈의 성에꽃

 

 

고양이

 

 

 

콧등을 쓸어주면 달 떠서 가르랑대는

 

그 숨결 흘려 넣으며 저문 밤이 안겨든다

 

고요한 어둠을 헤집는 가뭇한 발톱있다

 

마른 푼속 몇 군데를 할퀴고 간 자국따라

되감겨 오는 시간 총총히 짚어가면

 

통째로 나를 훔치고 시침 떼는 발톱있다

 

 

나비

 

 

 

고정된 상을 버리고 움직임을 읽어내는

 

겹눈의 시각처리를 비로소 아는 봄날

 

욕심껏 문질러놓은 파스텔 빛 나이 한 때

 

참이라고 믿어야만 참말로 참인 것을

 

꽃 지는 꽃 대궁에 나비 홀로 앉아있네

 

마음을 밟히던 일이 꽃자국 이었다고,

 

 

고래, 찾다

 

돋보기로 책을 읽는 나를 바라보며

슬쩍 곁눈질로 그늘을 끌어오던

이 사람, 밥상머리에서 생선을 발라준다

 

자식도 이젠 커서 밥 때가 달라지고

동그마니 둘만 남은 경칩 무렵 점심 한때

아이들 키울 때처럼 밥숟갈에 올려준다

 

파도로 뒤척이고 심연을 헤집어도

애초 내 바다엔 없으려니 도리질한

고래가 앉아있다니 ... 역시, 등잔 밑이다

 

헛손질의 봄

토막말 겨우 뱉는 병상의 어머니가

 

함박눈 펑펑 터지는 창밖을 외면한다

세상 일 모른다는 듯 희뜩희뜩 웃는 눈

 

보름째 곡기를 끊어 내 끼니가 민망한 날

 

어머니 빈 수저만 소복하게 쌓아놓고

 

봄은 다 부질없다고 헛손질로 내리는 눈

 

동치미 국물

 

아낌없이 차려내도

잔치 끝은 짠하단 말,

큰딸 시집보내고

한 사발 들이켰다는

먹먹한 가슴언저리

용케 훑어 내렸다는 ...

 

입원실 목욕탕에

아이 같이 앉은 엄마

지고 온 칠십 평생

다 삭은 무릎 위로

비눗물 흘러내린다

동치미 국물 냄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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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은 시인

 

1958년 서울 출생 1979년 KBS문공부주최 전국민족시대회 장원으로 문단에 나옴.

시집 『내가 그린 풍경』『시간의 물 그늘』『길은 사막속이다』『시간의 안부를 묻다』『환한 적막』과 시선집 『술패랭이꽃』이 있다.

한국시조작품상, 대구시조문학상, 이영도문학상, 중앙일보시조대상, 서귀포 좋은시작품상

영진전문대학강사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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