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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홍성운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2.01 20:38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340

====================================<차   례>====================================

이어도, 낮은 불빛은 타오르고 / 올레길 송악/ 오래된 숯가마/ 파옥(破屋)을 넘어서/ 담쟁이/ 술패랭이꽃/ 자목련 두 그루/한라산 큰오색딱따구리/ 동짓달 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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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낮은 불빛은 타오르고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본 사람들은

수평선이 발행한 주식을 배당받아

이따금 어시장에서 시세를 가늠한다

 

주가가 낮으면 낮은 대로 견디어 온

흉어의 자맥질에 불안한 물새들아

섬 하나 젖은 꿈자리 미리 찍어 두었다

 

성산포 해가 뜨면 이어도에 달이 뜨고

한림항에 바람 일면 이어도는 출어하네

누구냐 시장 개입해 상한가를 들먹이는

 

매각한 이 없어라 반딧불만한 생각 하나

시원의 물결 따라 떠 흐르는 섬이여

까치놀 낮은 불빛이 난바다에 가득하다




올레길 송악

 

온종일 걸어도 발이 들뜨는 제주올레

허술한 담장일수록 송악이 무덕졌다

바람도 이 길에 들면

안부를 묻곤 한다

 

돌담에 기댄 만큼 길어지는 그림자 따라

햇볕 공양 받겠노라 고개를 더 내밀까

현무암 불 덴 흔적을

푸르게 감싸준다

 

계절을 탄다면야 가을 남자 아니래

봄여름 다 보내고 갈걷이에 꽃이 피는

턱을 괸 송악 열매들

거무데데한 사내들

 

섬에 산다는 건 절반은 기다림이다

수평선에 배 닿아도 마냥 설레느니

올레길 나무 우체통

엽서 넣는 떨림 같은 

 

오래된 숯가마

 

참나무 한 단쯤은 등짐 지고 넘었을 거다

관음사 산길을 따라 몇 리를 가다보면

숲 그늘 아늑한 곳에

부려놓은 숯가마 하나

 

못다 한 이야기가 여태 남았는지

말문을 열어둔 채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숯쟁이 거무데데한 얼굴

얼핏설핏 떠오른다

 

큰오색딱따구리 둥지 치는 소리야

적막강산 이 산중을 외려 위무하지만

무자년 터진 소문에

발길 모두 끊겼느니

 

시월상달 한라산 단풍은 그때 화기로 타는 거다

누군가를 뜨겁게 했던 내 기억은 아득하여도

한 시절 사리 머금은

그 잉겅불 오늘도 탄다

 

파옥(破屋)을 넘어서

 

나의 뒤란엔 백 년은 됐을 유자나무가 있다

아피리마다 진문깨비 하나 둘 묻어날 때

띠집은 삼대의 더께를 조용히 놓아준다

분명 저것은 내 조부의 뼈대이리라

사이버 시대에 느티나무 기둥 하나

수액을 빨아냈는지 목질이 살아 있는

돌아앉아 등이 다순 고향 하늘을 이고서

섬의 하늬쯤은 맨몸으로 받았대도

축대에 남은 온기를 묻혀 떠나는 굴뚝새

무너지는 것이야 어디 저 집뿐이랴

인터넷 화면처럼 먼 날을 부팅하면

네댓 살 아이들 몇이 기둥을 붙잡고 있다 

 

 

담쟁이

 

위험해요

맨손으로

벽을

타 오르는 건

 

믿음이지요

한 가닥 자일에

목숨을

내맡기는 건

 

기어이

쏟아붓네요

서늘한 별빛 몇 섬

 

술패랭이꽃

 

그냥


봤으면 됐지


무슨 말을 또 하려고


낮술에 불콰해진 내 고향 불알친구!


동구 밖 전송 나왔다


윤칠월


술패랭이꽃


자목련 두 그루


나의 작은 뜨락엔 자목련 두 그루가 있다

더러 손이 갔지만 직선과 곡선을 품어

휘어도 꺾이지 않는 품성도 지니고 있다


지난여름 태풍으로 잎들은 남루했다

그 형상 마주할 땐 4월은 없다 했는데

만삭된 꽃봉오리들

또다시 봄 불이다


우리네 입소문은 번지다가 멈추지만

자목련 봄 불은 절정이 돼야 꺼진다

겨우내 아꼈던 말을 한꺼번에 쏟는 거다


얼핏 보면 오늬 같고 다시 보면 부부같다

어깨를 감싼 듯이 따스한 봄날 오후

양 볼에 홍조를 얹은

꽃송이 꽃송이들


한라산 큰오색딱따구리


머리에 불점을 찍은 큰오색딱따구리

전들 시월 단풍에 물이 들지 않을까

관음사 느티나무들

단청 풀어 환한 날


나무야 참나무지 옹두리 하나 붙잡고

석공이 화강암에 정을 대듯 음각을 하듯

부리에 기를 모으고 중심을 찍어본다

한 달여 역사면 제 집을 완성한다

생목을 찍는 소리, 신새벽 목탁소리

소리가 소리를 물어

알을 깼네 화두를 깼네


비상하는 것들은 집착하지 않는다

깃을 내려 등을 맞대다 때 되면 둥지를 튼다

스님이 하안거 끝에

만행을 떠나듯이


동짓달 보리밭


빙점에서

짙푸른

보리 싹의 힘을 본다


그 기운

밀어냈을

따뜻한

씨앗의 일 획


압축을

저리 푸는가

물결치는 청보리밭